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야, 가자!”
때는 2000년대 초반, 시청률 50%를 거뜬히 넘으며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드라마 ‘파리의 연인’을 기억하시는지. 당시 박신양이 김정은을 데려가며 부르던 이 낯간지럽지만 청량감 넘치는 대사는, 출생일로는 이미 한참을 넘겼지만 애기라 불리는(혹은 불리고 싶은) 수많은 여성들을 전국 방방곳곳에 등장시켰다.
실은, 나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남편은 연애가 무르익을 무렵부터 결혼 후에도 한동안은 나를 ‘애기’라고 불렀다. 누가 시키거나 드라마를 따라 한 것도 아닌데 그냥 자연스러운 우리 사이의 애칭이 되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다른 커플의 장면을 목도했더라면 오글거렸을 이 단어도 내가 들으니 제법 기분이 좋았다. 깨질 듯 말 듯 연약하고 소중한 그의 진짜 애기라도 된 느낌이었다. ‘애기’라는 단어가 선사하는 오묘한 마법에 취해 실컷 토라지고 징징댈 수도 있었다.
임신과 출산을 겪은 뒤에도 얼마간 나는 계속 ‘애기’로 불렸다. 다만 대화를 하던 중 가짜 애기(나)와 진짜 애기(우리 딸)가 헷갈리기 시작하자 남편은 나를 ‘큰 애기’, 딸을 ‘작은 애기’로 불렀다. “애기는 잘 있어?”라는 남편의 문자에, “어떤 애기?”라고 물으면 남편은 키득거리는 이모티콘과 함께 “큰 애기~”라고 답장을 보내오곤 했다.
딸을 키우면서 첫 돌까지는 전쟁같은 시간이었다. 하루가 아이의 낮잠과 맘마 먹는 시간으로 잘게 쪼개졌고, 그 틈으로 끝없이 반복해야 하는 투두 리스트(to-do list)들이 촘촘히 박혔다. 헬렌카민스키를 쓰고서 유모차 컵홀더에 커피를 꽂고 아기와 산책하는 모습은 SNS에 박제된 사진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이 때 알았다.
남편도 마찬가지이다. 퇴근 후 집으로 출근한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현관에서 신발을 벗어 던지자마자 곧장 육아를 나눠했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육아전(戰)을 함께 하는 동지애로 끈끈하게 뭉쳤지만 끈적이지는 않았다. 더이상 남편은 나를 ‘애기’라고 부르지 않았다. 진짜 애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졌을 테다.
나는 애기로서의 힘과 특권을 잃었다. 그렇다고 해서 서운하거나 아쉽지는 않았다. 나조차도 그의 애칭이 사라졌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줄 힘겹게 움켜쥐고 있던 나날이었으니까.
작년부터는 시기적 특성으로 인해 남편의 재택근무가 빈번했다. 남편과 하루종일 붙어 있는 것은 아이와 함께 하는 것과는 또 달랐다. 아무리 애정으로 묶인 사이라도 연애시절이 아닌 이상 24시간 동반 체제는 서로에게 힘이 들었다. 집안일과 육아의 홈그라운드에 들어온 남편의 존재는 수시로 걸리적거렸다. 화장실에 화장지 한 칸만 겨우 달랑달랑 붙어있는 헐벗은 휴지 심만 봐도 화가 났다. 자기 볼 일만 보고 그냥 쓱 나온 것이리라. 매번 그렇다.
“휴지 쓰는 사람 따로 있고, 거는 사람 따로 있냐!”
나의 볼멘소리는 그의 두 귀를 차례대로 통과하여 허공으로 사라질 뿐 이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남편은 남편대로 집과 회사일이 교차되니 별 것 아닌 일에도 뾰족해졌다. 나의 잔소리에도 곧잘 웃어넘기는 그였지만 언젠가부터 눈꼬리를 치켜세우며 한 마디도 지지 않았다. 그새 말발도 많이 세졌다.
구구절절 설명했지만 결국은 부부싸움이 늘어났다는 이야기이다. 아이가 자랐고 이전보다는 일상에 여유가 흘렀지만 나는 ‘애기’란 애칭을 되찾을 수 없었다.
연유야 어찌 되었건 다른 집 상황도 별반 다르지는 않은가 보다.
“언니는 걸을 때 남편하고 손 잡아요?”
오랜만에 만난 조리원 동기 Y가 대뜸 물었다.
“글쎄. 보통은 아이랑 셋이 다니니까 아이를 가운데에 두고 양쪽에서 아이 손을 잡는 것 같은데. 뭐, 애 없을 때는 남편 손 잡기도 하고.”
기억을 더듬으며 내가 대답했다.
“난 안 잡아요. 권태기인가봐. 손 잡는 것도 싫어.”
“아니, 그럼 그 뱃속에 자리잡은 아기는 어떻게 된거래~”
볼록 예쁘게도 나온 그녀의 배를 가리키며 나는 물었다.
“달라, 달라. 그건 그냥 계획이었어요.”
무슨 뜻인지 알 것도 같아서 나는 쿡쿡대며 웃었다.
싸울 때 만큼은 웬수가 따로 없지만 풀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머리 맞대고 낄낄거리는게 부부다.
“예전에 나한테 ‘애기’라고 불렀던 것 기억나?”
아이를 재워놓고 몰래 숨겨둔 간식을 꺼내와 한 입 크게 베어물며 내가 물었다.
“내가 그랬어?”
남편의 작은 눈이 두 배로 커졌다.
“그랬잖아! 나는 큰 애기, 세연이는 작은 애기!”
“허허, 모르겠는데.”
세상에. 본인이 했던, 그것도 수십 수백번은 입에 담았을 그 말을 기억하지 못한단다. 예상치 못한 답변에 혀로 밀어 넘긴 빵 조각 하나가 목에 컥 걸린 기분이었다. 서둘러 찬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래, 당신도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기억력이 감퇴했나보다. 이해해 줄게. 대신 가끔씩이라도 ‘애기’라고 불러달라고 했더니 실성한 사람 앞에 둔 표정이다. 마흔을 목전에 두고 무슨 짓이냐고 한다.
실은 나도 잘 안다. 그런 깜찍한 말이 오고 가기에는 서로 무안한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그러기에 우리는 이미 지나치게 친하다는 것을.
그래도,
가끔은,
나도 다시,
‘애기’라고 불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