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님, 점심 먹으러 갑시다.

짜장면 먹고 나오면서 속으로 울고 또 울었다.

by 베로니카의 참견

코로나접종센터 근무 다음 날 아침 일찍 S 어르신께서 불쑥 진료소에 들어오셨을 때, 난 잠시 멍하게 어르신을 바라보았다. 순간적으로 그분을 몰라 봤기 때문이다. 혼자 여기까지 올 수 있는 정도는 아닌 분이 갑자기 들어서니 잠시 '이분이 누구시더라....' 했다. 거의 두어 달 넘게 집에 계시지 않아 못 뵈었던 S어르신은 그 부락의 최고령자신데, 허리가 잔뜩 굽은 할머니와 단둘이 사신다. 항상 싱글 침대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는 방에 누워 TV를 보다가 나의 방문을 반갑게 맞으시곤 하셨다. 어르신은 그때마다 할머니에게 어떤 때는 커피를 타내오라고 하거나 명절 직후엔 식혜를 내오라고 시키셨는데, 허리가 잔뜩 굽은 할머니에게 얻어 마시는 커피며 꽁꽁 얼어 얼음을 깨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는 식혜는 나를 쩔쩔매게 했다. 방문해야 할 집이 몇 집 더 남은 나는 거동이 어려우신 굼뜬 할머니의 대접이 아주 많이 불편하고 마땅찮았다. 그리고 매번 어르신께서 '점심 같이 먹으러 가자'라고 청하실 때마다 '좋죠!'라고 했지만 실은 마음에 없는 대답이었다. 달팽이처럼 아주 느리게 커피를 타내 오거나 심지어 사발면 하나 잡숫고 가라고 포트에 물을 끓이는 그 긴 시간 동안 어르신은 내게 병으로 먼저 떠난 딸 이야기며 도시에서 사는 자녀들이 효도를 한다는 이야기를 꺼내 놓으며 함께 눈물짓곤 했다. 몸이 편찮다는 소식과 함께 서너 번을 방문하도록 대문이 굳게 잠겨있어 뵙지 못했던 어르신이 직접 진료소를 찾아오셨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병이 깊으신 모양이라고 생각하던 어르신께서 전동휠체어를 타고 진료소까지 직접 오셨으니 얼마나 놀랄 일인가!

"아버님!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집엔 언제 오셨어요?"

놀란 나는 얼른 달려가 어르신을 맞이해 의자에 앉혔다.

"나, 저 전동 휠체어 타고 가까스로 왔어요. 아들 집에 가 있다가 엊그제 집에 일요일에 왔어요."

"저보고 오라고 전화를 하시지 어째 이렇게 오셨어요? 전화를 하시면 제가 갈 텐데."

"소장님도 좀 만나 보고 싶고 혈압도 좀 재고하려고 왔지"

"십 분만 앉아 계시다가 혈압 먼저 재 드릴게요. 다음엔 절대로 이렇게 혼자 오지 마시고 필요하면 저한테 전화를 하세요."

"그래요"

거친 숨을 돌리시는 어르신의 이마에 땀이 맺혀 있다.

"병원에서는 혈압약을 먹지 말라고 하는데 안 먹어도 돼요?"

그렇게 물으시는 어르신은 본인만 모르는 전립선 암을 진단받은 상태이다. 5월 모내기철 뜻밖에 대문이 열려 있고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먼발치에서 보여 서둘러 방문을 했다가 휴가를 내고 모내기를 하러 와 있던 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미 많이 퍼져서 손 쓸 방법이 없다고 퇴원하라는 말을 듣고 자녀들은 모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고 어르신과 할머니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고 했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할머니가 마당에 계셨다.

"소장님 오셨어? 아이고.... 우리 할아버지 혈압약 가지고 오셨어? 아들 집에 갈 때 혈압약을 안 가지고 가서 못 먹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정작 할머니는 무엇을 걱정해야 할지 모르고 계신 것이 딱했다.

"세상에, 두 달 전에 할아버지가 밥은 못 먹겠고 그 쌀국수 사발면에 물을 부어달라고 하드라고.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서 이렇게 돌아서는데 글쎄 할아버지가 눈을 허옇게 뜨면서 아무 말도 없이 옆으로 넘어가지 뭐야.... 아이고 '왜 이래요, 왜 이래요', 하면서 '난 어떻게 하라고 이래요....' 하는데 대답이 없지 뭐야..."

놀라서 정신이 없다가 119 생각도 못하고 근처에 사는 어르신의 동생에게 전화를 하셨다고 했다. 혼자 그 상황을 당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절망하고 두려웠을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 역시 두려웠다.....

"다음에 올 때는 할아버지 혈압약 꼭 가지고 와요."

혼자 남게 되는 두려움으로 눈물 지으시면서도 혈압이 높아져서 뇌출혈이 오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시는 할머니와 헤어져 오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소장님, 우리 언제 한 번 같이 나가서 점심 먹읍시다. 내가 너무 고마워서 대접 한 번 하고 싶어서 그래"

혈압을 재기 위해 10분 간만 앉아계시라는 동안 어르신이 매 번 내가 방문을 갈 때마다 하셨던 말씀을 또 하신다. 매 번 말씀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사양을 했었다. 민원인에게 식사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 공직자의 의무에 위반되기도 하거니와 막상 함께 나간다고 해도 거동이 불편하신 두 어르신을 모시고 외식을 하러 갈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힘겹게 전동 휠체어를 타고 오셔서 여전히 또 같은 말을 하신다.

"네, 아버님, 어머님하고 우리 셋이서 같이 나가서 짜장면 먹어요"

그날 나는 선뜻 그러자고 대답했다. 점심 값은 내가 내면 문제없었고 어르신 두 분 모시고 차를 타고 짜장면을 먹으러 가는 일이야 어떻게든 될 터였다.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시는 어르신과 다음 수요일에 같이 점심을 먹기로 약속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분이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분인데, 이렇게 매번 거절만 했다가 막상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면 짜장면 한 그릇 같이 못 먹었던 일이 후회될 것 같았다. 함께 식사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오면 나도 어르신도 마음이 얼마나 뿌듯하겠는가!


그래서 그 주의 어느 날 어르신께 미리 전화를 드리고 점심시간보다 조금 일찍 진료소를 나섰다. 어르신 집 앞에 도착하니 낡았지만 깨끗한 셔츠와 모자를 쓴 어르신과 반짝이가 붙은 꽃무늬 여름 니트를 단정하게 입고 두 어르신이 대문 앞 의자에 일제히 지팡이를 하나씩 붙들고 나란히 앉아 계신다. 소풍을 가는 아침의 어린아이들처럼 선한 눈매에 환한 웃음을 가득 담은 두 어르신을 내 차 뒤에 태웠다.

"소장님, 점심 값은 내가 낼 거니까 소장님이 미리 내지 말아요."

"네, 어르신, 좋아요."

뒷 좌석에 나란히 앉은 구순을 바라보는 어르신들의 얼굴을 룸미러로 바라보며 갑자기 눈시울이 시큰해진다. 나들이를 가는 기쁨이 만면에 가득하지만 몹시 피로해 보이는 얼굴색이 건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옛날에는 저기 저 면사무소에서 집까지 걸어서 볼일 보러 댕겼는데 지금은 전동차를 타고도 가기가 어려워. 어지러워서 전동차도 가까스로 타니 뭐.... 언제 이렇게 세월이 갔나 몰라...."

어르신이 그렇게 중얼거려도 할머니는 대꾸가 없다. 귀가 잔뜩 먹어서 입모양을 보아야 말귀를 알아들으시는 할머니는 앞만 열심히 바라보는 중이셨다.

"저기가 우리 밭이에요..... 크진 않아도 저걸 풀을 매려면 얼마나 힘이 드는지...."

할머니도 중얼거린다. 하지만 할아버지 어르신 역시 대꾸가 없다. 두 분이 모두 귀가 잡수셔서 각자 할 말을 할 뿐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아이들이 오나야 고구마를 캐지 난 아무것도 못해...."

할머니 말에 할아버지가 고개를 휙 돌려 바라보신다.

"어??!!"

할아버지가 고함을 지르듯 되물으신다.

"고구마 말이에요!"

할머니의 얼굴을 마주 보며 할아버지가 다시 대답하신다.

"언태 멀었어! 추석 다가와야 캐지!"

할아버지가 큰소리로 대답하시니 할머니가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두 분이 모두 귀가 잔뜩 잡수셨지만 답답하진 않으신 모양이다. 서로 언어로 소통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눈빛이 있는 것이리라.


두 어르신을 모시고 옆 면 소재지의 중국집으로 갔다. 주차할 곳이 없어서 일단 두 분을 먼저 내려 드리고 바로 옆 농협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식당에 들어가니 다행히 자리를 잡고 나란히 앉아 계신 두 어르신의 눈빛이 밝게 빛난다. 한눈에 보아도 건설 노동자들인 분들도 있고 해병대 군인들도 있고 농부들도 있다. 몇 명의 아는 얼굴도 눈이 마주쳐 인사를 하고 어르신들 앞자리에 앉았다.

"내가 소장님 것도 미리 시켰어요. 짜장으로 세 그릇 시켰는데 괜찮지요? 짜장이 제일이지 뭐"

"네, 어르신 잘하셨어요. 저도 짜장 좋아요."

"밥은 통 못 잡숴도 국수는 그래도 술술 넘어가는지 요즘은 매일 한 끼만 잡숫는데 국수만 달라셔..."

할머니 말씀이 식당의 소음에 묻혀 내 귀에만 들린다. 할아버지 어르신은 물컵에 담긴 물을 들이켜시고 연신 들고나는 사람들을 구경하느라 거의 넋을 잃으신 표정이었다.

"이 집은 장사가 무척 잘 되는 걸.....?"

"맛있게 잘해서 그런가 봐요."

나의 대답에 어르신이 고개를 끄덕이신다.

"밥은 통 넘어가질 않아요. 의사가 밥 잘 먹어야 기운이 나서 얼른 낫는다는데 넘어가질 않으니 뭐.... 그래도 국수는 좀 잘 넘어가서 요새는 하루 그저 한 끼 가까스로 먹지. 이제는 틀렸어....."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는 내게 할아버지 어르신이 주머니에서 한참을 더듬어 만 원짜리 지폐 석 장을 꺼내 내 앞에 놓는다.

"고마워요 소장님. 늙은이랑 같이 식사하는 게 내키지 않았을 텐데.... 이걸로 짜장면 값 내요."

"네, 어르신"

내가 돈을 얼른 챙겨 주머니에 넣자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짓는 어르신의 얼굴에 잠깐 생기가 돈다. 짜장면 세 그릇이 탁자에 놓였다. 나는 얼른 한 그릇을 비벼 할머니 앞에 놓아 드리고 어르신의 그릇에 담긴 짜장면을 비비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어르신이 물끄러미 내 손을 바라보다가 그러신다.

"우리 죽은 아이가 소장님처럼 이렇게 참 잘했어......."

내가 내민 짜장면 그릇을 앞으로 바짝 끌어다가 놓고 젓가락으로 집어 올려 입으로 가져가는 어르신을 보며 나도 내 그릇의 짜장면을 비비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다 비빈 짜장면을 한 입 넣어 먹도록 어르신의 젓가락에 걸린 짜장면은 그릇과 어르신 입 사이를 그저 왕복만 할 뿐이다.

"가위 갖고 올까요?"

내 물음에 어르신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얼른 일어나 가위를 얻어다가 어르신의 짜장을 짧게 끊어드리고 숟가락을 앞에 놓아 드렸다. 하지만 그저 한 숟갈 넣어 우물우물하던 어르신은 결국 수저를 내려놓으신다.

"생각같이 먹히질 않아........"


어르신들을 다시 집으로 모셔다 드리고 식탁 위에 삼만 원을 슬그머니 올려놓고 돌아 서서 나오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서 울면서 사무실로 돌아왔다. 인생에서 가장 현명하고 너그러워지는 시간은 왜 하필 죽음을 앞둔 직전의 시간인 걸까.... 드디어 인격이 완성에 가까운 순간이 왔는데 찬란하게 빛나기는커녕 빛을 잃다 못해 거의 꺼져 가는 인간의 삶이라니. 나 역시 공자께서 말씀하신 지천명의 나이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요, 하루에도 열두 번씩 바뀌는 마음이 깃대에 걸린 깃발처럼 늘 펄럭이는데, 웬만한 것에는 놀랄 일도 없이 대부분의 일들을 겪어 알게 된 완생의 나이에 막 이르렀지만 이내 접어야 하는 이야기 책의 마지막 장 같다. 짜장면은 맛있었고 영감님이 못 드시던 말던 할머니는 한 그릇을 모두 비웠던 것도 내겐 슬픈 코미디 같았다. 진료소 앞마당 잔디밭에 오후의 따가운 햇살이 기울고 비둘기 두 마리가 나란히 앉아 있다. 깃을 고르기도 하고 서로의 몸을 기대고 있는 모습이 아마도 암수 비둘기인 듯도 하다. 마치 오늘 함께 점심을 먹었던 그 어르신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음으로는 서로를 애틋하게 염려하고 딱하게 여기지만 짜장면을 못 먹는 사람 때문에 자신도 짜장면을 못 먹지는 않는다. 비둘기들도 어쩌다 서로의 깃을 한 번은 부리로 다듬어 주기는 하지만 각자 자신의 깃털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다.

'그래..... 어차피 너의 날개로 내가 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각자의 날개로 각자 날아가야 하니까, 결국 각자 스스로 날개를 다듬어야 모두 잘 날 수 있다.......'

내가 카메라를 들이대도 모를 정도로 각자의 깃털에 몰두한 저 비둘기들처럼, 우리의 삶은 함께 기대어 수월하게도 가지만 결국 각자가 가야 하는 길이기도 하다. 나는 오늘도 나를 돌아본다. 나는 90살보다는 조금만 더 일찍 지혜로워지고 싶다. 무엇에도 헛되이 동요함 없고 모든 것에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풍요를 빨리 획득하고 싶다. 죽음의 순간에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만 말이다.

함께 앉아 있으면서도 각자 다른 방향을 보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 비둘기 한 쌍. 가끔 한 번만 서로의 깃을 부리로 골라줄 뿐 각자의 깃털을 고르느라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