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 백수자녀의 반성문
우리집 구성원은 매우 평범하다. 아빠, 엄마, 한 살 많은 언니(내년에 결혼해서 출가예정), 나. 이렇게 네식구.
이 중 돈을 벌지 않는 사람은 나뿐이다.
아버지는 사실 얼마 전까지만해도 나와 백수동지였다. 회사에서 퇴직하신지 1년이 넘으셨는데, 그동안 실업급여도 받으시고 내일배움카드로 이것저것 자격증도 따셨다. 나이가 나이이다보니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으셨지만 국비지원으로 학원을 다니면서 취득한 자격증 덕분에 이번주부터 관련 현장에서 일을 시작하셨다.
엄마는 그동안 알게모르게 아빠에게 취업하라고 은근한 눈치를 줬었다. 그래서 아빠가 다시 일을 시작하셨을 때, 몸을 쓰는 일은 처음이어서 피곤하긴 하지만 그래도 엄마 눈치 안봐서 좋다고 하셨다. (맴찢)
엄마는 기업내부에 있는 사내카페에서 일을 하신다. 이전까지 카페에서 일한 경력이 꽤 있으셔서 계속 그쪽으로 일을 하고 계시는데, 들어보면 단순히 음료를 제조하는 일 외에도 김밥이나 샐러드, 샌드위치같은 간단한 식사메뉴도 만드신다. 직장이 판교에 있어서 경기도민인 우리 엄마는 꼭두새벽부터 나가 광역버스를 타고 출근하신다. 그리고 일찍 퇴근하셔서 집에오면 3시쯤 되는데, 출퇴근길이 고되다보니 대부분 소파에서 TV를 보다가 낮잠을 주무신다.
아빠는 20대 중반부터 30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쉬지 않고 일을 하셨다. 하지만 퇴직 후에도 국민연금을 받기 전까지 아직 2년이라는 시간이 붕 뜬다는 이유로 다시 취업해서 일을 하고 계신다. 엄마 역시 중간중간 일터를 옮기면서 쉬는 기간이 있었지만 아빠만큼 긴 시간 꾸준히 일을 해오셨다.
그에 비해 나는...? 여기저기 취업해서 일한 기간을 조각조각 붙여봐도 7년이 겨우 넘는다. (물론 부모님과 살아온 세월을 비교할 것이 못되지만...) 그런데 최근엔 체력이 안된다고 때려쳤지. 이 중 나이도 제일 어린게.
여기서 나는 자꾸만 '만약에'를 시전하게 된다.
만약에 내가 안정적인 직장, 또는 대기업에서 많은 월급을 받으며 꾸준히 일을 해왔다면?
"아빠! 이제 내가 돈 벌테니까 좀 쉬세요." "너무 무리해서 일 하지마 엄마. 내가 돈 벌고 있는데 굳이 판교까지 힘들게 출퇴근하면서 일할 필요 없잖아." 라며 큰소리로 자신있게 외쳤을 텐데....
부모님은 나에게 그들의 역할을 넘치게 해주고 계시지만, 나는 자식된 도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비오는 날 파도처럼 매섭에 넘실거렸다.
아빠는 지금 지방에서 혼자 지내고 계시는데 새로 구한 직장은 어떤지 궁금해서 연락을 했었다. 8시 부터 5시 근무인데, 회사가 왕복 40키로 거리에 있는 곳이라 기름값 빼면 남는게 없다고 매일 8시까지 잔업을 하고 퇴근하신단다.
"아빠 그래도 빨간날은 쉬죠?"
"빨간날은 무조건 쉬지. 우리 딸 맛난거 사주려면 빨간날도 출근해야 하는데~"
이 날 나는 분명 어디선가 내 이력서를 열람했지만 아무 연락도 오지않던 내 핸드폰이 원망스러움과 동시에, 아직도 나는 부모님이 돈을 벌면서 '키워야 하는' 어린 자식같다는 생각이 들어 엉엉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