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몰랐던 유전자 속 나의 기질
구본형 작가의『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라는 책을 보다가, ‘나만의 재능이력서’를 적어보는 챕터를 만났다.
첫 번째 단계는 '나'라는 강물의 시작점을 찾는 일, 즉 내 핏속에 흐르는 기질과 본성을 마주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내 핏속에 흐르는 기질을 생각해 보던 중, 방 안에서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바로 외할아버지께서 12년 전, 자손 대대로 보고 기억하길 바란다며 소량 제작하신 자서전이다.
이 책은 외할아버지가 대학생이셨던, 625 때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외할아버지는 가난 때문에 학업을 포기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그러던 중 미군부대에 통역사로 들어가게 되셨고, 그곳에서 만난 한 미군 장교의 도움으로 학업을 끝까지 이어갈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2010년,
기적처럼 은인이었던 미군 장교와 다시 만나는 일이 일어났다.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쓰신 외할아버지의 삶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이 자서전은 미군 한인 사회와 가족들에게만 배포된 세상에 단 한 권뿐인 귀한 기록물이자 내가 평생 간직할 소중한 책이다.
다시 책을 펼치며 알게 되었다.
내 유전자 안에는 '성실함', '도전'. '끈기'라는 기질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나의 뿌리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92세까지 타자로 일기를 쓰던 기록자, 외할아버지
매일 새벽 4시 하루를 여는 성실한 사업가, 아빠
결심하면 뭐든 이러 내는 추진력의 사람, 엄마
외할아버지는 늘 신문을 스크랩하고, 글을 쓰시는 분이셨다. 돌아가시기 3개월 전, 병원에 입원하던 전날에도 컴퓨터로 일기를 쓰고, 손으로 기사를 정리하셨다. 그때 외할아버지의 연세는 무려 92세.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남겨진 수십 권의 일기장들과 컴퓨터의 워드파일들은 외할아버지를 추모하며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아빠. 아빠는 지금도 주 6일, 새벽 4시면 눈을 떠 하루를 시작한다. 어릴 때는 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아빠의 모습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새벽기상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그걸 무려 40년 넘게 단 한 번도 흐트러짐 없이 한다는 건 정말 존경스럽다.
마지막으로 닮고 싶은 울 엄마.
솔직하게 말하자면 할아버지, 아빠보다 무서운 사람이다. 왜냐! 마음먹은 건 “한다면 한다”며 해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50대 초반에 공인중개사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3개월 동안 아침에 학원, 집에 와서는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곤 단 3개월 만에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땄다. 50대 후반에는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하더니 6개월 준비하고 진학원 대학원 과정을 몇 년 전 끝냈다. 이 모든 것이 불과 10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이쯤 되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기질, 이런 리듬, 이런 추진력이 내 안에도 흐르고 있기 때문에 아침에 눈을 뜨면 무언가를 쓰고 싶어지고, 낯선 것을 기획하고 설계해 보는 기획자의 일이 너무 재밌는 것이 아닐지.
외할아버지의 펜, 아빠의 새벽, 엄마의 도전과 용기가 내 안에서 하나로 만나고 있다. 나만의 재능이력서 첫 장에는 이렇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기록하고, 성실하고, 도전하는 사람의 유전자가 흐르는 베러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