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님요, 전립선 약 여서 좀 타 먹어도 되니껴?
오늘은 너, 내일은 나
87세시다. 항상 낡은 소나타를 직접 운전해서 찾아오신다. 거의 한 달에 한 번 꼴로 내외가 나란히 오신다. 경상도 사투리를 굳이 고치려고 하지 않으시는 노부부다. 할머니는 차에 그냥 앉아 계시고 할아버지만 들어오셔서는 환자용 의자에 앉아 벽에 걸어 놓은 십자고상을 바라보며 해맑게 웃으며 물으신다.
"천주교회 나가시는가 봅니다. 나도 천주교인입니다."
"아, 네. 그렇습니다."
"어느 본당 나가십니꺼? 내는 ㅇㅇ본당 나갑니더. 세례명이 어떻게 되십니꺼?"
"네, 저는 베로니카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반갑습니다. 나는 ㅇㅇㅇ입니다."
이런 물음이, 매 달 오실 때마다 마치 처음 오신 분처럼 똑같이 반복된다. 그런 다음 드시는 약을 보여주신다. 전립선 비대증에 드시는 약이란다. 보건지소에서 처방을 받아 드시는 약인데 매 달 약을 탈 날이면 내가 근무하는 보건진료소에 먼저 오셔서 약을 달라고 하신다. 그러면 '여기서는 취급하지 않는 약이라 못 드리니 보건지소로 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면 '아, 그러냐'면서 돌아 서서 나가신다. 그리고 보건지소에 가서는 '우리 동네 진료소에서 약을 탈 수 있게는 안되느냐'라고 물으신단다. 매 달 똑같은 상황이 데자뷔처럼 반복된다. 두어 번의 전립선 약 해프닝이 있고 나서 혹시나 하여 치매인지검사를 실시했는데 매우 낮은 점수가 나왔다. 이후 지역 치매센터에 의뢰하여 치매 약을 복용 중이시다. 그런데 운전을 하고 차를 몰고 다니신다. 생각하면 너무나도 아찔하고 두려운 일이다.....
며칠 전엔 할머니가 감기에 걸리셨다고 오셨다. 해맑게 웃으시며 '십자고상을 보니 천주교인인가 보다'라고 하시는 할아버지를 앉혀 놓고 차에 앉아 계시는 할머니에게 나갔다.
"괜찮으시면 안으로 들어오실까요? 오신 김에 혈압도 좀 재고 혈당과 콜레스테롤 검사도 하고 가시지요?"
하고 안으로 들어오시기를 청했다.
"그냥 감기약만 좀 타면 안되겠스예?"
"본인 이외엔 대리처방이 금지라서요~"
"아, 그렇습니까?"
마치 듣던 중 처음 듣는 소리란 표정이다. 매 번 할아버지께 드렸던 말씀이다. '알겠습니다. 몰라 그랬습니다. 다음번엔 꼭 같이 오지요.' 매번 하시는 대답이었다. 차 조수석 문을 벌컥 여시는 할머니는 화가 난 듯 보였다. 순간 긴장하여 선 내 눈에 두 다리가 먼저 차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는 지팡이가 한 개씩 연달아 차 밖으로 나오고 양 손에 지팡이를 짚은 채 아주 힘겹게 두 다리를 딛고 나무늘보처럼 천천히 일어난 할머니가 힘겹게 다리를 절며 들어오신다. 얼굴도 살짝 일그러져 있다. 긴 겨울 내내 뵙지 못한 탓에 그간의 근황을 알지 못한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안으로 들어와 힘겹게 자리에 앉으신 할머니가 마스크 너머로 숨을 헐떡 거리신다.
"내가 지난겨울에 뇌경색이 왔어예. 살짝 몸 절반이 마비가 와가 걷는 기 이래 노이께 고마 그실에서 넘어졌뿌가 이 다리가 부러짓스요. 6개월을 꼼짝도 몬하고 누워 있다 보이께 더 걷질 몬하고 이래 힘들어 죽겠스요."
"아이고..........."
할 말이 없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엔 진땀이 나고 불편한 쪽 다리는 여전히 부어 있었다.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선 내게 할머니가 그래도 너그럽게 웃으신다.
"십몇 년 전에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이곳으로 내려왔을 때는 그케나 좋았는데, 은퇴를 하시고 답답하게 아파트에서만 지내시던 할아버지도 시골에 내려와 텃밭도 가꾸고 주말에 애들이 오마 불 피워가 고기 꿉고, 재밌는 시간을 보냈었는데, 하이고 마, 저절로 입에서 힘이 들다 소리가 나오디만, 그기 나이 먹는기라...."
그렇게 병고에 시달리기 시작하더니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당뇨의 합병증, 치매..... 나이가 구십을 바라보는 때에 이르러서는 아예 은퇴 자금이 병원비로 들어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결국은 코로나로 외출을 안 하면서 다리에 더 힘이 빠지고 그렇게 질병은 두 노부부를 집어삼키는 모양이었다. 할머니는 앉아서 할아버지 걱정을 하고, 할아버지는 그저 해맑게 벽에 걸린 십자고상을 가리키며 같은 천주 교인이라고 기뻐하신다. 고통스러운 할머니의 표정과 아무런 근심 없이 밝은 할아버지의 표정이 마치 '둘 중 하나 고르시오' 하는 문제를 앞에 둔 것 같이 착잡하다.
"혹시 아시는지 모르지만 아버님이 치매가 시작되신 것 같습니다. 운전하시는 것이 많이 위태로워 보이는데 어쩌지요?"
어렵게 꺼낸 나의 말에 할머니는 근심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신다.
"알고 있습니더. 근데 지금 치매 약 잡숫고 있고, 뭐 그래도 아직은 운전은 잘하는데 앞으로 더 심해지마 고마 운전은 못하지예...."
"자녀분들은 알고 계신가요?"
"애들 알마 어쩌지도 몬하고 걱정만 끼치니 아주 심해지마 그때 얘기할라꼬예"
언젠가 만난 우리 면의 부면장님이 내게 전해 준 말이다. 어떤 도시 이주민께서 면사무소에 민원을 넣으시길, '왜 버스가 자주 운행하지 않으며 왜 버스가 자기 집 앞에서 서지 않는가'라고 하셨단다. 우리끼리 그냥 웃었지만 마음 한편은 답답했다. 대부분의 도시인들은 번잡하고 바쁜 도시 생활에 지쳐 '슬로 라이프'를 마음에 품고 시골로 이주한다. 작지만 쓸모 있게 지은 예쁜 집, 꽃과 나무가 가득한 마당, 인심 좋은 이웃, 내손으로 가꾼 건강한 먹거리 들을 꿈 꾸며. 그러나 현실에서 만나는 시골 생활, 전원생활이란 대부분의 일상이 몹시 불편하고 답답할 정도로 느리고 모든 것을 내 손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모기에게 물리는 것은 일상이고 살인 진드기,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온갖 벌레들과 독초들, 농기계 사고, 초기 비용의 상승으로 농사짓기가 두려운 곳이다. 이웃을 잘못 만나면 길을 막아 차를 마을 입구에 세워 두고 걸어 다녀야 하거나 온갖 어처구니없는 가짜 뉴스에 의한 스캔들에 시달릴 수도 있다. 어쩌다가 도시의 지인들이 놀러 와 밤늦게까지 불을 훤히 켜고 흥겨운 시간을 보낼 때 경찰이 찾아와 소음 때문에 신고가 들어왔으니 조용히 하셔라, 고 할 수 있다. 내가 우리 마당에 심은 호박 넝쿨이 담을 타고 넘어가 이웃집에 맺히면 그건 그 집 소유이거나 '우리 집 담 안으로 나뭇잎 하나라도 떨어지면 그 나무 베어 버릴 거요.'라는 말에 질려 도로 서울로 이사 가시는 분도 있고 병원이 멀어 119를 불렀지만 골든타임을 놓치고 결국 심장을 구하지 못해 죽을 수도 있다. 시골에서 유유자적 느리게 사는 꿈은 은퇴 후에 꾸기 실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파킨슨 병으로 손이 떨려 마당에 난 풀을 베려고 낫질을 하다가 팔을 꿰매는 상처를 입는 노인에겐 전원생활이 불가하다. 데크와 벽에 페인트칠도 해야 하고 불이 나지 않도록 수시로 확인하지 않으면 새나 쥐가 둥지를 틀어 전선이 벗겨지기도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 추녀 밑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배구공만 한 말벌집이 매달려 있기도 한다. 눈이 많이 오면 반나절의 절반을 헉헉대며 눈을 치워야 하고 눈을 치우고 나면 또 눈이 올 수 도 있다. 그 모든 것들이 전원주택에 살며 지불해야 할 대가이다.
그 모든 것을 다 문제없이 해내던 할아버지에게 치매가 왔다. 인지저하가 뚜렷하여 운전이 너무 위험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는 버스를 탈 수 없고, 시장이라도 보려 가려면 어찌 되었든 치매가 걸린 영감님이 운전하는 차를 탈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으려면 모든 시설에 접근이 용이한 도시의 아파트로 이사를 가야 하는데 이 집과 땅을 팔아서 이사 갈 수 있는 도시의 아파트는 너무 비싸고 자녀들은 각자의 삶을 이어가기도 바쁘니 늙은 부모를 위해 희생하기를 기대하기도 어렵고 그러기는 더더군다나 내가 싫다.... 안정된 삶을 위해 도시를 버렸지만 시골이 안정된 삶을 보장해주지 않는 노년의 하루하루는 고통스럽다.
'고마 지금 딱 죽으마 을매 좋겠습니까?'
할머니의 말에 할아버지는 그저 할 말을 잃고 눈만 깜박인다. 지금의 내가 가까운 미래의 나를 보고 있는 심정이 들었다. 마음에 무거운 짐을 툭 던져놓고 노부부는 담담하게 인사한 후 돌아갔다. 다른 날과 달리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흰색 차를 살펴 바라보면서 좀처럼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몇 살까지 운전을 할 수 있게 될까?' 그런 막연하고 바보 같은 질문을 하고 서 있는 나. 어떤 노년을 맞게 될까.
"누가 그래요?"
"YOUTU**에서 봤어."
"그걸 믿으세요?"
"텔레비전에 나오던걸?"
"검증되지 않은 말에 휩쓸리시면 안 돼요."
"검증된 거야. 유명 대학 교수가 이론으로 딱딱 설명해 주는데?"
진료소에서 자주 주고받는 대화 중 하나다. 내 아버지도 살아 생 전 이상구 박사의 열성 팬이셨다. 내 엄마는 허 정 박사님을 좋아했다. 두 분의 공통점은, '그들이 내가 원하는 말을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엔도르핀이 나와야 한다면서 내가 하고 싶은 행동, 하고 싶은 말을 함부로 마구 해댔다. 엄마는 몸에 좋은 음식보다는 내 입에 좋은 음식을 드셨다. 과연 그분들이 그렇게 말씀하셨겠는가. 그분들의 훌륭한 이론을 내 것으로 만들어 내 말과 행동에 대한 합리화의 수단으로 사용하시는 것에 우리 5남매는 얼마나 질렸던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스스로 만족한 삶을 추구하는 전원생활의 조용하고 스트레스 적은 삶을 나도 강렬하게 원한다. 그러나 더 이상 내가 나를 돌보기 어려워질 경우를 염두에 두고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시골 생활]이 [서글(픈) 생활]이 되기 십상이다. 고독사 할 뻔한 노인들을 구하는 것은 평소 가족처럼 교류하며 지내는 내 이웃이다. 최근에도 아침에 문을 열지 않기에 담을 타고 넘어가 쓰러진 노인을 구한 건 이웃의 노인이었던 실화가 있다. 3개월 에 한 번 대학병원이나 도시의 병원으로 진료를 받으러 다니니 시골 쪼그만 보건진료소에 진료받으러 올 일이 거의 없던 도시 이주민 노 부부가 우연히 이웃의 조언에 따라 '임시방편'으로 진료소에 찾아왔다가 위중한 병을 발견하게 된 것이 내 자랑은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원생활의 꿈을 버릴 수없다면 더 늦기 전에 마당이 있는 시골집으로 내려가 충분히 전원생활을 누리고 8,90대엔 병원과 편의시설이 가까운 공동 주택을 선택하는 것도 지혜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막연하게 '말년엔 시골에서 조용히 살아야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하지 말지어다. 어느 묘지 입구에 있는 글귀, 죽은 자가 살아있는 내게 이르는 말, '오늘은 나, 내일은 너'. 하지만 살아 있는 내가, 살아 있는 늙은 자에게 겸손하게 고백하는 말, '오늘은 너, 내일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