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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Nov 25. 2021

므네 므네 트켈 파르신

너의 날수를 헤아리고 네 삶의 무게를 달고 결국 너를 둘로 가를 것이다.

'허리의 뼈마디들이 풀리고 무릎이 서로 부딪쳤다.......'

듣기만 하여도 그 공포가 전해지는 표현이다. 귀신을 본 사람이 겪는 공포가 그러하리라. 바빌론의 왕 벨사차르가 연회를 베풀며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해 온 금은 기물들을 내다가 거기에 술을 받아먹음으로써 하느님을 모독하던 중 갑자기 눈앞의 벽에 손가락이 나타나 글자를 썼다. '므네 므네 트켈 파르신....' 그것을 지켜보던 벨사차르왕은 허리의 뼈마디가 풀리고 무릎이 서로 부딪쳤다고 기술되어 있다. 순간 그를 덮치며 압도했던 두려움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유다의 예언자 다니엘이 려왔다. 그는 갑자기 나타난 손가락이 벽에 쓴 그 글귀를 풀이했다.

'므네, 하느님께서 바빌론의 날수를 헤아리니 그 날수가 다 찼다. 트켈, 하느님께서 왕을 저울에 달았더니 그 무게가 부족했다. 파르신, 하느님께서 이 나라를 둘로 나누실 것이다......' [성경 다니엘 예언서 중에서]


 2021년이 막바지를 향해 속도를 내며 달려가고 있다. 신께서는 나의 날수도 헤아리시고 나를 저울에 달고 계시며 나의 삶을 둘로 나누셨다, 삶과 죽음으로. 생각하면 허리의 뼈마디가 풀리고 무릎이 서로 부딪친다.....



 

 아침 첫 내소자로 K님이 오셨다. 80이 훌쩍 넘었고 허리가 굽었지만 실버카에 의지한 채 봄부터 가을까지 쉬지 않고 일하시는 분이다. 희고 거친 머리칼은 오늘도 여전히 베토벤을 연상케 한다. 누워서 9시가 되기를 기다리며 시계를 노려보다가 드디어 9시가 되자 일어나 나오셨겠다....  

"낯빛이 좋지 않으세요. 어디 불편하세요?"

"맨날 그렇지 뭐... 혈압약이 떨어져서 어제 약 지으러 왔더니 소장님이 교동 파견 가셨다고 해서, 오늘 아침에는 혈압약을 못 먹었어."

진료기록부를 들여다보니 방문 예정일이 지났다. 교동도 파견근무로 나 역시 정신이 없었다.

"약 타는 날짜가 지나셨는데 어째 이제 오셨어요?"

"지난주에 초상 치르고 왔지. 엉겁결에 가느라 혈압약을 안 가지고 가서 사흘이나 약을 못 먹어서 그나마 남아 있던 거 어제 마저 먹었어..."

"이미 죽었다는 소식에 뭘 그렇게 엉겁결에 가셨어요. 필요한 걸 죄다 챙기셨어야지, 근데 누가 돌아가셨어요?"

"우리 동생이 죽었어...."

"애고......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 없다더니, 어째 동생님이 먼저 가셨대요? 아프셨나 봐요..."

"그르게, 그 말이 딱 맞지 뭐야... 오는 순서대로 나 먼저 죽게 될 줄 알았더니.... 무슨 암이라고 6개월 산다고 하지 뭐야, 병원에 있다가 딸이 집으로 데리고 가서 한 달 더 살고 갔지. 마누라하고 이혼하고 나서 재혼도 안 하고 딸 둘 혼자 키우고 살았어. 작은 딸이 제 엄마 그렇게 나가는 걸 봐서 그런지 어릴 때부터 상처를 받아서 그런가, 시집도 안 가고 제 아버지랑 살았는데.... 그래도 덕분에 병원에서 비참하게 죽지 않고 집에서 갔지..... 난 내가 누나니까 당연히 내가 먼저 죽을 줄 알았는데 순서도 없어.... 애가 아빠, 고모 왔어요... 하는데 듣기는 하는 것도 같은데 아무것도 모르더라고... 불쌍해서....."


 소름이 돋았다. 부모의 죽음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었는데 내 언니 동생이 죽는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감당하지 못할 것 같다....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 혈압을 재고 얼른 돌아서서 약을 조제했다. 눈물이 솟구쳤다. 내 언니, 동생이 혹시 나보다 먼저 죽는 날이 온다면 그 슬픔의 크기는 가늠이 되지 않았다...

"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부모 돌아가시는 것보다 더 감당이 안될 것 같아요. 얼마나 힘드셨을까.."

나의 말에 K님이 눈물을 쏟으신다. 옛날 어머니 아버님들의 삶이야 누구라도 말할 것 없이 곤궁하고 힘겹기만 했을 것이고 가난한 부모 슬하에서 그 가난을 함께 물려받아 앞뒤를 다퉈가며 함께 고생을 했을 나의 형제와 자매들.... 각자 배우자를 만나 일가를 이루고 자수성가를 하기 위해 서로의 삶을 돌볼 겨를도 없었고 도움을 줄 여력은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가장 측은한 이는 내 가족이라지만 그에 앞서 나 만큼이나 측은하고 고단한 이들, 나의 형제와 자매들. 사람은 모두 제 설움에 겨워 운다더니 나는 내 언니와 동생들을 생각하며 눈물이 났고 K님은 죽은 남동생 생각에 둘이 마주 앉아 울었다.


 "내가 6남매야. 큰 오빠가 옛날에 아버지 돌아가시자마자 의논도 없이 땅을 죄다 팔아서 혼자 다 썼지 뭐야, 동생이 가만히 있지 않고 대판 싸우고는 의절을 했어요. 몇십 년을 안 보고 살다가 이제 죽게 되었으니 화해하라고 나도 그러고 애들도 그러는데 결국은 용서하지 못하고 저렇게 그냥 죽었어. 초상을 치르는데 나랑 우리 애들만 가고 다른 형제자매들은 조카들까지도 하나도 안 왔더라고. 세상에 그게 뭐라고.... 사람이 죽고 사는데..."


 K님은 '소장님이 그렇게 말해주니 한결 마음이 가볍다'라며 고맙다는 말과 함께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혈압약 한 달 분을 받아서 돌아가셨다. 굽은 허리를 실버카에 의지하며 무거워 보이는 발로 느리게 걸어가는 k님을 창으로 내다보며 나는 말할 수 없이 마음이 무거웠다. 죽음을 앞두고 용서할 수 없는 일이란 무엇일까? 곧 죽을 운명을 알고 있는 내 동기간에게 용서를 빌지 못할 일이란 무엇일까? K님의 복잡해 보이는 가족사를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죽음을 생각한다면 못할 일이 무엇일까?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 누구나 안다. 우리의 날수는 헤아릴 나위도 없이 짧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그 끝은 죽음이 기다리고 있음도 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인간은 신의 저울에 달아보았자 분명 한쪽으로 기울고 그 무게는 턱없이 모자란다. 신의 저울은 공정하지만 그 기준은 엄격하기 때문이다. 그 기준이 적용되는 결과는 삶 아니면 죽음 둘로 나뉜다.


 내게도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자매와 남동생이 있다. 아버지를 승화하던 그날 그 앞에서 우리는 그런 대화를 나누었다. 남겨진 엄마를 돌보는 일과 우리들 서로에게 충분히 사랑을 표현하는 일 등에 관한 이야기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특히나 네 명의 자매가 함께 처음으로 제주 여행을 가던 날, 내가 며칠에 걸쳐 리폼한 고무신을 신고 산책을 하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가. 짧은 우리의 날수는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고 삶의 무게는 나눌수록 가치를 더한다는 것, 인간의 미래는 죽음과 생명으로 나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잊고 살아가기에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마다 '허리의 뼈마디들이 풀리고 무릎이 서로 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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