일본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제작사 '지브리 스튜디오'의 특별한 미술관
평소에 어떤 영화를 좋아하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만화라고 답하면 원피스냐고 묻는다. 애니메이션이라고 답하면 겨울왕국이냐고 묻는다. 일본 만화영화라고 답하면 너의 이름은 까지 나온다. 답답한 마음에 '지브리 영화'라고 말한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아~' 하는 탄성과 함께 어떤 취향인지 알겠다고 한다. 지브리 스튜디오(Studio Ghibli)에서 만드는 그것들은 사실 만화도, 애니메이션도, 만화영화도, 영화도 모두 맞는 표현이다. 특유의 섬세한 감성, 아름다운 작화로 수많은 흥행작과 두터운 팬층을 갖고 있는 '지브리의 영화'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장르를 표현하는 대명사처럼 느껴진다.
30년 전 지브리 스튜디오의 중심인 타카하타 이사오(Isao Takahata)와 미야자키 하야오(Hayao Miyazaki) 두 감독이 '토에이 동화(현 토에이 애니메이션)'에 재직중이던 시절, 시대의 흐름 상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은 지속적인 수익을 내기 위해 텔레비전 시리즈를 연재하는 것이 상식적이었다. 우리에게 친숙한 '알프스 소녀 하이디'도 그 당시 타카하타가 감독하고 미야자키가 그림을 담당해 탄생한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중 하나이다.
텔레비전 시리즈를 계속해서 만들어가면서 두 감독은 점점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예산도, 작업 일정도 제한적인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로는 자신들이 표현하고자 했던 '리얼 하이-퀄리티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두 감독은 풍부한 표현력과 자유분방한 상상력으로 삶의 기쁨과 슬픔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어 사람들의 심리에 깊게 파고드는 작품을 만들고자 했고, 그런 호흡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예산과 일정을 걸어두고 한 작품에 에너지를 몰두할 수 있는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이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두 감독은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를 시작으로 새로운 애니메이션 제작사 '지브리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작업 과정이 고되고 힘들더라도 당장의 수익보다는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든 것이다. 그러한 정신을 원동력으로 탄생된 지브리 스튜디오는, 텔레비전 시리즈에 비해 리스크가 크다는 점을 알면서도 극장용 장편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제작만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렇게 탄생한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들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교훈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를 시작으로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원령 공주> 등을 연달아 성공시킨 지브리 스튜디오는 애니메이션이 아닌 새로운 도전을 함께 하기 시작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2001년 세계적인 메가 히트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준비함과 동시에 '지브리 뮤지엄'이라는 독특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한 것이다. 도쿄 서부 교외의 미타카 시에 있는 '이노카시라 공원' 내에 있는 지브리 뮤지엄은 2001년 10월에 개관한 지브리 스튜디오의 미술관이다.
지브리 뮤지엄은 다른 미술관들과는 달리 독특한 외관을 가졌다. 담쟁이덩굴로 뒤덮힌 벽면들은 자연친화적 사상을 가진 지브리의 영화들과 닮아있고, 형형색색의 파스텔톤이 입혀진 벽면과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도시 배경처럼 곡선 형태를 한 건물들이 특징이다. 미술관 자체가 한편의 영화같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직접 설계와 디자인을 했다. "함께 미아가 되어"라는 지브리 뮤지엄의 모토답게 지정된 경로나 정해진 관람 순서 없이 자유롭게 전시물들을 관람할 수 있는 점이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거대한 토토로 인형, 거대한 고양이 버스 인형 등 아이들의 취향에 맞춘 많은 전시물들과 불규칙하고 기이한 내부 장식들이 어우러져 실내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준다. 특히 천장과 벽에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려진 벽화들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들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내부 전시실은 애니메이션의 역사와 기술을 보여주는 곳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애니메이션 창작 스튜디오를 모방해서 만든 방 벽면에 여러 스케치와 스토리 보드가 붙어있다. 그곳에서 애니메이션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아이디어를 스케치로 그려내고, 스토리 보드로 이야기를 만들고, 물체의 동작과 움직임을 나타내는 키프레임 작업을 거쳐 거칠게 그려진 원화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클린 업'을 한 뒤, 색상을 입히는 컬러링 과정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지브리 뮤지엄의 '토성 극장'에서는 지브리에서 만든 단편 애니메이션을 상영한다. <고래 사냥>, <코로의 큰 걸음걸음>, <메이와 고양이 버스> 등의 단편을 번갈아 상영한다. 미술관을 찾아온 손님에 한해 1회당 한편의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오는 2018년 3월부터는 3번째 은퇴 선언을 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복귀작인 단편 애니메이션 <애벌레 보로(Boro The Caterpillar)>를 상영한다는 소식에 많은 지브리 팬들이 열광하기도 했다. <애벌레 보로>는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에 맞추어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있다.
특별 전시실에서는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만든 작품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다른 회사나 다른 감독의 애니메이션 작품도 초대해서 전시를 하고있다. 두 감독이 지브리 스튜디오를 창립하기 전에 만든 작품이나,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Pixar), 월리스와 그로밋, 루브르 박물관 등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거나, 두 감독이 영감을 얻었던 모든 것들이 전시의 대상이다.
잔디로 가득 차있는 옥상 정원에는 공원을 내다보고 있는 5미터 높이의 로봇 병사 모형이 있다. <천공의 성 라퓨타>에 등장했던 로봇 병사를 실물 크기대로 제작한 모형이다. 사람들은 이 로봇을 지브리 뮤지엄의 수호자라고도 부른다. 당장이라도 영화처럼 눈에 빨간 불을 켜고 움직일 것 같은 이 로봇은 지브리 뮤지엄의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지브리 뮤지엄은 개관한지 17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완전 예약제라는 특별한 예약 시스템을 통해서만 입장할 수 있다. 뮤지엄에서는 입장권을 전혀 판매하지 않기 때문에 지브리 뮤지엄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사전에 표를 구해서 가야한다. 일본 현지에서 구매하고자 하는 경우는 일본 대표 편의점 중 하나인 로손(LAWSON)편의점의 티켓 판매 창구에서 표를 구입할 수 있다. 편의점에서 구매하는 티켓의 경우 매 월 마다 다른 티켓을 판매하기 때문에 티켓 구매 시 선택한 날짜가 아니면 관람이 불가능하다.
지브리 뮤지엄을 방문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불편함을 감수하기 위해 사전에 한국에서 예약을 진행할 수 있다. 지브리 뮤지엄이 지정한 여행 대리점에 입장 희망일과 여권 정보 등을 제시해 입장권을 구매할 수 있지만, 매 달 15~17일 사이에 입장 시간을 랜덤하게 배정하는 방식이므로 사전에 여유있게 예약하는 것이 좋다.
철저한 완전 예약제로만 운영되는 불편함이 무색할 정도로 연간 70만 명의 여행자들이 찾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좋아하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만나고, 어릴 적 즐겨보던 만화영화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이곳, "여기에서 당신의 보물을 찾을 수 있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이곳에서 당신만을 위한 새로운 보물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