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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수 Aug 16. 2021

Fare thee well

'드디어 닫는다더라'


오늘의 점심 애피타이저는 싸이월드였다. 사람으로 치자면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연명한 지 이미 어언 10년은 된 듯하지만, 그래도 이제야 그 산소호흡기를 뗀다니 시원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한 때는 하루하루 미니홈피 방명록을 확인하는 게 인생의 낙이었는데, 인생사 새옹지마, 아니 서비스사 새옹지마. 사람의 노화가 서서히 저며들 듯 싸이의 찬란한 젊음도 지나가고 끝을 맞이했구나.


결국 남는 건 사진이니, '그래도 사진은 살려야지' 하는 마음에 싸이에 접속한다. 임종을 앞둔 서비스는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여기저기 빠진 이처럼 사이트 기능들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반응 속도도 요즘의 서비스라기엔 '참을 인' 자 투성이다. 좋은 서버를 굴릴만한 돈이 없는 거구나 하고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애잔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불편한 사이버 고행길을 지나 내 미니홈피 사진첩에 도착. 2008년을 마지막으로 박제된 내 세계를 소환한다. 사진첩에는 지금의 나에겐 너무나도 생소한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래 그런 사람이 있었지, 그런 여행을 갔었지. 머릿속 뒤편 어딘가에 숨겨져 있던 과거의 기억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내 생애 가장 반짝였을 순도 높은 시간을 담은 사진첩을 넘기다 보니, 익숙한 이름 하나가 여기저기 자주 등장한다. 스무 살 적 여자사람친구 징뇨.


징뇨와는 수시 합격자 모임에서 처음 알게 되어 베프가 되었다. 사랑받고 자란 티가 풀풀 나는 둥글둥글한 성격 덕에 별 에피소드 없이도 나와 친해졌고, 대학 생활의 고비고비마다 내게 큰 버팀목이 되곤 했다. 모든 걸 내팽개치고 올인했던 동아리를 반년 만에 때려치우고 혈혈단신 아싸가 되었을때의 그녀는 내 점심 상대가 돼주었고, 각자가 좋아하는 누군가, 각자를 좋아하는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연애사를 공유했다. 군대에 다녀오고 학기가 엇갈리며 더는 신입생 때처럼 많은 시간을 같이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간간이 얼굴 보고 소식을 나누며 서로를 응원하곤 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많다. 나를 경계하던 그녀의 새 남자친구와 마침 같은 수업을 듣다 친해져서, 나중엔 징뇨에게 그 친구와 헤어지지 말라고 조언했던 기억. (그 친구, 몇 년 전 우연히 길에서 만나 점심을 같이했다.) 짝사랑에게 선물할 옷을 함께 고르러 다니던 기억, 그 짝사랑과 헤어지고 복수심에 숙대 앞에 함께 찾아가 못하는 술을 진탕 마셔댔던 기억. 여행 중 지금의 여자친구를 처음 만나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조언을 듣던 기억까지.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만난 게 언제였더라. 여느 어른들이 그렇듯, 학교를 졸업하고 서로의 밥벌이를 챙기다 보니 소중한 그 사람과도 자연스레 멀어지고 말았다. 졸업 후 징뇨는 시험 준비에, 나는 해외에 나가며 만남이 드물어지기 시작했고, 2016년 초 즈음이던가 첫 직장에 입사하고 사당역 어딘가에서 간만에 얼굴을 봤던 게 마지막이었다. 한창 취업 준비에 열중하느라 공감 능력이 떨어졌던 건지, 그날 나는 아직 취업 준비 중인 그 친구 앞에서 취업 무용담을 쉴새 없이 늘어놓았다. 어찌 보면 간만에 본 친구가 반가워 그간의 에피소드를 늘어놓았겠지. 이제 와 생각해보니 조금은 불편했을 수도 있는 자리였지만, 그래도 별 기색 없이 즐겁게 얘기를 나눴고, 또 보자 말하며 그날을 마무리했다. 이제 와 생각하면 그때 징뇨에게 필요한 건 '잘했어'라고 옆에서 토닥여 줄 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렇다고 연락이 아예 끊긴 건 아니다. 둘 다 아직 10년 전의 전화번호를 유지하고 있고, 싸이월드-페이스북-인스타그램으로 이어지는 SNS 덕에 서로의 일상을 관찰할 최소한의 장치만은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왜일까, 나는 쉽사리 메시지 버튼을 누르지 못한다. 몇 년간의 공백이 어색하기도 하고, 이제 서로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르기에, 그날에 대해 사과를 하기도,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기도 조심스럽다. 한편으론 그렇게 연락이 닿아 한 번 더 얼굴을 본다고 해도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는 담담한 마음이 앞선다. 결국 30대가 된 나는 우리의 관계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알기에 한 발자국 더 내딛지 않고, 멀리서 안녕을 빌어본다.


뉴스를 보니 싸이월드 대표가 회사를 살리기 위해 여기저기서 고군분투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진다. 애석하지만, 우리는 모두 싸이월드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걸 알고 있다. 그간 붙어있던 산소호흡기 정도야 다시 붙여둘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회사가 돌아갈 수는 없는걸. 싸이는 모두에게 책장 한 곳에 꽂혀있는 졸업 앨범이고, 졸업 앨범은 과거의 추억일 뿐 그 이상은 아니다. 싸이의 서비스 종료를 앞두고, 나는 싸이월드의 끝이 조금은 더 멋들어질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을 갖는다. 어차피 맞이할 끝이었다면, 모두에게 추억을 회상할 기회를 주는 건 어땠을까 하는 생각. 그러고 보니 싸이도 나도 아직 멋들어진 헤어짐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세상에는 마음처럼만은 되지 않는 일들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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