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가 남겨준 이 세상 단 하나의 성경책
성경책 수선 가능할까요?
외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지 벌써 3년이 되었다. 내 기억 속에 외할아버지는 글 쓰시는 걸 참 좋아하셨고, 매일 신문 스크랩 하는 걸 꾸준히 하셨으며, 일어 번역도 하셨던 배움을 늘 놓치지 않으셨던 분이셨다. 쓰러지는 날 까지도 93살의 연세에 컴퓨터로 일기를 쓰고 계셨으니.
매일매일 공부하셨고, 매일매일 기도하셨고, 매일매일 성경을 읽으셨고, 매일매일 나라를 걱정하셨던 분. 그 모습은 어린 시절 나에게 '배움과 믿음'은 평생 해야할 길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려주셨다.
언제나 우리 옆에서 오래 계실 것 같았던 외할아버지는, 정말 어느날 갑자기 쓰러지셨다. 노환이었다. 밤늦게 전화를 받았지만 코로나로 병원에 갈 수 없었다. 요양병원으로 옮겨진 외할아버지는 정확히 3개월 뒤, 천국으로 가셨다.
장례를 치르고, 외할아버지 집으로 향했다. 당시에 외할머니도 치매로 요양병원에 계셨기에, 우리 가족들은 그 방을 정리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흔적들을 정리하며 각자 가지고 싶은 물건들을 챙겼다. 그리고 엄마와 내가 챙긴 것은 외할아버지의 오래된 성경책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처음부터 교회를 다니셨던 건 아니셨다, 외할머니가 많이 아프셨는데 병원에서는 원인도 못찾고 곧 위태로울 수 있다고 했다 한다. 그렇게 여러군데를 찾아다니며 마지막으로 간 곳이 교회였다. 그런데 교회를 다녀온 날부터 외할머니의 몸이 회복되셨다고 한다. 이 일을 계기로 온 집안 식구가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나 또한 모태신앙으로 태어나게 되었다.
이 성경책은 외증조할머니가 외할아버지에게 사주신 성경책이라고 한다. 몇십년동안 외할아버지의 손길이 닿은 성경책은 닳아 너덜거렸고, 여기저기 종이가 찢겨 나가 있었다. 이 흔적들은 한 평생 믿음을 붙잡고 살아오신 외할아버지의 기록이었다.
조금만 잘못 만져도 망가질것 같아 고이 모시기만 하다가, 우연히 '책 수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재영책수선'이라는 곳이었다. 낯선 직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보기 힘든 재질로 된 책이었기에 아무데나 맡길 수가 없어서, 혹시 이 책도 다시 되살릴 수 있을까 싶어 연락을 드렸다.
그런데, 돌아 온 답변.
한 권, 한 권 손으로 작업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앞에 대기도 많으셔서 1년 반은 기다리셔야 해요.
그렇게 우리는 1년 반을 기다렸다. 그리고 작년 겨울, 우리는 작업하시는 분을 만나서, 성경책을 건내 드렸다. 한시간 정도의 미팅을 통해, 어떻게 수선이 되는지 띠지는 어떤 색으로 할것인지, 겉에 가죽은 어떤 식으로 바뀌게 될지 세세한 부분 하나하나를 함꼐 고르며 수선의 과정을 준비했다. 책을 수선한다는 것은 단순히 오래된 종이를 새롭게 고치는 일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삶과 기억을 다시 잇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두달 뒤, 우리는 외할아버지의 성경책을 받아 볼 수 있었다.
낡은 겉표지는 일부만 잘라서, 새로운 가죽과 함께 갈아입게 되었고, 손때에 닳아 찢어져 있던 페이지들은 한 장 한 장 정성스럽게 복원되었다. 그리고 책 안쪽에는 외할아버지, 엄마, 그리고 내 이니셜을 새겼다. 이 성경책이 단순한 한 궈의 책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 흐르는 믿음과 사랑의 증표라는 걸 오랫도록 기억하라는 수선자의 배려였다.
그 날 수선 된 성경책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셩경책을 펼쳐 외할아버지의 메모들, 형광펜으로 줄쳐진 구절들, 접혀진 페이지들. 페이지마다 외할아버지의 숨결이 스며 있었다.
이 책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책이다.
소중한 내 책. 앞으로도 내 삶 속에서 가장 귀한 책으로 남을 것이다.
보고싶다. 우리 외할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