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문과 옥천암 마애보살좌상
항상 가좌역부터 포방터시장까지 달리는 길이 있다. 아마 살면서 제일 많이 반복한 나의 러닝코스다. 왕복 10km 이기에 기록재기도 좋고, 약간의 업다운 빼고는 평지라 조깅하기도 좋다.
연인과 이별한 뒤 대부분 많은 시간들이 생기기에 공허함을 느낄 것이다. 나 또한 그 공허함을 견디기 위해 더 달렸고, 그날만큼은 길의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작은 천을 건너 10분쯤 갔나. 말도 안 되는 풍경이 있었다. 홍제천을 아래로 두는 데크길을 달려가니 데크 옆에는 5m가량 되는 불상이 있었다. 밤에 달렸기에 주변은 어두웠고, 조명이 불상을 비추고 있었다. 하얗고 큰 불상은 조명을 받아 더 빛났다.
사진에서 보이듯이 거대한 하나의 돌에 부처님이 새겨지고, 그려져 있다. 고려시대부터 있었다고 한다.
10분 남짓 가면 또 하나의 정갈한 풍경이 있었다. 홍지문. 홍제천의 얕은 물줄기들은 조용히 홍지문을 지나고 있었다. 청계천 정비사업 같은 느낌도 나면서, 사람은 거의 지나가지 않아 마치 계곡에 나 혼자 온 느낌도 들었다.
두 풍경을 하루에 접하고 나서는 너무 놀라서. 3일 연속으로 갔던 것 같다. 조금 이른 초저녁에 가니 실제로 스님께서 기도를 드리고 계셨다. 아주 늦은 밤, 비 오는 날에는 그 분위기를 더 더해주었다.
내가 힘든 상황이었기에 더 극적으로 느꼈는지, 평소에 갔어도 놀랄만한 곳이었는지 생각해 봤을 때. 그냥 가도 좋은 곳이 정말 맞다. 하지만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고요히 물소리와 불상을 받아들이면 긴장이 풀린다.
열심히 만들어주신 선대의 디자이너, 메이커 분들에게 감사하다. 최고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