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은 전생에 어떤 관계였길래

눈만 마주치면 싸웠던 모녀 여행기

by 송백수

나는 애교가 많고 다정한 딸이 아니다. 특히나 엄마에겐 더욱 더 그랬다. 다정한 말 한마디 못하는 주제에 엄마에게 던지는 모든 말투에 짜증을 담았었는데, 그럼 꼭 뒤돌자마자 후회하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 실수는 지금도 진행중이다)


20대 중반에 어떤 큰 사건을 계기로 엄마와 나의 사이가 요상하게 틀어졌으며, 이 때가 내 인생의 암흑기(?)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엄마와 진지한 주제로 대화를 시작하면 무조건 마주보고 고성을 칠 정도의 큰 싸움을 하게 되었고 둘 중 하나는 눈물을 흘려야 싸움이 끝났다. 나는 엄마와의 싸움을 피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고민이나 무거운 주제의 대화는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고 일상적인 대화 이외에는 입을 꾹- 닫았다.

그렇다고 나와 엄마가 절대 서로 미워하거나 싫어한게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약간 애증의 관계와 비슷한...사랑과 미움이 공존하는 그런 사이랄까?


그러다가 약 3년 전,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엄마와 둘이 여행을 가겠다며 유럽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친구가 엄마와 여행을 계획중이었는데 마침 나와 엄마도 시간이 맞아 네명이 함께 여행을 가게 되었다. 그때 나는 몰랐다. 부모님과 함께 여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험난한 길인지를.






엄마와의 다툼은 약 2주간의 여행기간 중 절반이 지났을 때 부터 시작됐다. 지금은 그 이유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정말 사소한 일들로 싸웠다. 마침 여행 중반부터는 친구의 여행루트가 우리와 조금 달라서 따로 다녔기 때문에 다행히도 그 험한 모습을 직접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네명이 같이 모여 있을 때 분명 우리 엄마와 나 사이의 싸늘한 분위기를 친구도 느꼈으리라....

아무튼 싸움 덕분에 우리는 대화없이 서로 거리를 두고 그 멋진 거리를 거닐었고 배가 고프면 맛집을 찾아가기 보단 눈에 보이는 '아무식당'에 들어가 '아무거나' 먹었다. 어느 날은 싸우느라 가려고 했던 미술관도 포기하고 엄마는 숙소에서 반나절 잠만 잤다.


여행이 끝나갈 때 쯤, 어느 날 저녁부터 감기기운이 있어서 약을 먹고 잠들었는데 아침에 그 증상이 더 심해진 걸 느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행에 챙겨갔던 코로나19 자가키트를 했다. 결과는 양성.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그 당시 유럽에서는 코로나19에 대한 경계가 조금씩 풀릴 때라 환자들도 격리를 하지 않고 마스크 없이 길거리를 활보하고 다녔고, 그들 중 누군가가 퍼뜨린 바이러스를 내가 고스란히 맞아버렸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함께 여행했던 일행 중 나만 코로나에 걸렸고 마침 예약했던 에어비앤비 숙소는 방2개, 화장실2개였는데, 그 중 하나는 화장실이 딸린 큰방이어서 나 혼자 그방을 쓰며 자가격리할 수 있었다. 친구와 친구 어머니는 나머지 방하나를, 엄마는 자연스럽게 혼자 거실 소파에서 지내게 되었다.


엄마는 나 때문에 남은 여행기간에 예약한 투어도 참여하지 못했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엄마에게 혼자라도 다녀오라고 했지만 '딸이 아파서 누워있는데 내가 무슨 정신으로 투어를 가냐' 라며 거절했다. 그 때 당시에는 엄마의 그 마음이 1도 이해가 가지 않았고 고맙지도 않았다. 오히려 '엄마가 그러면 내 마음이 더 불편하다. 내 친구도 있고 가이드도 있는 투어니까 그냥 제발 가.' 라고 짜증냈다. 나는 그날도 엄마와 다퉜다.


엄마는 나 때문에 푹신한 침대 대신 불편한 거실 소파에서 잠을 잤고, 맛있는 음식 대신 한국에서 사온 짜파게티를 끓여 먹었다. 나는 코로나로 입맛도 잃어서 안 먹겠다고 했지만 엄마는 먹어야 기운차린다고 격리된 내방의 문을 살짝 열어 그 틈으로 그릇에 담은 짜파게티를 쏙 넣고 문을 닫았다. 나 때문에 엄마의 여행까지 망친것 같아 싱숭생숭한 기분으로 라면을 먹고 있는데 카톡으로 엄마가 찍은 여행사진들이 뭉텅이로 도착했다.


멋진 풍경사진들 틈에 사람 한명이 꼭 서있었다. 내 뒷모습이었다.

나는 여행 내내 엄마와 나란히 걷기 보단 앞장서 걸었다. 유럽여행도 처음, 아빠와 언니 없이 엄마랑 가는 해외여행도 처음이었기에 나는 바짝 긴장하며 지도를 보느라 바빴고, 혹시나 소매치기를 당할까 뒤처지는 엄마에게 빨리오라며 재촉만 했다. 하지만 엄마는 내 뒤에서 그런 나의 모습도 멋지게 담아주려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나는 그 사진을 보자마자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냥 엄마랑 나란히 여유있게 걸으면서 두런두런 대화도 나눴으면 참 좋았을텐데. 나는 무엇이 그렇게 바쁘고 혼자 무엇을 그렇게 해내려고 했는지, 엄마를 등 뒤에 재쳐두고 핸드폰만 검색하며 여기저기 끌고다녔다. 엄마와 '함께 여행'한 것이 아니라 그냥 '나의 여행'에 엄마를 데려왔다는 걸 여행이 다 끝나서야 깨달았다.






하지만 그걸 깨달았다고해서 3년 후 지금의 내가 개관천선하여 마냥 엄마에게 다정하고 애교많은 딸로 바뀐건 절대 아니다. 아직도 나는 무뚝뚝하고 버럭 짜증냈다가 뒤돌자마자 후회하는 바보임이 틀림없다.

그래도 세월이 흘러서 그때와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면,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것이다. (3년 전 나는 철이 없게도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이 마음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엄마와 다툴때마다 모든 이유는 엄마가 나를 아끼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멍청한 생각으로 나 스스로를 가스라이팅하고 지치게 만들었다.)


분명 나와 비슷한 엄마와 딸의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친구처럼 친하게 지내고 서로 애정표현도 부끄럽지 않게 하는 모녀들도 많겠지만, 꼭 그런모습이 아니라고 해서 나쁜관계라고 할 수 없다. 절대!


왜냐하면 내가 엄마를 사랑하고, 그것보다 더, 엄마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 우린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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