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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수 Aug 16. 2021

여행랜덤디펜스

직장인의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사건 중 하나는 새 직장으로의 이직을 앞두고 붕 뜬 시간이 생기는 것이다. 1년 간의 첫 사회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을 확정한 내게도 그런 행운이 펼쳐졌다. 11월 말일 퇴사, 다음해 초 언젠가 신입으로 입사라는 스케쥴 덕분에 최소 1개월, 길게는 2개월의 자체 방학이 생겨버렸고, 어느덧 직장 생태계를 파악한 나는 이게 어쩌면 내 인생의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조건 멀리, 무조건 길게"라는 모토로 여행을 결심했다.


"무조건 멀리, 무조건 길게"라는 목표에 걸맞는 곳을 선정하는 것은 매우 쉬운일이었다. 지도를 펼치고 한국과 정반대 즈음을 찍고, 지금이 아니면 가지못할 곳을 고르다보니 답은 바로 남미, 하나였다. 장소는 정했으니 기간을 정해야 할 터. 애석하게도 새로 입사할 회사는 입사일을 정확히 알려주는 것을 미뤘고 입사일을 확정한 12월 말이 되어서야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계획이라고 해봐야 리마 IN / 리우 OUT 의 일정확정과 비행기편 예약이 전부에, 발생할 비용들은 미래의 내가 해결해주리라는 믿음으로 난생 처음으로 마통을 개설하는 것으로 해결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무계획 여행이 시작됐다.


생각해보면 내 여행은 항상 그런 식이었다. 친구들과 같이 떠나기보다는 혼자 떠나는 것을 선호했고, 거기서 현지인이든 여행객이든 누군가를 만나 그때 그때 가고 싶은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물론 어디가 좋다더라, 어디는 꼭 가봐야한다, 라는 주변의 조언을 주워담아 구글 지도에 핀을 꼭꼭 꽂아두긴했지만, 때로는 핀이 없는 곳에 가기도, 때로는 핀이 있는 곳을 패스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다보면, 예상치못했던 사건과 인물들이 등장했고 그게 내 여행의 변곡점이 되곤했다.


남미 여행의 변곡점은 페루의 사막마을 와카치나에서 발생했다. 무계획으로 다닌 탓에 새벽 즈음이 되서야 와카치나에 도착해 남들 다 체크아웃할 시간에 체크인할 숙소를 찾기 위해 마을 초입에 들어갔다. 아무리 관광지라지만 이른 시간이기에 거리는 한산했고, 멀리서 나를 발견한 봉고차 아저씨가 내게 달려와 외쳤다. "쏜?" 기특하게도 내가 한국인인걸 알아보긴 하셨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쏜'이 아니라 '최'인걸. 아저씨께 나는 "쏜"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던중, 진짜가 등장했다. 세상 천진난만해 보이는 20대 초반 희멀죽한 남자애. 이때가 기회다 싶었던 봉고차 아저씨는 내게도 영업을 시작했다. 싸게 해줄테니 너도 가자, 짐은 내가 맡아줄께, 등등에 감언이설로 넘어간 나는 봉고차에 가방을 싣고 합류를 결정했다. 아차, 그 차는 나스카 유적을 보러 미니비행장으로 향하더라.


시시했던 나스카 유적 탐방을 끝낸 후 우리는 자연스레 일행이 됐다. 마침 혼자였던 우리 둘은 이후 함께 마추픽추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급한 일정인 탓에 마추픽추로 가기위한 버스 교통편이 마땅치 않았고, 리마로 돌아가서 비행기를 타고 쿠스코로 가기로 결의했다. 남들 다 육로 직선으로 가는 경로를 굳이 다시 뒤로 돌아돌아 비행기로 간다니, 엄청나게 비효율적인 여행 경로이긴했다. 하지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둘다 목적 없는 여행인 것을.


그 이후에도 우여곡절 사고는 꾸준하게 발생했다. 겨우겨우 시간맞춰 예약해둔 비행편 출발 2시간 50분 전 즈음 공항에 도착하니 비행편 세시간 전에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행편이 통째로 캔슬됐고, 졸지에 하루를 더 지내야 하는 신세가 되어 결국 20대 남성 둘이서 오붓하게 리마 밤거리 사랑의 공원을 거닐었다. (항공사는 손님이 적게 모여 비행편을 취소시킬 구실이 필요했던 것 같다.) 몇시간이라도 더 빨리 마추픽추에 도착하고자했던 우리의 의지는 결국 우리를 리마에 하루 더 머물게 만들었다.


돌고 돌아, 결국 우리는 마추픽추에 도착했고 녹초가 된 우리였지만 20대답게 즐길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꺼내어 다시 못올 그 시간을 만끽했다. 대체 여기에 어떻게 이게 있을까 싶었던 마추픽추의 위치에 감탄하고, 구름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는 그 모습에 매혹됐다. 과연 이 고생을 하면서 올만한 가치가 있었던 곳이구나하고. 그리고 마추픽추를 내려오며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가기로했다. 이제서야 생각해보면 우리는 무언가 계획이나 일정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동질감(?)을 느끼며 약간 우쭐한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 느낌 때문에 굳은 여행 속에서도 서로에게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잘 지냈던 듯하다. 여행자들의 약속이 매번 그렇듯 한국가면 서울에서 꼭 보자! 라는 약속을 남기고 각자의 길을 떠났다.


피천득은 아사코를 세 번째는 아니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라했지만, 쏜과의 재회는 그리 늦지도 그리 씁쓸하지도 않았다. 6개월 즈음 후, 쏜은 남미에서의 느낌을 더 살리고자 남미봉사단에 지원했고, 이제 어엿한 중고 신입사원이 된 나는 강남역 어느 인도음식점에서 만나 안녕을 기원했다. 마침 어엿한 직장인 티를 내고 싶었던 나는 나름 그럴 듯한 음식점에 그를 데려갔던 기억과 여섯 자리 영수증을 받아들고 아무렇지 않은척 내색않던 기억만 남아있다. 아직 그때가 쏜과의 마지막이라고 단언 할 수는 없지만, 그 때가 이미 3년전이니 마지막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결국 삶도 여행이라 하는데, 어디로 튈지 모르는 하루하루와 고된 한걸음 한걸음. 그러면서도 쉬지않고 걷는 나 자신을 보면 그 말이 맞는 듯 하긴하다. 그렇다면 그 때 그 남미 여행처럼 누군가를 만나 함께하고, 즐거이 스쳐가며 발길 닿는대로 살 수 있을까. 내 인생에 또 어떤 쏜이 등장할 지 기대하며 하루를 살아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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