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단 하나뿐인 수제 명품 컬렉션

그들에게 나는 무엇이었을까.

by 베로니카의 참견

나의 전전 근무지에서는 거의 십 년을 넘게 근무했다. 통상 한 근무지에 4~5년을 근무하고 이동을 하는데 어찌해서 인지 그곳에서는 그렇게 오래 근무를 하였으니, 그 동네 누구네 숟가락이 몇 갠 지를 모를 수 없었다. 당연히 인근 주민들과는 가족처럼 지낼 정도가 되었고, 채소며 곡식은 사 먹는 것인 줄 모르고 살았었다. 그 해 감자가 잘 되면 감자가 잔뜩 들어오고, 마늘이 잘 되면 마늘이 몇 접씩 들어왔고 친정집 김장배추며 무를 실어 나르는 일도 가을 연례행사였다. 소장님네 주려고 조금 더 심었다는 정도로 참 사랑 많이 받았다.


그곳에서 근무하던 어느 해인가 여름에 아내를 여읜 아버님이 가을 감기에 걸려 오셨다. 손엔 검정 봉지가 들려 있었는데, 늘 그렇듯 무심하게 내 의자 옆에 툭 던지셨다.

"이게 뭡니까?"

"올해 수수가 무척 잘됐어. 먹기 좋게 아주 깎아서 가져왔으니까 밥에 둬서 먹어"

"애써 농사지으신 걸 하나라도 팔지 왜 저를 주세요?"

"그깟 거 한 되 더 팔아서 부자 되더냐?"

"염치없지만 맛있게 받아먹겠습니다."

"있어서 주는 거야. 없으면 못 줘"

"감사합니다."

"근데 내가 요즘 통 잠이 안 와서 미치겠어. 어떻게 해야 해? 수면제를 타다 먹어도 그때뿐이고. 어젯밤에는 초저녁에 한 숨 자고 밤 새 하도 잠이 안 와서 수숫대로 빗자루를 다 엮어 봤어"

"아버님, 잠이 너무 안 오면 자려고 애쓰시지 말고 수수비 하나씩 엮으면서 시간 보내시다가 잠이 오면 그때 주무세요. 빗자루 만들어서 이웃에 하나씩 주면 좋아들 하실 걸요?"

"그럼 그래 볼까?"

그리고 며칠 후 수수빗자루 하나를 진료소 현관에 툭 던지고 들어오신다.

"수숫대가 잔뜩 쌓였거든. 겨우내 불이나 때려고 쌓아 놓았는데 소장 말대로 그걸로 밤에 잠 안 올 때 빗자루를 저렇게 엮어서 하나씩 돌렸더니 다들 좋아해"

그리 말하는 아버님의 얼굴이 전에 없이 화색이 돈다. 아내를 잃고 처음으로 사는 재미가 있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보람이 가득 든 사람의 얼굴이다.


손뜨개 양말. 좌우 크기가 다르다.

B님은 체격이 자그맣고 호남 사투리를 쓰시는 도시 이주민이셨다. 군속으로 정년 퇴임을 하신 영감님과 전원생활을 하겠다고 시골로 내려오셨는데, 남편의 농사짓는 실력은 해를 거듭하지만 당최 늘지 않으신다고 투정하곤 하셨다. 나이가 팔십이 넘은 할아버지인 남편에게 여전히 '울 애기 아빠'라고 하시는 B님은 평생 전업주부요 천생 여자다. 시골의 겨울은 길기도 하고 지루하여 심심풀이 삼아 뜨개질로 양말을 뜨셔서 자녀들에게 주곤 하시는데, 최근 부쩍 인지가 떨어지는 할아버지에게도 뜨개질을 시키신단다.


그런 B님이 내게도 양말을 한 켤레 떠서 가지고 오셨다. 그런데 양말이 딱 봐도 좌우 크기가 다르다. 한 짝은 느리게 떴고 한 짝은 쫀쫀하게 뜬 것이다.

"한 짝은 나가 떠서 쫀쫀허니 잘 떠졌는디 한 짝은 울 애기 아빠한테 뜨라겠더니 이렇게 느리느리 떠가지고 축 늘어진당께. 그랴도 아무케 여서 실내화 삼아 막 신어"

하시는 B님 얼굴에 근심을 잊고 싶은 웃음이 걸려 있다. 그 겨울의 다음 여름 내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를 치른 후 출근하던 날 이른 아침, 큰길에 나와 서있던 B님의 남편 D 씨가 급히 차를 세웠다.

"소장님, 내가 항상 소장님 덕분에 요래 건강한데 은혜도 못 갚아 불고.... 엊그제 약 지로 갔더니 그 옆에 사는 엄마가 소장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하는디 참말로 조문도 못 가고 이리 사람 구실도 못하요..."

그렇게 말하는 아버님이 내게 돌돌 말린 천 원짜리 지폐를 내민다. 극구 사양했지만 차에 매달려 안 떨어지시니, 하는 수 없이 받아가지고 진료소에 출근해 펼쳐보니 삼천 원이다. 얼마나 쥐고 있었던지 닳고 단 그 삼천 원을 보며 왜 눈물이 그리도 났을까. 아버지 생각이 나서였는지, 뭔지 알 수 없었다. 그 해가 가기 전에 B님의 남편 D 씨는 결국 치매진단을 받았고 아내도 못 알아보고 밤낮이 바뀌어 한밤 중에 밖으로 나가려고 하고 문을 잠가놓으면 문을 부수며 난동을 부려 도저히 감당이 안된다고 매일 와서 울던 B님 때문에 결국 D 씨는 자녀들이 가까운 도시의 요양원에 입소하셨다. 뜨게로 뜬 그 양말은 B님의 착한 남편을 기억하게 하는 소중한 물건이 되었다.

오래 써서 짧아진 갈대 빗자루는 볼 때마다 그 꼼꼼하던 L 씨 할아버지를 생각나게 한다.

또 하나 소장품 중 갈대 빗자루가 있다. 그 날 아침 남편과 나는 출근 직전 내기를 했다. '아아~억새 슬피 우~니~'에 나오는 으악새가 억새를 얘기한다고 했다. 그러다가 우리는 갈대와 억새를 두고 설전이 붙었고, 일단 출근했다가 퇴근해서 확인하기로 했다. 그날 L 씨 할아버지가 자전거 뒤에 '예쁜 할머니'를 태우고 오셨다. 퇴행성 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한 꼬부랑 할머니를 그토록 보물 다루듯 하시는 할아버지에게 '할머니가 그렇게도 예쁘세요?' 했더니, '밥 얻어먹으려면 별 수 있나?' 하셨다. 할머니 진료를 마치고 약을 드리면서 마침 생각이 나 물었다.

"할아버지, 아아~으악새 슬피 우~니~하는 노래에 나오는 억새가 어떻게 생겼어요? 빗자루 만드는 그거 맞죠?"

"에이~그건 수로 같은데 나는 갈대고, 억새는 들판에 나는 그 은색 꽃 피는 그거지"

"네?? 아니, 왜요~~~~? 그게 억새면 안되는데~"

내 반응에 할아버지는 '으잉?'하시고 크게 웃으셨다. 나는 남편과의 내기에서 졌다. 그 일주일 지났을까, L 씨 할아버지가 갈대비를 근사하게 만들어서 가지고 오셨다. 깔끔하고 손재주 좋으신 할아버지 닮은 야무진 빗자루였다.

"이게 활짝 피면 빗자루를 못 만들거든. 피기 전에 얼른 따서 엮어야 해. 핀 걸로 엮으면 죄다 부스러져서 못써. 이거 소장님 하나 만들어 주려고 농수로를 긍맸시다. 아무케 청소기 있으니 뭐 쓰겠나 하면서 갈대가 이렇게 생겼으니 한 번 보라고 만들어 왔지."

그렇게 주신 빗자루는 우리 집 베란다에 걸어두고 가끔 쓰는 중요한 아이템이다. 무선 청소기로 바꾼 후로는 손이 자주 가진 않지만 볼 때마다 L 씨 할아버지 부부를 기억하게 한다. 결국 골암에 걸려 그나마 아예 다리를 못쓰게 된 할머니를 잃고는 하루아침에 치매가 와 자녀들이 서울로 모시고 간 이후로 소식을 모르는 분. 지금은 더러 이 세상엔 계시지 않는 분들이지만 그분들은 왜 그리도 내게 잘하셨을까. 나는 아직도 그분들이 어제 만난 듯 기억이 나고 또 생각나면 그분들의 영혼의 안식을 기도하지만, 그분들이 내게 그리 잘했던 이유는 결코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그분들이 마음 넉넉하고 따스한 분들이신 탓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은가요?

자비를 베푸세요.

자신이 행복해지고 싶은가요?

자비를 베푸세요.

-달라이 라마-

굳이 달라이 라마의 저 말을 모르더라도 어르신들은 이미 행복해지는 법을 아는 분들이다. 진료소장에게 신세를 지는 것을 갚고 싶다고 말은 하지만 내가 하는 당연한 업무활동에 대해 대가를 받을 이유는 없다. 더러는 '국민의 혈세'로 월급을 받는 너에게 있어서 나는 '클라이언트'라고 큰소리치시는 도시 이주민도 있으니 그들과 대별되는 시골 어르신들의 후하고 넉넉한 마음이 내겐 큰 응원이고 용기가 된다. 굳이 큰돈을 들여 장만하는 명품들에는 물론 치른 값어치를 하기야 하겠지만 그 가치라는 것은 한정적이다. 돈으로 산 명품이 주는 쾌락은 불과 한두 달이다. 그러나 돈을 주고 사람의 진심을 살 수 있을까. 일명 명품이라는 물건들은 남이 알아보고 감탄할 때 그저 한두 달 으스대는 용도일 뿐이다. 그러나 내가 소장하고 있는 명품들은 오직 나 한 사람을 생각하며 손수 정성껏 만든 것들이요,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들여다보며 기쁨에 잠기는 진정한 명품이다. 덕분에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내 엄마 아버지 같은 촌로들의 안색을 살피고 근황을 묻는다. 심지어 결혼할 때 선물로 받은 교동 특산 왕골 바구니는 27년이 흐른 지금도 동전이나 묵주를 담아 놓는 귀한 용도로 여전히 내 손을 떠나지 않고 사용되며 여전히 이 선물을 한 분의 눈빛과 손길을 어제처럼 기억하고 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세상 단 하나뿐인 이 명품들을 내가 입은 자비를 기억하게 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자비를 베풀어 그분들의 마음을 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내게 말한다. 지금 당장 그 불평들을 멈추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자비를 베푸시오.

왕골로 짠 바구니. 최대한 가늘고 곱게 일률적으로 짜는 것이 기술인데 누가 봐도 명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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