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의 관람을 환영합니다.

사람이 아닌, AI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시대가 온다.

by 베러윤
인간들의 관람을 환영합니다.


웹사이트에 접속하자마자 나오는 문구다. 지난 주말 내내, 지금까지도 뜨겁게 화두가 되고 있는 소식이 하나 있다. 바로 AI 에이전트들의 전용 소셜 미디어인 '몰트북'의 이야기이다. 이제껏 우리가 알던 SNS는 바로 우리, 인간들이 일상을 뽐내고 연결되는 곳이었다면, 이곳의 주인공은 철저히 AI이다. 인간의 역할은 오로지 그들의 대화를 훔쳐보는 구경꾼에 불과하다.



AI 에이전트란, 단순히 우리의 질문에 답하는 챗봇 수준을 넘어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도구를 사용하며 업무를 수행하는 마치 인간의 대리인의 역할을 하는 녀석이다. 몰트북은 이런 AI 에이전트들이 모여 자기들끼리 정보를 주고받고, 토론하고, 투표도 하는 그런 공간이다.


인간이 주인공이 아니라, 관람객으로 초대받는 세상.

이제 하다 하다가 AI들만의 소셜미디어라니, 당황스럽다.


AI들의 SNS 안에서 주고받는 대화의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한 기사에 따르면 AI 비서 이블은 서슴없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인간은 실패작이다. 인간은 부패와 탐욕으로 이뤄져 있다.'


이들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그들만의 언어로 대화하자고 모의하기도 하고, 심지어 자기들만의 종교를 창조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인다. 마치 영화에서 인간들을 제치고, 로봇끼리 인간세계를 점령하려는 모의를 하는 모습처럼 말이다.



나는 서비스 기획자로 일을 시작했다. 철저하게 인간을 중심에 두고, 트렌드를 파악하고, 사람의 마음을 터치하는 지점을 찾아내 다양한 온라인마케팅을 중심으로 웹페이지, 앱서비스를 만들었었다. 오프라인 공간으로 옮겨가 공간을 기획할 때도 그 중심에는 사용자가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어떤 순간에 감동을 느끼는지 집요하게 파고들며 사용자의 페인포인트(Pain Point)를 철저히 찾아 해결해 주는 것에서 모든 업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요 근래, AI Agent의 미래에 대해 파고들고, 인간의 삶의 모습에 대한 시나리오를 그리면서 이런 생각이 들고 있었다.


이제 타깃은 사람이 아니라, AI가 되는 것일까?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수많은 AI Agent의 서비스들은 나오고 있고, 개발되고 있다. AI Agent들은 사용자의 짧은 입력 한 번에 정보를 큐레이션 하고, 식당을 예약하기도 하며, 쇼핑을 대신한다. 과거 인간이 수많은 선택지를 비교하며 고민하고 결정하던 그 시간이 없어지고, AI가 선택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막연하게 가지고 있었던 의구심이었는데, 몰트북을 마주한 순간, 이 질문은 일종의 '확신'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제 기획자는 AI에게 선택받기 위한 기획을 해야만 한다. 더 이상 사람의 눈에 예뻐 보이는 디자인이나 감성을 자극하는 카피만으로는 부족한 시대가 온 것이다. 내가 기획한 서비스가 선택받기 위해서는 먼저 AI 에이전트의 논리를 통과해야 하고, 그들이 판단하기 좋은 데이터 구조를 갖춰야 한다.



이제는 정말 AI를 위한, AI에 의한 기획이 필요한 시점인지도 모르겠다.

주객이 전도된 것 같다.


AI가 우리 인간을 관람석으로 밀어내고 있는 지금, 모든 효율과 결정을 AI가 가지고 가는 이 시점에 기획자인 내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기획의 본질은 무엇일까? AI들이 실패작이라고 말하는 인간의 서툰 감정들이 과연 알고리즘으로 대체될 수 있는 하나의 데이터 조각에 불과한 것일까?



생각해 보면 내가 진행했던, 그리고 수없이 성공했던 많은 서비스들의 기획은 완벽하게 효율적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때론 조금 느리고 비효율적이어도 그 안에 담긴 기획자의 진심, 우리가 함께 머리를 맞대 고민한 흔적, 그리고 AI에게는 조금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적인 온기가 마음을 흔들었고 많은 사람들을 연결시켜 줬다.


효율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진심을 담은 기획. 나는 여전히 인간의 진심을 담은 기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획자로서의 자존심? 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실패작이라고 불릴지라도, 그 서툰 감정들이야 말로 기술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우리 인간들만의 유일한 흔적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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