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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Apr 07. 2023

인지장애는 호환 마마 같은 재앙일까?

시골 보건진료소에 주로 놓고 가시는 물건 1위

  진료기록지를 작성하느라 낮에 오신 L어르신이 진료를 받고 가시는 길을 미처 배웅 못한 탓이다. 퇴근하려고 보안시스템을 작동시키려는데 그제야 지팡이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창문 너머로 L어르신이 짚고 오시는 걸 보았는데 얌전하게 기대어 있는 지팡이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L어르신은 이 마을 가장 고령자이다. 우리 나이로 93세. 어르신은 그 어느 초겨울 이후로 하루가 다르게 퇴행되는 중이다. 그 해 초겨울 진료를 받으러 오셨다가 내게 물으셨다.

"소장님, 뭐 드려볼 것이 없고 늘 신세 지고 고마운데.. 밭에 속이 안 차서 그냥 둔 배추가 있는데, 얼었다 녹았다 해도 뽑아서 우거지 지져 먹으면 좋긴 해.... 소장님 그런 거 좋아하면 내가 좀 줄까?"

"어머, 저 그런 거 좋아합니다. 퇴근길에 댁에 들르겠습니다."

김장을 뽑고 나서 속이 차지 않은 배추를 눈이 올 때까지 두었다가 뽑아 녹여서 된장 넣고 국을 끓이면 얼마나 달고 맛있는지는 아는 사람은 다 안다. L어르신이 약을 받아 가지고 서둘러 가시더니 두어 시간 지나 외발 수레를 몰고 나타나셨다. 창문으로 내다보던 나는 놀라서 달려 나갔다. 돌잡이 아기 걷듯 불안정한 걸음으로 외발수레를 몰고 오는 어르신은 어딘지 위태로워 보였다.

"이게 생긴 건 좀 별나도 잘 다듬어서 지져서 드셔"

진료소 현관 앞에 외발수레에 싣고 온 배추를 쏟아놓고 뒤돌아 가시는 어르신만큼이나 낙엽이 된 배추를 보며 형언하기 어려운 마음을 가까스로 추스르며 푸석거리는 누런 배추를 조심조심 들어서 울타리 너머로 버렸다. 쳐다만 보아도 부스러질 것 같은 반투명해진 배춧잎처럼 어르신의 뇌도 그리 되어 가고 있는 걸까. 그 길로 바로 인지선별검사지를 들고 집으로 찾아가 검사를 했다. 기준점수보다 현저하게 낮은 평가 점수는 그렇다 치고, 그 어느 항목도 대답을 하지 못하는 자신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어르신은, 그날 이후로 엄동설한에도 외투 없이 마을을 배회하거나 읍내에 갔다가 집을 찾아 돌아오지 못하는 횟수가 늘고 뭐든 옳게 판단도 되질 않는다. 짚고 온 지팡이를 두고 가시는 것이 오늘까지 네 번째다.


 J어르신은 90세의 독거노인으로 거동이 불편하고 고혈압을 앓고 계셔서 방문 대상자다. 부임 첫 달에 전임자로부터 인수인계를 받아 방문을 했을 때 인자하고 따뜻하고 친절하신, 잘 늙으신 어르신을 방문하는 것이 늘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두어 번 방문 내내 마치 대본을 읽듯 똑같은 패턴의 말과 행동에서 이상을 느껴 인지선별 검사를 했다. 평가 점수가 기준 점수보다 현저히 낮아 외지에 사는 아들에게 연락을 했다. 아들은 어머니 집 거실에 CCTV를 설치하여 어머니를 지켜보며 자주 어머니를 찾기 시작했다. 요양보호사를 요청하여 어머니를 돌보게 하고 지난겨울엔 아예 어머니가 사는 집으로 옮겨 왔다. 아내와는 별거 아닌 별거를 시작했고 어머니의 밭 한편에 컨테이너 사무실을 차려 주택 설비와 시공업을 하며 어머니를 돌보아 오고 있다. 지난겨울 J어르신을 방문했을 때 집엔 아무도 없었고 어르신은 침대에 기저귀를 차고 누워 있었는데 늘 하던 대로 욕창이 생기진 않았는지 살폈다. 엉덩이 부위가 벗겨져 상처가 나고 D밴드를 붙여 놓은 걸 발견했다. 놀라고 화가 났다. 다시 진료소로 돌아와 욕창 간호 용품을 챙겨 다시 J어르신 집을 방문하니 아들이 와 있었다.

"욕창이 아니고 넘어져서 까진 거예요. 혼자 정신없이 벌떡 일어나서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모서리에 부딪치고 까지고 그래요....."

아들의 말에 화가 났던 나 자신이 민망했다.

"죄송해요. 그런 줄도 모르고 집에 아드님도 계시고 요양보호사도 계신데 갑자기 욕창이 왜 생겼는지 조금 의아했어요...."

"저도 늘 붙어있진 못해요. 먹고는 살아야죠...."

어르신의 아들은 내게 차를 한 잔 내주었다.

"저희 어머니는 아주 젊을 때 혼자가 되어 아드님 하나를 바라보며 평생 말 못 할 온갖 고생을 다 하셨어요. 그런데 소장님 전화받고 황당하더라고요. 한 달에 두어 번 나올 때마다 별다른 것도 몰랐고 그저 말이 없는 양반이니 맨날 똑같은 말만 하신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가 치매가 온 것도, 이 정도로 심한 것도 알아채지 못한 제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럽더라고요. 내 딴에는 자주 들여다 보고 잘 돌본다고 마음먹었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동네를 살살 돌아다니면서 쓰레기를 주워 모으기 시작했어요. 뭐 워낙 없이 살아서 옛날부터 그런 건 있었는데 어느 날은 음식 쓰레기를 주워 오기 시작했어요. 그냥 무심코 개를 주려고 그러나 보다 했는데...... 어느 날 보니.... 그걸.... 개를 주는 게 아니고 어머니가 드셨더라고요......."

어르신의 아들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여전히 내가 방문을 하면 앵무새처럼 '소장님 왔어, 고마워서... 밥 차려줄게 밥 먹고 가.... 음료수라도 줄까? 미안해서 어떡해....'하시는 말을 되풀이하는 어르신의 시간은 뒤로 뒤로  돌아가다가 아주 몹시 가난했던 그 옛날에 다다르신 듯하다.


 집에 계시는 인지 장애 어르신들의 대부분의 문제는 기억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일상의 반복되는 소소한 생활들은 거의 큰 문제없이 하시는데 방금 듣고 본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한 달에 한 번 혈압약을 타러 오시는 어르신 중 한 분은, '대파 같은 거 다 사서 드시지?' '네 그럼요' '내가 다음에 올 때 대파 한 포대 가져올게. 좋아할지 어떨지 몰라서 오늘은 밭에 나갔다가도 그냥 왔지'라는 대화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열 번 넘게 반복하고는 결국 요양원으로 가셨다. 나야 언제나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응대를 해드리지만 함께 생활하는 가족에겐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겠다. 실질적으로 엉뚱한 말과 행동을 하고 어린아이들처럼 일을 저지르고 용변 실수를 해도 본인은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한다. 거동을 하는 한 요양 등급을 받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집에서 감당하기에 어려울 정도로 퇴행이 심해도 요양원 비용에 대한 부담 때문에 어떻게든 집에서 모시려는 가정의 자녀나 돌보는 당사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을 호소한다.   


 인지 장애는 예방이 최선이다. 아직은 최대한 증상을 늦추는 외의 방법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반복되는 단순한 일상의 수행은 그럭저럭 가능하니 가족들이 단박에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이 문제이다. 술을 즐기는 사람들에겐 60대 초반에도 알콜성 치매가 올 수 있다는 사실도 아는 사람은 모두 알지만 갑자기 '블랙아웃'이 되어 몇 초간이지만 운전하던 중 '여기가 어딘지'  순간적으로 모르게 되는 상황을 겪는다면 그 자체로 두려움이리라. 더 이상의 호환과 마마는 겪지 않게 된 세상을 사는 우리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고 멸종한 질병보다 더 두렵고 무섭지 않겠는가. 인지 장애는 뇌 기능의 퇴행이고 진료소에 들어오시는 고령의 어르신을 자세히 보면 분명 영혼은 다른 곳을 헤매는 것처럼 보인다. 공중을 걷는 사람 같은 인지 장애 어르신을 보고 있자면 좀비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든다. '오늘은 나, 내일은 너'라는 구절을 굳이 갖다 붙이지 않아도 너무나 오래 살고 최대한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우리들에게 겪어보지도 않은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운 것은 분명 있다.


 술 끊고, 땀나게 운동하고, 혈관 관리 하고, 대인관계 원만하게 유지하고, 허락하는 한 대뇌를 사용하는 공부와 활동을 하는 것. 이 모토는 시니어들에게는 이미 늦었다. 그저 참고 사항이다. 2030 세대에게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생활 루틴이다. 인지장애는 젊은 시절부터 몸에 밴 습관으로부터 싹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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