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독서가 나에게 주는 의미
인간은 어디까지 게을러질 수 있을까?
나는 현재 미래기술 트렌드 연구원이다. 먼 미래에 인간의 삶이 미래기술과 합쳐질 때 어떤 모습이 될지 기술과 라이프를 보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내 업무에서 AI와 로봇은 빼놓을 수 없는 주제이다. 미래의 기술을 들여다보고, 시나리오를 만들다 보면,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첫째, 인간은 어디까지 게을러질 수 있는가.
기술이 주는 편리함은 분명하다. 하지만 가끔은 '이것까지 해줘야 하나'싶은 순간들이 있다. 손빨래를 하던 시절에 세탁기가 등장했을 때, 그것은 주부에게 기적에 가까운 발명이었다. 인간의 편리함에 대한 욕망은 그렇게 점점 더 커져갔고, 이제는 건조기를 넘어 로봇을 빨래를 정리해주는 시대까지 상상하고 있다. 인간의 수고로운을 극단적으로 줄여주는 방향으로 말이다. 인간의 수고로움을 줄여주는 시대, 그럼 우린 이 시간에 어떤 걸 해야만 할까?
둘째, 몸이 편해지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사람의 뇌도 퇴화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내가 핸드폰을 처음 가졌던 것은 중3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내 머릿속에 가족을 포함한, 친구들의 전화번호가 있었으며 심지어, 전화로 배달을 받던 시절이니 자주 시키는 짜장면 집 번호 쯤은 당연히 외우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부모님 전화번호는 정확하게 외우고 있지만, 사실, 동생들 번호는 가끔 헷갈린다. 그 뿐일까? 어느 순간 더하기, 빼기, 곱하기, 계산하는게 왜이리 귀찮고 어렵던지. 그리고 우리는 기술의 편리함의 시대를 지나 AI시대가 오면서 이제 탐색할 필요도, 답을 찾아내야 하는 시간도, 기억해야 할 수고로움도 줄어드는 세상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제는 긴 글을 읽는것이 수고롭다. 유투브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초차 어느순간에는 버겁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AI시키면 그만이다. 모든 것이 이제 귀찮고 어려워 진다.
이런 생각들 속에서 나는 한 가지 선택을 했다. 의식적으로 독서를 시작한 것이다. 마치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 운동을 해야 하듯이, 뇌도 쓰지 않으면 퇴화할 것만 같았다. 그런 마음에 매일 책이라도 읽으면 최소한 생각하는 근육만큼은 죽지 않고 움직이지 않을까 싶었다.
생각하는 감각을 유지하는 것
내가 독서를 시작한 이유다. 매일 조금씩 회사를 오고 가는 길, 주말에 티비만 보며 버려졌던 시간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많게는 한 달에 5권이 넘게도 읽으면서 그렇게 일 년을 보내왔다. 책을 읽고 있는 순간만큼은 늘 만족스러웠다. '오늘도 난 머리를 썼다.' 스스로 칭찬하며 말이다.
문제는, 늘 그 다음이었다. 책을 읽을 때는 세상의 지식을 얻은 것 같고, 작가의 통찰이 내 것이 된 것 같아서 좋은데 책을 덮고 며칠만 지나면 기억이 흐릿해졌다.
사실 이 부분을 처음부터 알았던 건 아니다. 어느 날 서점에서 책을 고르다 문득, 이미 읽었던 책을 다시 구매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서 알게 됐다. 분명 나는 감동을 받아서 인덱스도 붙이고 밑줄도 그어두었는데, 어쩜 이렇게 기억이 휘발될 수 있는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중요한 건 책을 몇 권 읽느냐가 아니라, 책의 감동이 어떻게 내 삶을 바뀌었나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독서에 대한 태도를 조금 바꾸기로 했다.
책이 두껍든, 짧든, 책 한 권에 실천할 한 가지를 반드시 정해두자고 말이다. 거창한 변화가 아니어도 좋다. 오늘 하루 조금 더 천천히 행동해 보는 것, 책을 '소비'하는 대신, 삶으로 옮겨오는 일에 집중해보기로 한 것이다.
미래기술이 모든 걸 기억해 주는 시대에 살아갈 우리, AI가 모든 것을 요약해 주고 기억해 주는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많은 정보가 아니라, 그 사이에서 나만의 맥락을 발견하고 내 삶으로 뱉어내는 수고로움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나는 어제 읽은 책에서 한 가지를 오늘도 실천해 보고자 한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구체적인 실천의 영역은 온전히 인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