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언어 연재 3화 채근담 초역
초역 채근담 시간의 언어 연재 3화는 말하는 바,
가장 잘 나가는 전성기에 물러나고
남과 다툴 일 없는 곳에 자신을 둔다 하며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더 신중하게 행동하고
보답을 기대할 수 없는 상대에게 더 힘써 베푼다
한다.
랜턴을 들고 어두운 곳에 떨어진 반지를 찾아보면
그 반지는 참으로 어느 손가락 끝에 닿을 것처럼
애타는 상황에 서 보면 과연 어떠하던가?
누가 랜턴을 들어주면 참으로 두 손을 최대한 뻗어
그 반짝이는 것을 밖으로 구출하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던가?
그 반지를 어둠의 에움에서 꺼내고 싶은 열망이 드려면
그 반지는 일단 반짝여야 함이 있다.
너무나 오랫동안 스스로 조금의 빛만 있덤에도
스스로 해에 비친 달처럼 비추어 밝음의 스폿이 있어야 한다면
우리는 그 어둠과 반지에서 인간의 일생을 충분히
들여다볼 수 있다고 해야 하겠다.
대저 나는 조금의 빛만 있어도 반짝임을
보일 만큼 어둠 속에서도 충분히 노력해 가고 있었던가?
그 빛이 오기만 할 량이면 그때까지
최대한 버티고 버티어 가면 스스로를 북돋워 주고 있던가?
더러 자기에게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을 사람을
올려서 그의 자리에 처하게 하고자 하늘에서
랜턴이 아니라 은은한 램프라도 곁에 가져다 놓고
기를 쓰고 나를 구원하려 노력하고 있다면
내가 먼저 포기해야 하는 게 맞을 것인가?
혹자는 이야기할 것이다.
"어찌 인간을 램프나 반지 따위와 비교하리오?"
"사물은 혼이 없건만 어찌 그에서 인간이 배울 것이 있으랴?"
"말로 현혹하는 바이지, 인간은 인간존재인 고로
인간 이외의 것에 없음이 있다는 말을 다 거짓 아닌고?"
등등의 따위의 말을 할 수도 있으리라.
필자는 어찌하는 게 좋을까?
기실
온전하게 그의 말을 다 듣되
아무 댓거리도 하지 않고
오 분짜리의 긴 이야기도 하지 않고
참아, 그를 설득하려고도 하지 않고
일어설 뿐이다.
문득 고등학교 때 배운 허생전에
나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이것은 예법에 어긋나여 못하고
저것은 사대부가 반대해서 못하면
당최 언제 무엇을 할까?"
싶은 것이다.
자기 팔다리를 자기가 놀리며 사는 사람을
설득하기보다 정말 간절하고 간구하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함이 실로 가장
맞는 것끼리의 합이 아니겠는가?
그 혹자는 말하였던 바,
그럼 동식물 따위에 영장류가 배울 것이 없고
자연이나 혼이 없는 사물에 배울 바가 없고
초역 채근담의 언어는 잘 난 척 함이 싫어 못 배우고
못난 사람에겐 가히 들을 바가 없어 못 배우면
그는 참으로 삼천갑자 동방삭만큼 삶이 있어도
삶의 진미와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을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고
하는 말을 한 번은 살면서 들을 수가 있던 바,
독자께서는 어떠하신가?
하늘이 랜턴을 입에 물고 두 손으로 나를 구하려 할제,
하늘이 램프를 켜놓고 나를 구하여 두 손을 뻗고 있을 때
지금까지 어둠에서도 에움이 없었는데
무슨 더 노력을 하면서 그침이 맞을 것인가?
더러,
"하늘이 나를 구하려 노력함이 있는지 어찌 아시오?"
물을 사람도 있기도 하련만,
삶에의 의지로 긍정과 능동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이런 생각에 빠짐도 삶의 시간에서 사치라 하온데
일러, 이 사람에게 무슨 말을 더 해야 할까?
"내가 노력하는 바 하늘이 나를 구하지 않는다는
증거도 없음 아닌가?" 더 나아가 까짓 거
만물의 영장으로 태어나서 하늘과 땅도 믿지 않고
대차게 산다면 "'바람아 불어라, 생의 의지로 나는
헤쳐나갈 것이다'라는 마음도 크게 한번 먹어
볼 참이 과연 없던가?"
랜턴의 불빛이 꺼지기 전에, 램프의 기름이 다
떨어지기 전에, 어둠 속에 빛이 비추기만 할 때
반짝이며 반사하는 반지가 되어보고자
부단히 나를 갈고닦자
천천히 느리게 가는 것이 신중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고 현생을 사랑하는 만큼
순간에 최선을 다함이 진실로 신중의 뜻임을
다시 한번 맘먹기만 해 본다면, 그렇게
초역 채근담 시간의 언어 3화는 다른 차원에서
나를 고양시킴이 있을 것이리라.
보이지 않은 곳에서 신중하여
보이는 곳에서 그 과실을 얻을 때까지 보이지
않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어 보자.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억'소리는 세상에 한번 남기고 가보아야 할 것
아니겠는가~
하는 참에, 열어둔 창문으로 겨울바람 불어오는
26년 1월의 마지막 목요일 오후인 것이 오롯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