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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매년 휴대폰 번호를 바꿨었다.

나만의 인간관계 정리법

by 베러윤

20대 때 나는 매년 휴대전화 번호를 바꿨다. 1년에 한 번쯤은 쓸데없는 인간관계들을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번호를 만들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내 번호를 알려줬다. 어차피 변경번호 연동서비스를 했기 때문에 나에게 연락만 한다면 바뀐 전화번호 정도는 금세 알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걸러지고 남은 사람들을 보며 '아, 이게 진짜 관계구나'하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나만의 인간관계 정리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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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휴대폰을 가직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반에서 한두 명만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는데 고등학교에 올라가자 거의 모든 반 아이들이 갖고 있었다. 내 첫 휴대폰은 애니콜이었다. 단음 벨소리도 얼마나 소중했는지,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의 벨소리로 바꿔놨던 기억이 난다. TTL 요금제를 써서 매달 영화 예매권도 받았었는데, 그걸로 친한 언니와 영화도 자주 보러 갔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이유도 없이 매년 번호를 바꿨다. 처음에는 그랬다. 그냥 번호를 바꾸는 것이 리프레쉬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매년 반복되다 보니, 누군가의 관계가 조금이라도 버거워지면 번호를 바꾸는 게 가장 간단한 정리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처럼 카카오톡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던가, 번호 없이도 이어질 수 있는 세상은 아니었으니까. 새로운 번호를 만들고 지금 나와 연결된 사람들에게만 이어지는 것이 편했다. 그게 내 관계 방식의 질서였다. 그 시절에는 그게 나를 지키는 일이라고 믿었다.


나와 친한 동생 휴대폰에는 내가 이렇게 저장되어 있다. 베러윤 1, 베러윤 2, 베러윤 3.... 베러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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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제는 번호를 바꾸지 않아도 괜찮다. 물론 직장 때문에 이제는 바꿀 수 없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관계란 애써 지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줄고 멀어질 수 있는 게 인생의 일부라는 걸. 예전에는 '정리'라 부르던 일들이 지금은 그저 인생의 흐름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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