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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tter S Jan 17. 2021

코로나 시대의 여행법

아이가 돌을 지날 무렵부터는 분기마다, 그러니까 계절이 바뀔 때마다 여행을 떠났다. (나에게는 잠깐이지만) 지난 여행과 새로운 여행 사이 그 서너달 동안 아이는 얼마나 많이 자라나는지, 바뀌는 여행지 만큼이나 훌쩍 변해있는 모습을 깨닫곤 한다.
일년 전 겨울여행도 그랬다. 일단 갖고 가야하는 준비물의 스케일부터 확연히 줄었다. 비좁은 공중화장실에서 불안정한 자세로 기저귀를 갈 때도 타이밍에 맞춰 한쪽 발씩 번쩍번쩍 들어주는 건 물론이요, 새로운 잠자리에서도 뒤척이는 일 없이 쌔근쌔근 예쁘게 잘 자주었다. 함께 먹을 수 있는 게 늘어나니 밥 먹이는 것에도 힘이 덜 들었다. 이래저래 물리적인 어려움이 한결 줄어든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데서 벌어졌다. 자기 주장이 강해지고 하고 싶은 게 많아지니 내딛는 걸음마다 고집을 부렸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크게 혼내지 못한다는 것을 영악하게 간파하여 더욱 떼를 쓰기도 했다. 고난이도 심리전에서 오는 에너지 소모가 너무 크다고 해야할까. 매순간 진이 빠졌다.
결국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여행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내년 여름휴가 때까지 더이상의 여행은 없다.’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 말을 듣고 “말 잘 들을거야!”라며 그렁그렁 눈물을 모으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살포시 흔들리긴 했지만 일단은 그랬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 결심이 이런 식으로 실현될 줄이야...



여행지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코로나19가 터졌다. 처음에는 이렇게 오래 지속될 지 몰랐다. 이렇게 거대한 몸집의 몬스터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봄과 여름이 다 지나도록 사태는 진정되지 않았다. 정체를 파악하고 현실을 직시하는 데에만 한참이 걸렸다.

아이가 있어서 더욱 조심하느라 두 계절을 꼬박 집에만 있다보니 마음은 저 밑으로 가라앉고 스트레스는 차곡차곡 쌓여갔다. 아이는 아이대로 심심하고 답답한지 ‘미운 네 살’다운 짜증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축구선수 버금가는 에너지를 고 작은 몸 안에 모아 놓고 집에만 있으려니 좀이 쑤실 만도 했을테다. 가여운 아이 핑계는 둘째 치고서라도, 일단은 내가 일상을 벗어나고 싶었다. 이전에 결심했던 게 무색하도록.



코로나가 한풀 꺾일 무렵 한산한 지역과 숙소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어차피 룸 안에만 머무는 호캉스가 될 테니 돈을 좀 더 들여서라도 좋은 곳에 묵기로 했다. 해외로 나가지 못한다는 보상심리와 항공료만큼 절약될 거라는 자기위안이 함께 작동한 결정이었다. ‘단독 풀빌라’, ‘독채 펜션’ 등의 검색어로 찾아낸 숙소들은 하나 같이 세련되고 멋들어진 위용을 자랑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예쁜 곳들이 많이 있었나. 그 중 가장 청결하고 안전해 보이는 곳을 골라 결제 버튼을 눌렀다.
늘 그렇듯,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은 즐겁다. 익숙한 것을 벗어난다는 설렘과 긴장감이 씨줄과 날줄 마냥 촘촘히 얽혀, 어쩌면 여행 자체보다도 더 신나는 일일 지 모르겠다. 혹 코로나가 재점화되어 여행이 취소될 수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정맞게 일렁이는 마음은 누그러지지 않았다.
나는 잔뜩 비대해진 여행의 욕망을 담아 그득그득 가방을 쌌다. 더군다나 이번 여행은 예전과는 그 스타일이 매우 다를 것이므로 챙겨야 할 게 많기도 했다. 몇 벌씩 가져가던 수영복이나 운동복, 근사한 외출복은 빼두고 편안한 홈웨어 위주로 준비했다. 마스크와 마스크 스트랩, 손 소독제는 필수였고, 끼니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마트에서 장도 봐놨다. 아이패드에 영화도 두둑이 넣어놓고 재미난 소설과 아이 장난감도 충분히 챙겼다. 예전에는 하루종일 바깥으로 나도느라 따로 필요치 않던 것들이었다.



여행 당일은 이른 아침부터 눈이 절로 떠진 탓에 예정보다 일찍 출발할 수 있었다. 시작부터 온갖 족쇄를 단 여행이었지만 뺨을 스치는 바깥 공기는 분명 경쾌했다. 물론 여행의 방식과 우리의 태도는 이전과 180도로 바뀌어 있었다. 매 순간 뭔가에 쫒기기라도 하듯 경계심과 조바심이 애워쌓다.

일단 목적지로 향하는 동안 (생리적 위급 상황을 제외하고는) 휴게소조차 들르지 않았다. 호두과자와 알감자가 선사하는 낭만을 외면한 채 고속도로에 서있는 휴게소를 몇 번이고 스쳐 지나갔다. 그것들이 차근차근히 우리 차 뒤로 멀어져 작아질 때마다 여행의 묘미가 2프로씩은 줄어드는 기분이었다.
숙소에 도착해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방 안에만 머물렀다. 룸서비스나 테이크아웃, 혹은 준비해 온 고기와 해산물을 그릴에 구워 먹으며 한 끼 한 끼를 해결했다. 내 돈 내고 집 나와서 뭐 하는 짓인가 싶다가도, 자연이 내어주는 기막힌 뷰에 이게 어디냐며 만족하기를 반복했다.  
어쩌다가 카페 하나라도 들를 때면 야외 정원이나 테라스가 있는 곳을 찾았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볕이 따갑든 말든 기어코 바깥에 자리를 잡았다. 잠깐의 외출에 신이 난 아이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온 힘을 다해 뜀박질을 해댔다. 이 재미난 순간에 음료만 재빨리 들이켜고는 자리를 뜨려는 엄마는 악당이 된다.
계속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도통 사진 찍을 맛 또한 나질 않았다. 카메라를 들이댈 때마다 마스크를 벗었다 썼다 하기가 번거로워서 사진을 찍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 그러다보니 렌즈로 담았을 법한 것들을 오롯이 맨눈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카메라의 간섭에서 자유로워진 여행은 날것처럼 신선하긴 했다.



살면서 경험한 여행  가장 희한한 여행이었다. 그것도 콧바람이라고 집에만 있는  보다는 나았고 약간의 숨통은 트였지만, 굳이 이런 식의 여행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얼음이  녹아서  맛만 진하게 올라오는 미적지근한 커피 같달까. ‘진짜여행에 대한 욕망과 일상적으로 누리던 것들에 대한 그리움은 오히려 커져 버렸다.

응가를 한 후 변기물을 내리며 “잘 가. 좋은 데 가라. 호텔 가라~”라고 인사하는 아이에게 호텔로 대변되는 여행은 분명 행복한 경험일 테다. 지난 일 년간 아이는 불어난 몸집 만큼이나 능력치가 만개했다. “나 이제 아기 아니야.”라는 본인 말마따나 언니 태를 꽤 나 갖추었다. 기저귀를 뗐고, 가리는 음식 없이 뭐든 잘 먹고, 나와 언쟁이 가능할 만큼의 말발을 자랑한다. 어디 그 뿐이랴. 보고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감각도 몇 배나 자라났다. 놀러 다닐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데 마스크로 막혀버린 세상이 야속하기만 하다.



며칠 전 새해 목표를 세웠다. 매번 여행 계획을 같이 짜 두는데 이번에는 장소도 시간도 없이 ‘가족여행 가기’라고 막연하게만 적었다. ‘코로나 상황 감안해서’라는 꼬리말까지 달아서.
잔뜩 소심해진 나의 마음이 겸연쩍을 정도로 일상을 되찾는 새해가 되길 바라 본다. 주문이라도 걸 듯, 나는 꼬리말을 쓱쓱 지우고는 지우개 가루를 탈탈 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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