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기꺼이 변화의 파도에 올라타야 하는 이유
이 연봉받고 생활이 가능하세요?
10년 차 경력직 면접 자리, 면접관이 내 전 직장 연봉을 확인하며 던진 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내 연봉은 지금 다니는 회사의 신입사원 초봉과 비슷했다. 코로나 시절이었다. 모든 상여금과 복지가 끊겨 일 년을 버텼으니 내가 받았던 최종 금액이 적어 보일 수밖에.
어쩌면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었던 질문이었는데, 어쩐지 화가 나지 않았다. 돈으로는 쌓을 수 없었던 시간들이었으니까.
중국에서 대학원 생활을 끝냈던 내가 한국에서 돌아와 선택했던 첫 직장은 40명 있었던 온라인대행사 였다. 그 당시 내 첫 월급은 230만 원이었다. 나름 치열한 20대를 보냈던 시간들에 비하면 턱없이 적어 보이는 숫자였다. 하지만 그 당시 나의 직장 선택의 기준은 단 한 가지였다.
A부터 Z까지 온라인 생태계를 제대로 배우고,
나만의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는 곳으로 가자.
그 기준에서는 시스템이 세분화되어 갖춰진 대기업보다, 모든 것을 빠짐없이 배울 수 있었던 대행사가 딱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스타트업의 느낌이려나? 당시는 오프라인 부서를 쪼개 SNS 담당 부서를 만들고 앱/웹 서비스 기획자라는 개념이 막 생겨나던 때였다. 온라인의 생태계가 궁금했던 나에겐 굵직한 국내 대기업들의 온라인 마케팅을 대행하며 앱/웹 서비스 기획부터 리서치, 서비스 구성, 론칭, 그리고 운영까지 모든 프로세스를 배울 수 있는 대행사가 딱이었다.
그리고 몇 년 후, 웹/앱 서비스 기획자로 자리잡고 편하게 일할수 있던 시절, 새로운 기술이 파도처럼 치고 들어왔다. 바로 우리 모두 기억하는 '메타버스'였다.
몇 년 전 '메타버스, NFT, 웹 3.0 등' 새로운 이름들이 우후죽순처럼 나와 세상을 뒤흔들 때, 기획자도 두 부류로 나뉘었다. 어차피 웹/앱 서비스 기획자는 없어지지 않는 다는 부류와, 웹/앱 서비스 기획자를 내려놓고 메타버스 기획자로 도전해보겠다는 부류. 나는 후자였다. 맨 처음 직장을 택했을 때 처럼, 새로운 기술이 궁금해 또 그 파도에 올라탔다. 안주함 보다 변화의 흐름을 먼저 읽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남들이 '그거 곧 사라질 거품 아니야?'라고 이야기했고, 결론적으로 그렇게 되었지만 상관없었다. 기술 그 자체는 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어도 변화를 읽고 내 것으로 만든다면 바로 내 근육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돈'보다 '배움'을 선택해 키워온 근육들은 내 인생에서 하나씩, 하나씩 연결되어, 지금의 미래기술트렌드 연구원이라는 자리까지 데려다주었다.
면접관의 질문이 굴욕적이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그 시간들이 내 커리어에 가장 값진 투자였음을 확신한다. 지금도 지나온 그 시간들 속에 쌓인 경험들이 대기업에서는 경험 못하는 단단한 기반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내 연봉은 정확히 전 직장의 '2배'이다.
이 숫자는 갑자기 생긴 게 아니다.
과거의 내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왔을 때처럼, 세상이 통째로 바뀌고 있다는 느낌. 그 속에서 내가 이전에 알던 기존의 방법들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새로운 질서에 올라타지 못하면 도태될 수 있지만, 이 파도를 잘 탄다면 전혀 다른 또 다른 세상이 열릴 것 같은 설렘이 있는 묘한 기분 말이다.
십여 년 전, 온라인 세상을 알 수 있다는 설렘을 안고 선택했던 '웹/앱 서비스 기획자'라는 직업은, 이제 AI의 등장과 함께 그 영역이 눈에 띄게 축소되고 있다. 웬만한 기획안의 초안과 와이어프레임은 AI가 몇 초 만에 그려내는 세상이 되었으니까.
물론 기획자의 모든 업무가 AI로 대체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문서 작업이나 정형화된 설계만으로는 더 이상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 된 것 또한 사실이다. 아직은 사람의 세심한 손길이 필요하지만, 기술의 그 간극을 메우는 속도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답은 명확하다.
내가 대행사 바닥에서 'A부터 Z까지의 웹/앱 온라인 서비스 기획'의 흐름을 배워 내 근육을 만들었듯, 지금의 AI 역시 우리가 반드시 배워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할 '새로운 세상의 흐름'일뿐이기 때문이다. 회사는 바뀌고 기술은 달라지지만, 달라짐 속에서 끊임없이 배우는 것. 그것이야말로 기술이라는 도구에 대체되지 않는 유일한 인간사용법 아닐까?
부딪히자. AI는 빠르지만,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의 근육은 퇴화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해왔던 일이 없어지고, 새로운 직업이 생긴다 하더라도 달라짐의 파도 위에 기꺼이 올라탈 준비가 되어있다면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나도 매일 근육을 키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