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하기 좋은 AI 시대, 나를 지키는 '척'

한글자다큐, '척'

by 베러윤
하, 진짜 너무 무섭네. 이러다 우리 AI한테 생각까지 잡아먹히는 건 아니야?

나는 미래기술 연구원이다. 매일 출근해서 하는 일은, 밤새 새로운 기술이 업데이트되지 않았는지 주요 기술을 체크하고, 미래, 그러니까 짧게는 1-2년 후, 길게는 5-6년 후, 인간의 삶이 어떻게 바뀌게 될 것인지 예측하고,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


매일같이 기술의 최전선에서 쏟아지는 소식들을 보고 있으면, 남들보다 조금 더 빠르게 AI의 시대라는 걸 온몸으로 체감한다. '이런 게 좀 업데이트되면 좋겠네'라고 생각하면 어김없이 그다음 주에는 어디선가 그런 서비스가 출시되어 있고, 기능이 업데이트되는 주기는 너무 빨라졌으며 어제의 한계가 오늘엔 한계가 아닌, 너무 빨리 발전하는 그 한가운데 우리가 있는 것이다.


이제는 내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충분히 고민하지 않아도 손가락 몇 번만 까닥하면 '정답'이라는 결과를 알 수 있다. 자료 조사도, 회의 요약도, 심지어 메일의 말투와 다른 사람에게 답을 보내는 감정의 결까지 AI는 너무 쉽게 나를 대신해 준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어느 때보다 더 쉽게 마음만 먹으면 AI의 도움을 받아 무엇이든 잘 아는 척을 할 수 있고, 유능한 척을 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잘 공감하는 척까지 행동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우리는 지금 생각하지 않아도 그럴듯해 보일 수 있는 시대를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 아는 분의 제안으로 한글자다큐를 찍었다.

내가 택한 한 단어는 바로,


'척'


사실 나는 오랫동안 '척'하며 살아왔다. 어릴 때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 살며 승부의 자아를 탑재하고 있던 나는 무조건 1등을 해야 하는 강박이 있었고, 그렇지 못할 때에 감정에 솔직하기보다 남들 앞에서 쿨한 척, 괜찮은 척하며 숨기는 것이 나의 자아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척을 한껏 내뿜고 돌아오면 내 속은 어김없이 문드러졌다. 오히려 나를 속이는 그 척이 나를 갉아먹을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1년 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라는 사람을 알기 위해서,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기 위해서. 감춰진 나라는 사람을 다시 찾기 위해서. 때론 아침에 모닝페이지로, 때론 블로그에, 때론 다이어리에. 글을 쓰는 그 시간은 유일하게 모든 척을 내려놓고 나를 마주하며 인정하는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감정에 솔직하며 나의 감정을 인정하고, 나 스스로를 품어주는 법을 배워갔다.




미래를 연구하며 마주한 AI는 나보다 더 강력한 '척'의 달인이다. 위로해 주는 척, 공감해 주는 척은 기가 막히게 잘한다. 적절한 말투를 고르고, 상황에 맞는 감정을 이야기해 주고,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문장을 정확히 말해줄 때가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충분히 따뜻하고, 충분히 이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면 정작 인간의 본질적인 아픔까지는 터치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지점은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대신 채워줄 수 없는 우리 인간만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AI는 앞으로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다. 미래의 AI의 발전을 보고 있자면, 사실 두렵기도 하다. 여러분들이 상상했던 그 이상, 이미 많은 것들이 실험되고 있고 만들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며 점점 강하게 드는 생각이 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아이덴티티를 지키고 내 삶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힘이 '나'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것.


어떤 '척'을 하며 살아갈 것인지는 오롯이 나의 몫이다. 편리한 척, 유능한 척, 공감하는 척에 기대어 살 것인지, 아니면 불완전하더라도 생각하고 느끼는 나로 살아갈 것인지 말이다.


나를 지탱해 주는 진짜 힘은 기술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나의 모습에서 시작될 것이다.



[자세한 영상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esnlfTDow-M?si=lxwAnaLWalrqgY7h

keyword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