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성수 Aug 16. 2021

결혼 이야기

내 나이 서른이 넘도록 아버지는 잔소리를 하신 적이 없었다. 어릴적 도벽이 생겨 아버지 지갑에 손을 댔을때도 용서해주셨고, 갓 군 전역한 아들이 정신 못차리고 혼자 해외 나가살겠다고 할 때도 흔쾌히 나를 떠나보내셨다. 사실 자유방임에 가깝지만, 그 덕에 나는 성장과정에서 극도의 자유를 맛 볼 수 있었다. 그랬던 아버지가 요즘은 술 한잔 걸치시면 매번 똑같은 잔소리를 반복하신다. "내가 술 마셔서 하는 소리는 아닌데.."라며 운을 띄우곤, "너 만나는 친구랑 결혼 얘기는 안하냐?" 라고 직구를 투척. 하지만 이미 그 직구에 질릴대로 질려버린 나는 일부러 더 당당하게 "전혀요!" 라고 번트를 대며 상황을 회피한다.


사실 그 질문을 던지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연애 8년차, 나이는 어느덧 30대 중반에, 남녀 모두 밥벌이는 해결했고, 집이야 원래 못사고 시작한다치면 그래 못할 것도 없지. 당장 두달 뒤 결혼한다고 해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상황이긴 하지. 그렇지만 그녀와 나의 연애는 8년째 결혼얘기는 쏙 빼놓고 순항중이다. 남들 다들 하니까 나도 하는건 뭔가 꺼림칙하다는 건 우리 둘 모두 동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 둘 유부의 세계로 떠나는 친구들을 보면 마음 한 켠엔 왠지 모를 불안감이 샘솟는다. 그리하여 올해의 투두리스트 하나가 결정됐다.'결혼에 대한 입장 정리'


연애는 길었지만, 결혼 얘기는 쏙 빼놓고 지내왔기에 그간 정해둔 건 별 거 없었다. 사실 그 긴 연애동안 양가 부모님께서 뭐하시는 분인지도 잘 모르는 걸. 결혼에 관해 그간 파악된 사실은 그녀는 아이를 원하지 않고, 나는 아이 없는 결혼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 뿐이다. 내 입장을 더 명확히 정리하자면, 사실 나는 결혼 불가지론자에 가깝다. 쉽게 말해 결혼이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수많은 친구들이 길을 닦아놓은 덕에 여러가지 경험담들은 이미 충분히 들었다. 아이 가지기전까진 캠핑 온거 같다더라, 양가 부모님 기념일 챙기는 게 고역이라더라, 생각보다 별 거 없다더라 등등. 그 덕분에 결혼하면 삶이 180도 바뀔거라는 판타지는 사라진지 오래다. 그렇지만 결혼하게 잔잔하게 사는 것도 썩 나쁘진 않고.


근데 왜 해야하지? 인간 본연의 외로움을 해소하기에는 결혼이 그 해답이 아니라는 걸 알고, 그래도 아이 하나쯤은 있어야 내 노년이 다채롭지 않겠냐하면 아이가 연금보험마냥 금융상품화되는 것 같아 선뜻 수긍이 되지않는다. 나는 지금의 삶이 그다지 나쁘진 않은데, 결혼을 반드시 해야할 이유를 모르겠다. 번 돈으로 적당히 노후 준비하며 취미즐기고 여행다니는 삶이 꽤 괜찮아보이는데 말이다. 생각해보면 살아가면서 남들 다 하듯 별 고민 없이 초중고 졸업 - 대학 입학 - 취업 코스를 밟아왔는데, 왜 그 마지막 코스인 결혼은 이리도 망설이게되는걸까. 나는 언제쯤 개종하여 결혼필수론자가 될 수 있을까.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지 평생 고민만하다가 요단강 건너진 않을까.


어찌됐든 이번 주말에도 또 한 명의 친구는 유부의 세계로 사라질 예정이다.



작가의 이전글 Fare thee well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