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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수 Aug 16. 2021

저녁만 있는 삶

매일 아침 7시반 즈음 기계적으로 눈을 뜬다. 누군가에는 충분히 늦은 호사스런 늦잠이겠지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다보면 어느덧 8시. 침대를 벗어나 샌드위치로 간단한 요기를 하고, 후다다닥 샤워를 끝낸다. 오늘은 뭘 입어야하나 1분쯤 고민을 하다 '오늘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에 맘에 들지도 않는 옷을 대충 걸쳐 입고 현관문을 나선다. "맞다. 마스크를 깜박했지" 엘베가 8층에 도착하기 전 부랴부랴 다시 현관문을 열고 마스크 장착 완료.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출근이 수동태에 가깝다면, 퇴근 이 후의 삶은 능동태에 가깝다. '어떻게 행복할 것인가'하는 어마어마한 문제를 가지고 스스로 답을 찾고자 정한 루틴들. 말은 번지르르 보이지만 그 결과물은 뻔하디 뻔하다.


하나. 웨이트 트레이닝. 서른이 되어 난생 처음 배가 나왔다는 소리를 듣고 충격받아 시작한 퍼스널 트레이닝. 어느 덧 1년을 넘겨 이제 한해 보너스 정도는 트레이너 주머니에 들어간 것 같은데, 내 몸뚱아리는 아직 헬스장 전단지에 실리기엔 택도 없다. SBD. 스쿼트-벤치프레스-데드리프트로 이어지는 쇠질의 재미는 이제 충분히 알겠는데, 왠지 운동하는 시간보다 운동 유튜브 보는 시간이 더 긴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매일 밤 거울을 보며, 이 정도면 많이 좋아졌지 하는 자기 최면의 시간을 갖는다.


둘. 재테크 모임, "부의 추월 차선". 축약하여 부추선. 딱히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재테크 공부 살짝 해보자는 회사 동기의 꾀임에 넘어가 어느덧 반년차가 되었다. 원유선물이니, 외환시장이니 이것 저것 어줍잖케 공부하다보니 남 가르치기 좋아하는 나는 어느새 부추선을 이끄는 선장이 되어 있었고, 그 배는 이제 공인중개사 취득이라는 생뚱 맞은 대륙을 향해 항해중이다. 나와는 평생 거리가 멀 것 같았던 "공무원 시험 합격은 에듀윌"의 회원이 되어 거금 백만원을 지출했고, 이제 나는 10월까지 영락없는 수험생 신세이다.


셋. 뜬금 없는 이직 욕구. 지금 직장도 한번의 이직을 통해 안정적으로 안착한 곳이지만, 뭔가 모를 아쉬움이 남는다. 대우도 대우지만, 내가 더 좋아할만한 일이 세상 어딘가에는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여기저기 들락날락거리다, 네이버 커리어에 접속한다. 그렇다. 뜬금없이 네이버로 이직하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방법도 이직 가능성도 전혀 가늠이 잡히지 않는다. 그냥 주말에 로또 한번 사는셈치고, 경력 원서나 제출해봐야지, 생각한다. 아니, 그러다가 진짜 붙어버리면 어떡하지. 또 고민한다.


오늘의 저녁은 세가지로 정리되지만, 그간 내 저녁에는 참 많은 손님들이 다녀갔다. 작년 이맘 때 쯤에는 문과 인생 최초로 코딩이란걸 배워보겠다고 밤마다 카페에서 몸을 축내기도 했고, 수 년 간의 수영장 출입 끝에 겨우 맥주병 신세를 면할 수 있었다. 나름 직장인 코딩대회 우승도 하고, 접영도 할 줄 알게되었는데, 디테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허술한 내용 투성이다. 큰 맘 먹고 시작한 코딩은 개점 휴업 상태이고, 접영은 어디가서 내놓기 민망한 수준이다. 효율을 생각하지 말고 우선 무식하게 저지르고 보는 내 성격이 만든 결과물이다. 그래도 괜찮다. 그렇게 무식하게 하다보면 무언가가 남곤하니까.


그간 내 저녁은 망망대해 속 개헤엄같았다. 헤엄치지 않으면 왠지 그 자리에서 침전해버릴 것 같아서, 이대로 내 삶이 결정되어버릴것 같아서 그 불안함에 팔다리를 체계없이 무리하게 내뻗는 자유형. "이대로 평생을 살면 행복할까?" 라는 질문에 쉽사리 "YES"라고 대답할 수 없었기에 답을 얻기 위해 달리곤 했다.


"생각을 한다.

헛헛한 마음은 아무런 생각도 쉽사리 잡아두지 않지만, 생각을 한다.

새로운 것은 없을까

새로운 삶은 없을까

내 삶은 이대로 결정되었나"


2016년 9월 9일의 내 일기는 2020년에도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다. 아마 2030년에도, 2040년에도 똑같은 고민을 하겠지.


하지만 이제 대충은 안다. 삶의 끝까지 나는 망망대해 속 헤엄을 계속할 것이고, 그렇게 헤엄치며 때로는 불안해하고 때로는 행복을 느끼겠지. 그냥 편하게 생각하련다. 또 무어가 나를 스쳐갈 지, 그 안에서 어설프게나마 나는 또 어떤 흔적을 얻을지.


"Happiness is a journey, not a destination" 스무살 마음이 동했던 누군가가 내게 주었던 한마디를 나는 이제사 다시 꺼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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