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 나는 아직 직업인이 아니다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다.

by 베러윤
이제 됐네, 대기업이라니 부럽다! 끝까지 버텨!


딱 4년 전이었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8년 만에 대기업에 입사했다. 30대 후반을 달려가던 때, 대기업에 들어가기엔 결코 어린 나이는 아니었다. 운이 좋았던 걸까? 아니면 내 인생에서 대기업에 갈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세 번째 직장에서 새로운 커리어의 장을 열었다.




첫 번째 회사는 온라인 대행사였다.

서비스 기획자로 3년 반 일했다. 대행사의 특성상 거의 매일 새벽 퇴근을 늦은 오전 출근을 반복했다. '대행사'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는지, 대행사에 치이고, 아이디어에 치이고, 운영에 치인 CD들의 삶이 딱 내 모습이었다. 몸은 고되었지만 나는 대행사에서의 속도감 있는 일도 좋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넘어가니 외주의 역할이 말고 인하우스에서 오프라인 기획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그즈음, 운 좋게도 우리나라 공영 방송국 자회사로 이직하게 되었다. 그리고 방송국 자회사에서 운영하는 국내 최초 어린이 직업체험 테마파크에서 국내 주요 대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는 마케팅 업무를 맡게 되었다. 나의 인생 통틀어서 가장 재미있게 했던 회사생활이었다. 내가 설계하고 유치한 공간에서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과 이유 모를 뭉클함을 매일 느끼며 지냈다. 공영 방송국이라는 든든한 배경 덕분에 기업들과의 업무는 끊이질 않았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재밌고 안정적인 나날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코로나 19가 터졌다.

오프라인 기반의 회사들이 모두 흔들렸던 그때, 공영 방송국이라 하더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회사의 주요 사업이 위축되면서 내부적으로 온라인 신사업 TF팀이 꾸려졌고, 나는 '온라인 기획 경험 있다'는 이유 하나로 TF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 당시 떠오르던 키워드는 바로 ‘메타버스’. 회사에서는 재빠르게 '메타버스'구축을 실행하라 했고, 나는 그 흐름 한가운데로 던져졌다. 다시 돌아온 온라인 업무는 낯설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기회를 직감했다.


당시에는 메타버스를 해봤다는 것 자체가 이력서의 강력한 한 줄이었다. 예상치 못한 기회는 그렇게 내게 다가왔고, 메타버스 프로젝트 경험 덕분에 곧 여러 곳에서 제안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누구나 아는 대기업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아직도 소식을 전했을 때 나에게 보인 사람들의 반응이 생생하다.


정말 대단하다!
이제 안정적인 삶이네~
이제 결혼만 하면 되겠다.


그 말들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안도해던 것 같다.

‘그래 이제 정년까지 다녀보자!’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요즘 같은 시기를 지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정말 안정적인 곳이란 게 존재할까?




전 세계적인 팬데믹부터 시작해 경기 침체를 겪었고,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기업들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안정'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나는 지금의 일에 만족하고 있고, 회사 생활에도 큰 불만은 없다. 오히려 이곳에서 정년까지 일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 하지만 지난 12년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10년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나를 준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연처럼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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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인 : 규칙적으로 직장을 다니면서 급료를 받아 생활하는 사람

- 직업인 : 어떠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


책에서는 직장인을 '조직의 목표에 기여하는 사람'이라 정의했고, 직업인은 '조직의 틀을 넘어, 나만의 기술과 실력으로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 말했다.


그리고,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로 가기 위한 10가지 질문을 던져준다.

나는 이 질문들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조용히 물어보았다.


1. 직장인으로서 나의 정의와 별도로 직업인으로서 나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2. 지난 2주 동안 나를 위해서 의도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만든 적이 있는가?

3. 지금까지 직장생활에서 그 과정을 즐겼고, 여러 난관이 있었지만 높은 에너지를 유지하면서 일했던, 그리고 결과도 가장 만족할 만했던 장면 10가지를 적을 수 있는가

4. 나는 주변 사람들이 욕망하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내가 삶에서 그리고 직업에서 욕망하는 것을 아는가?

5. 나는 직장생활의 끝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은가?

6. 조직에 기대지 않고 돈과 교환할 수 있는 (팔 수 있는) 개인기, 전문성은 무엇인가?

7. 나는 직장에서 경쟁자를 이기기 위한 노력보다 나의 직업을 성장시키기 위한 공부를 해나가고 있는가?

8. 직장에서 나와 함께 일했던 사람은 나를 어떤 리더로 기억할까?

9. 직업을 만들어가는 데 나에게 장벽이 되는 것은 무엇이고, 나는 단순히 주변 사람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내가 나에게 기대하는 것을 억누르고 있지 않은가? 이 장벽을 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을 찾아보았는가?

10. 나는 나만의 워라밸 해석을 갖고 있으며, 쉬고 떠나는 문제에서 주도적인가?


지난 12년은 '직장인'으로서 성장하고 안정적인 기반을 쌓아온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직업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나’라는 사람은 어떤 일을 잘하고, 무엇에 가치를 두며,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 말이다.


그러면서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건 여전히 같다.


매일의 성실한 발걸음.


아무리 큰 그림을 그린다 해도, 그것을 완성하는 건 결국, 하루하루 쌓여가는 작은 발자국들일 테니까.


지난 12년 동안 쌓아온 발자국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줬듯이, 앞으로의 발걸음도 나를 내가 꿈꾸는 미래로 이끌어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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