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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tter S Feb 07. 2021

소개팅에 나온 유두천사

창문이 얼어붙어 손목에 잔뜩 힘을 주고 밀어도 꼼짝하지 않을 만큼, 바깥은 며칠째 최저기온을 경신 중이다. 코로나가 재점화 된 후 서울시 지침에 따라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다. 바이러스와 한파가 겹친 요즘,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뒹굴며 보내는 아이는 오늘도 심심하다고 아우성이다. 징징대는 아이와 하루 종일 씨름하다 보면 해가 지는 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겨우 보내 놓은 하루는 내일이면 이 자리에서 꼭 같이 시작될 테지만.



아이를 재우고 나도 따라 잠자리에 누웠다.
“아이구야.”
요즘 들어서는 이 놈의 오른쪽 어깨가 툭하면 말썽이다. 어찌나 쑤시고 찌릿한 지 움직일 때마다 신음이 자동으로 따른다. 이 맘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이라는 작자는 슬그머니 곁으로 다가와서 찰싹 달라 붙는다.
“아오, 저리 좀 떨어져. 힘들어 죽겠어.”
“잠깐만 안고 있자. 좋다~”라며 속 없이 웃는 그.
“아, 더워. 오늘도 하루종일 느그 딸한테 시달렸단 말이야. 그냥 좀 혼자 조용히 있고 싶다!”
“연애할 때는 그렇게 좋다고 하더니. 시간이 없어서 빨리 결혼해야 한다며!”
“나긋나긋하게 좀 대해주고 그런 말을 해봐. 예전에는 편지도 잘 쓰더니만 이제는 기념일이며 뭐며 싸그리 무미건조하게 지나가면서 나한테만 연애시절 타령이야!”
우리는 그 옛날 상대방이 했던 낯간지러운 멘트와 행동들을 들먹이며 처음 만났던 순간을 떠올렸다.
 



남편을   7  쯤이다. 우리는 다르면서도 같은 회사에 다녔는데  명은 동쪽 빌딩에, 다른  명은 서쪽 빌딩에 사무실이 있었다. 1 로비에서 혹은 지하 식당에서 지나쳤을 법도 한데 운명의 장난인지  년을 서로 모른  지냈다.
그러던  회사 카페테리아에서 오랜만에 지인 S 마주쳤다. 간단한 인사말로 시작한 대화는 메신저 창으로까지 이어졌고, 사는 이야기는 이리저리 넘실대다가 연애사로 확장되었다. 따로 만나는 사람이 없다는  알게된 S 그때부터 나의 소개팅 상대를 성심섬의껏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다지 친하지도 않은데 이렇게까지 선의를 베푸는 S에게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천성이 원래 (긍정적인 의미로) 남의 일에도  벗고 나서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무튼 그가 데려온 첫 번째 소개팅 상대는 착실해 보이는 인상의 전문직 남성이었지만, 갓 입사한 터라 시간이 맞지 않아 약속이 흐지부지해졌다. 미안하다며 S가 데려온 두 번째 남성은 직전에 한 소개팅이 성공하여 연인으로 발전했다며 자연스럽게 취소되었다.

정말 미안하다며 S가 마지막으로 들이민 카드가 지금의 남편이다. 이미 두 번이나 파투가 났기에 괜찮다고 에둘러 말했지만 S는 끈질기게 나를 설득했다. 하지만 꺼림칙한 게 있었다. 바로 옆 건물에 근무하는 사람이란다. 그 때까지 나의 철칙은 ‘같은 회사에 다니는 사람과는 절대 연애하지 않는다.’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남편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단다. 이러한 두 사람을 두고 S는 몇 날 며칠을 꼬셔댔다. 진짜 진짜 진짜 괜찮은 사람이라는 첨언과 함께. (우리는 이 때를 회상할 때마다 남의 일에 대한 S의 열정에 감탄하고는 한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못 엮어줘서 안달인가 싶었다. 결국 어느 일요일 저녁, 우리는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어색하게 마주않게 되었다.



S는 소개팅 당일까지 당사자들의 이름과 연락처 조차 양 쪽에 공유해 주지 않았다. 모든 것을 주선자인 본인을 통해 연락하게 하고, 우리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근사한 레스토랑을 직접 서치하여 예약한 후 공지(?)를 했다. 그리고 향후 이 일에 대해서는 무조건 함구하겠다고 했다. 잘 되든 못 되든 간에.
항상 몇 분씩 늦는 편인 나는 희한하게 그 날따라 일찍 도착해 직원이 안내해준 자리에 먼저 앉아있었다. 집에서 쉬고 싶은 일요일 저녁이라 나가기 귀찮다는 생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음에도 늦게 온 꼴이 되어버린 남편은 내 등 뒤를 스쳐 서둘러 본인 자리에 앉았고, 날 보자마자 입이 귀에 걸렸다.(물론 철저히 나의 시선으로 해석한 장면임을 미리 밝힌다. 그의 입장은 또 다를지도 모를 일이다.)



처음  남편의 인상은  특색이 없어 보였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어디쯤. 그런 그가 이야기를 하던 도중 씨익 웃는데    가득히 깊숙한 보조개가 쑤욱 들어가는  아닌가. 꿀이 줄줄 새어나올  같이 움푹 패인 보조개에 상대방을 무장해제 시키는 환한 미소.  때부터 조금 관심이 생겼다. 게다가 무난해 보이는 파스타를 고른 나에게  남자가 스테이크를 먹자고 한다. 자기는 고기를 좋아한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마음에 들어서 같이 스테이크를 먹고 싶었단다.(호호  양반, .)
그런데 취미나 관심사 등의 소개팅 단골 레퍼토리를 이야기하던  남편의 얼굴 아래로 무언가가 눈에 거슬렸다. 그는 꾸안꾸 스타일의 찰랑거리는 브이넥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가슴 부위에  튀어나온 그것이 자꾸만 나를 노려보는  아닌가. 아마도 얇고 부들거리는 상의 소재상 더욱 도드라지는  했다.    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지만 나는 자꾸만 수줍었다.



최대한 목 아래쪽으로 시선을 내리지 않으려 애쓰며 어찌저찌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워낙 얼굴이 작아서 앉아있을 때는 몰랐는데 그는 키가 상당히 크고 비율 또한 좋았다. 그러나 안타까운 건 그 와중에도 존재감을 한껏 뽐내는 유두유두유두.
우리는 식당 앞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더 마신 후 헤어졌다. 차를 가져온 나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제야 서로의 연락처조차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남편은 부랴부랴 내 뒤를 따라 왔지만 이미 나는 출발하고 없었단다. 하필 해외출장 길에 오른 주선자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다급히 회사 메신저에 접속해 알아낸 번호로 그는 잘 들어갔냐는 안부 문자를 보냈고 우리는 몇 번의 애프터 후 정식으로 사귀게 되었다.




지금 난 그 유두천사와 함께 한 침대에 누워있다. 저 쪽 방에서 꼬물거리며 자고있는 아기토끼 하나는 덤. 나는 남편의 가슴팍을 꼬집으며 얄궂게 놀렸다. 남편은 쳇쳇 거리며, 연신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꼬아대던 나를 보며 자기가 좋아서 그러는 줄 알았단다.
“그건 머리 웨이브가 풀려서 꼬아준 건데?”
“아니야, 그런 거랑은 달라. 내가 너무 좋아서 부끄러워 배배 꼬는 거였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내가 맞네, 니가 맞네 하다가 세련되지 못한 궁금증 하나가 떠오른다.
“그런데 요즘에도 소개팅 많이 하나? 마스크 쓴 채로 만나는 건가?”
“글쎄. 모르는 사람하고 마주 앉아있기 불안할 텐데. 마스크 썼을 때랑 벗었을 때 느낌이 다른 수도 있겠다~”
우리는 쿡쿡거렸다. 지인들조차 기혼이거나 소개팅과는 거리가 먼 나이대로 넘어간 지 오래라 요즘 선남선녀들의 만남에 대해 들을 데가 도통 없다. 남의 연애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는 법인데.



그래서 말인데, 이 아줌마는 참 궁금합니다. 요즘 소개팅은 어떻게들 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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