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근담 4화 연재 초역 시간의 언어
초역 채근담 시간의 언어 4화는 말하는 바,
재산이나 지위를 좇는 사람보다 욕심 없이
담담한 산골 노인을 친구 삼고, 호화로운
저택에서 권력자의 눈을 살피느니 오두막에
사는 이와 가까우며 떠도는 쓸데없는 소리에
귀 기울일 량이면 나무꾼과 친하라 말을 한다.
이어 근래의 근처 사람들의 언행에 약점을
찾아 목소리를 높이지 말고 옛사람들의
훌륭한 언행을 이야기함이 가히 낫다고 한다.
소위 얄팍한 사람은 얇고 좁다.
마치 50센티미터짜리 도로의 좌우 폭을 간신히
지나가야 하는 행인이 된다면, 우리는 그 얄팍함에
진절머리가 나고 종래는 그 길을 돌아가게 되듯이
얄팍한 사람에게는 그가 가히 만나 뵙기를 칭송하는
권력자나 재벌이 곁에 들지 않으며 그가 무시하기에
쉬운 제법 낮아 보이는 사람조차 모여들지 않는다.
대저 얄팍한 것의 단점이 이와 같고, 미움받아 멀리됨이
이와 같은 것이다.
어떤 것이 두터운 것일까?
우리가 한 끼 식사를 하러 스테이크를 먹으러 가도
그것이 두터움이 좋고 맛 좋음이 좋고 그 식당이
끝내 좋다고 말함처럼 얄팍한 것의 반대는 이리도 두텁고 깊은
것을 말한다.
그러고 나서 일러 초역 채근담 시간의 언어 4화를
보면 여러분들은 어떠하시던가?
욕심 없는 사람은 서로 대등하며 바랄 것이 없으니
재산이나 지위에 따라 내가 버리거나 버림받을
일이 적고, 쓸데없는 말을 가볍게 넘기기 쉬운
뜬 현재의 관계 속에서 노니지 말고 옛 선인들의
이야기나 훑어 봄이 깊숙하고 제법 두텁지 아니한가?
비 내리는 도로를 뛰는 사람은
이미 젖기로는 하였고, 우산을 쓰고 뛸 수는 없기에
이미 비가 오는 것과 옷이 젖는 것은 도외시 한
사람이라 하겠다.
까짓 10미터 더 가나 덜 가나 옷은 결국엔 젖을 것이고
잔머리를 굴리며 다시 돌아가나 끝까지 완주하나
젖기는 똑같이 이미 젖었다면 그는 이런 비나 옷의
젖음 따위는 신경 끄고 자기의 길만 우직하게
감이 있다.
얄팍한 사람이 되지 않음은 이 우직함과 같다.
혹자는 때론 과한 신뢰와 지속됨이 우둔함이
아닐까 이야기를 하기도 하건만,
어차피 미래는 알 수 없고 메타인지도 확보되지
않았다면 차라리 박쥐처럼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대다가 어느 길바닥에서 비명횡사해도 가래침을
받는 얄팍한 사람의 말로를 걷느니 차라리 우둔함이
백배는 나을 것이다.
그러고 따지고 보면 우둔함은 그래도 그 사람의
정성과 노력을 하늘이 살펴보아 살려도 주고
운도 좀 내려줄 기미라도 있지만 얄팍한 인간이야
말로 죽어도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신세 아니던가?
살다 보면 비도 오고 해도 난다.
어차피 이왕 뛰다가 신발에 물이 들어오고
옷도 젖고 이대로 내처 달려 집으로 가는 길을
생각한다면 찬바람 이슬에 고뿔이라도 들지
않는 한 그대로 달리면서 버텨내는 것이다.
그렇게 안 좋은 운명에도 최선을 다하며
비를 맞고도 걸어가는 저 사진 속 인물은
우리가 적어도 인간답게는 산다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 것인가?
스테이크의 맛 많음이 두툼함에 있고
스테이크의 맛 적음이 얄팍함에 없는처럼
우리 역시
진득하고 깊숙하고 우직하게 살아가 봄을
생각도 골똘히 하여도 볼제,
어느덧 26년 신년이라 했건만 이달의
마지막 금요일 밤을 보내고 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