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딩동 딩동. 겨울이 차츰 그 힘을 잃어갈 무렵의 어느 날, 아침부터 초인종 소리가 요란하다.
“누구세요?”
“경찰입니다.”
“네?”
잘못 들었나 싶어 나는 재차 물었다.
“경찰입니다.”
제대로 들은 게 틀림없다.
“무슨 일이세요?”
“잠시 문 좀 열어 주십시오.”
이 시간에 그것도 우리집에 웬 경찰이란 말인가. 혹 사기꾼일 지도 모르니 침착하자. 거실 월패드로 내다보니 진짜 경찰복을 입고 있긴 하다. 대체 무슨 일이지. 이웃집 어딘가에서 강도나 살인사건이 일어나 목격자를 찾고 있는 건 아닐까. 짧은 시간 사이에 내 머릿속에는 별의별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아침부터 생떼 쓰는 아이 때문에 진이 쏙 빠진 채 잠옷 바람이던 나는 서둘러 옷을 갈아 입고는 현관문을 열었다. 빼꼼. 월패드로 희미하게 보이던 제복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그것도 셋씩이나. 무슨 일이 나도 단단히 난 모양이다.
“무슨 일 있나요?”
잔뜩 궁금해진 나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물었다.
“OO지구대에서 나온 OOO입니다. 잠시 뭐 좀 확인하겠습니다.”
그 중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경찰관이 말했다.
“네. 코로나 때문에 들어오시라고 하기가 뭐해서 여기서 이야기해도 될까요? 아기가 있어서…”
나는 말끝을 흐렸다.
“네. 괜찮습니다.”라며 그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여기 혹시 아기가 울었나요?”라며 눈매를 세운다.
잠깐, 뭐지.
“네, 그런데요?”
“얼마나 울었나요?”
“한 20~30분 운 것 같아요. 왜 그러세요?”
“아기가 오래 울고 있다는 연락을 받아서요. 왜 운 건가요?”
세상에, 이웃집 일이라 생각했던 사건 사고가 우리집으로 옮겨오는 순간이다. 게다가 왜 운 거냐니. 나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아이 안키워 보셨어요? 이 맘 때 아이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도 몇 십분씩 울고불고 떼 쓰고 드러누워요.”
잠시 정적.
“그래서 혹시 때리셨어요?”
나는 열이 올라 벌개진 얼굴로 “네에?”라며 쉰 소리를 냈다.
“흥분하지 마시구요, 절차상 확인하는 겁니다.”
그는 이내 시선을 우리 아이에게 옮기고는 이름이 뭐냐, 나이가 몇 살이냐 등의 말을 건네며 상태를 확인하는 듯 했다. 그림책에서만 보던 경찰 아저씨가 들이닥치자 놀란 아이는 내 허벅지에 달라붙어 잔뜩 주눅 든 채로 묻는 말에 대답했다. 별 문제가 없어 보였는지 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추가로 묻고는 그들은 그렇게 돌아갔다. 너덜너덜해진 나를 뒤로한 채.
그 무렵 아이의 미운 네 살은 시작되고 있었다. 자아가 강해져 고집이 세지고, ‘싫어’와 ‘안 해’를 입에 달고 사는 나이. 엄마는 애간장이 녹든 말든 위험한 건 직접 해봐야 하고, 이 쪽에서 저 쪽 끝까지 소리 지르며 몇 번을 내달려야 직성이 풀리는 나이. 원더윅스(아기가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시기로, 더 많이 울고 보채어 부모를 힘들게 하는 때)를 넘겼다고 방심했더니 네 살은 그보다 더한 마의 기간이었다. 오죽하면 ‘미친’ 네 살이란 말까지 생겨났을까.
게다가 코로나로 집에만 있다보니 아이의 스트레스는 더욱 가중되고 있었다. 밥 먹다가 유튜브 보고 싶다고 울고, 놀다가 뭐가 잘 안 된다고 울고, 낮잠 자고 일어나서 눈 뜨는 것과 동시에 울고, 심심하면 한 번씩 짜증내면서 또 울고. 단단히 수틀리는 경우에는 20~30분이 지나도록 울음을 그칠 줄 몰랐다. 있는 힘껏 발을 쿵쿵 구르며 울어대는 통에 아랫집에 미안해서 달래도 보고, 좋아하는 걸로 꼬셔도 보고, 단호하게 혼도 내보고, 육아책에 나오는 대로 무관심으로 대응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더구나 우리딸은 목소리까지 크다. 그냥 일반적으로 크다는 수준을 넘어섰다. 아기 낳은 후 산후조리원에 있던 시절부터 그랬다. 화통을 삶아 먹기라도 한 듯 거대한 울음소리에 “뉘 집 아기가 저래?”하면서 나가보면 열에 열 번은 우리 아기였다. 그 때는 “어린 놈이 참 기운도 좋네”하며 웃어 넘겼지만 키우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한 번 마음 먹고 울어 재끼면 귀가 쏙쏙 아리다 못해 없던 두통까지 생기곤 했다. 길에서 울음보라도 터지면 이 사람 저 사람이 목을 쭈욱 늘여빼고 구경하는 통에 계면쩍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렇게 목소리 큰 아이를 두고 태생적으로 목소리가 큰 시어머니와 그에 못지 않게 또 목소리가 큰 나는 상대방을 닮아서 그렇다며 서로 떠넘기기 바빴다.
경찰이 다녀간 그 날도 아이는 삼심 분 가까이 울다가 어느새 맘이 풀려 잠잠해져서는 까까를 먹던 중이었다. 육아하며 겪을 수 있는 해프닝으로 치부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쿨하지 못한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안 훔쳤는데 자꾸 “니가 훔쳤지? 니가 훔쳤지?" 하면 진짜 내가 훔친 것 같이 떨리고 위축되는 마음과, 정확히 표현하기 힘든 묘한 수치심과 억울함이 한 데 어우러졌다. 다들 집콕 중인 요즘, 아이의 울음소리가 유독 잘 들려 민감하게 반응한 것일 수도 있다고 스스로를 이해시켜 보기도 했다. 하지만 안그래도 아이와 종일 집에서 고군분투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내 마음은 블록을 잘못 뺀 젠가 마냥 우르르 무너졌다.
그 날 이후로는 아이가 조금만 울어도 가슴이 철렁했다. 또 괜한 오해를 살까 봐 울 기미만 보이면 달래기에 바빴다. 무조건 오냐오냐 우쭈쭈 해준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아이는 원하는 게 있을 때마다 더욱 강력해진 땡깡 기술을 선보였다. 이러다가 아이 버릇만 나빠지겠다 싶어서 여러 육아서를 펼쳐놓고는 올바른 훈육 기준과 방법을 읽고 또 읽었다. 물론 아이는 책에 나오는 케이스들을 보란듯이 비켜가며 나를 매번 당황하게 만들었지만.
녀석은 화산처럼 폭발하다가 잠시 휴지기를 갖고는 또다시 피크를 찍고 내려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면서 네 살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전 조금은 의젓해진 모습으로 다섯 살을 맞이했다.
내 무릎 위에 앉아서 그림책을 보다가 나쁜 사람 잡아가는 경찰이 등장하자 유심히 들여다보길래 물었다.
“세연아, 예전에 우리집에 경찰아저씨 왔던 거 기억나?”
“응.”이라고 대답은 하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가물가물한 눈치이다.
“너희 엄마가 그 때 얼마나 놀랐는데. 하여간 못말려, 우리 딸. 경찰아저씨까지 부른 목청이야!”라며 남편이 우스갯소리를 한다.
이제는 웃을 수 있게 된 나도 따라 웃었다.
‘경찰’의 ‘경’자만 들어도 떠오르는 그 사건은 우리집을 넘어 친정과 시가에서까지 종종 회자되는 이야기가 되었다. 나중에 딸이 커서 시집을 가면 그 신랑과 아이들에게도 다 들려줄테다, 이 녀석. 알에서 태어났다는 누구누구처럼 대대손손 전설로 남을 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