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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Nov 10. 2022

지금 우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이 웃게 될 것이다

  "여보,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영정과 이름과 사연들을 공개해야 하는 이유를 뭐라고 말해야 할까?"

새벽 미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미세먼지가 어제보다 더 심해 야외 운동을 나가지 않은 남편이 실내 자전거를 타며 내게 묻는다. 외투를 벗으며 나는 비통함이 다시 올라와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 또한 어둡다.

"우리가 죽은 이를 위해 명복을 빌려면 최소한 기억하는 망자가 누군지는 알아야지.... 왜?"


 남편은 어제 하루 휴가를 내고 평소 좋아하는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다녀왔었다. 너무 늦은 시간에 돌아와 우리는 딱히 앉아서 대화할 시간은 없었다. 남편은 패러글라이딩을 마치고 일행들과 닭갈비집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고 했다. 그런데 뒷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던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청소년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그들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영정과 이름을 공개해야 한다는 야당 지도자의 말을 비판하며 개인정보와 개인 신상을 공개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그러면 그들의 사적 부분은 모두 공개되고 그들 앞으로 악플이 달릴 것이다, 개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라는 것이 그 청소년들의 거친 말들이었다고 했다. 그들은 그런 의견을 낼 수 있다. 그러나 어린 그들은 모른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 자신이 왜 죽는지도 모른 채 죽어간 이들의 마음을.


 "우리가 죽은 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죽은 이의 영혼이 안식을 얻도록 살아 있는 이들이 죽은 이를 기억해 주는 것, 막연한 행인 A, B, C가 아닌 김 아무개, 이 아무개를 기억하며 기도해 주는 일 그리고 졸지에 가족을, 귀하디 귀한 자식, 다정했던 친구, 든든한 동료를 잃은 이들에게 위로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지. 우리가 조상의 제사를 지내는 것도 발복 기원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의 안식을 위해 기도하고 살아남은 이들의 친교를 도모함이잖아. 이번처럼 저렇게 막연하게 누군지도 모른 채 묻힌다면 죽은 영혼의 슬픔과 유가족의 고통 그리고 더 나아가서 남은 모든 이들이 서로를 믿고 의지하고 화합하는 공동체의 친교가 무너질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거지. 이런 종류의 대규모 참사는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공동체의 트라우마로 남게 될 수도 있으니까 우리는 그들 모두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고 충분히 안식을 빌어 주고 그 가족들을 위로해 주어야 해. 남의 말은 3일이라잖아. 개인 정보며 신상이 털리는 것이 무서워서 순리를 거스르면 안 된다고 생각해. 비록 지금은 참담한 현실에 고통스러워 원망도 하고 있겠지만 남은 이들 모두 우리의 충분한 위로에 감사하고 다시 공동체의 일원으로 건강하게 살아가게 되기를 위해서 마음을 모으는 거지."


 그 젊은, 아니 어린 친구들은 생각이 짧고 경험이 부족하여 길고 넓게 사고하는 힘을 아직 갖추지 못했으리라. 그러니 자신들의 집에서 지내는 제사도 의미를 정확히 모르고 그저 행사 하나 지나간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 우리 같은 어른들이 알려 주고 가르쳐야 한다. 건강한 공동체로 나아가는데 그들이 앞으로 맡아하게 될 역할을 생각한다면 어른들이 그저 손 놓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면 안 될 일이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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