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마음의 조각 : 시작
# 사랑이 처음 시작될 때
사랑이 최고라는 말을 이해하고 싶었다. 사랑에 전심을 다하며 사랑만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길 바랐다. 이십 대에 들어서서 단 한순간도 누군가를 보고 눈을 마주치고 만지고 느끼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었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은 애처롭고, 애달프고, 아프고, 간지럽고, 소모적인, 그야말로 고생이었기에 나는 누군가를 보고 마음이 찌르르 울리고 간지럽고 온종일 그 사람 생각만 나고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감정들이 내 안에 피어나지 않아도 괜찮았다. 정말이지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고독을 잘 보내는 멋진 어른이고 싶었던 것 같다.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애끓음이 되었다가 그 지독한 시간을 건너뛰어 어느덧 외로움이 늘 나와 함께 하는 본질적 감정이 되어가며 나는 정말로 혼자서도 잘 사는 사람이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혼자서 너무 잘 사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누군가와 무언가를 공유하고 함께 하는 것이 어려워지면, 불편해지면, 그래서 더 이상 타인과 아무것도 나누지 못하면 어떡하지 걱정도 했다. 모든 근원적 외로움은 물론이고 존재론적 고독을 너머 아무리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않는, 이가 더그덕 더그덕 떨리는 철저히 혼자라는 감각과 아무렇지 않게 매 순간 공생하게 된 나는 내가 누군가와 무엇이라도 함께 할 수 있을지 두려운 의문까지 들었다.
혼자가 외로운데 혼자가 너무 편해서 더 이상 ‘홀로’가 파생하는 여러 감정에 요동쳐지지 않는 내가 되어 그러니까 그걸 즐길 수 있는 지경까지 이르러서 어느덧 그 누구와도 감정을, 삶을, 공간을 공유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싶었다. 그러면서 나는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조금 느린 사람이라 나의 때가 되면 으레 그렇듯 잘해나갈 것 같았다. 내가 마음이 먹어지면 나는 좋은 사람이라 그런 나를 알아봐 줄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될 거라 믿었다. 그건 어떤 종류의 확신이었다. 살면서 이상하게 용감해지고 확신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내게 사람이, 사랑이, 만남이 그러했다. 그리고 그렇게 확신하게 된 몇 개는 정말 꼭 그렇게 이루어졌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무엇에도 동요하지 않던 내 마음이 드디어 움직였다.
그런데, 누군가를 향하는 설레고 애틋하고 슬픈 마음보다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고 기뻐하고 행복해하고 함박웃음 지을 수 있는 사람이란 감각이 나를 더없이 차오르게 한다. 이건 분명한 감사의 감정이다.
# 사랑 앞에 무력해지는 순간
사랑은 무지막지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잘나 보이고 괜찮아 보인다는 건 너무 가슴 아픈 일이다. 사랑은 슬프다. 다른 사람도 그 사람을 보며 나와 같은 마음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렇게까지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 사랑인가. 너무 쉽게 부서지고 일순간에 세워지는 이 한없이 연약한 감정을 나는 잘 다스릴 수 있을까. 오래오래 소중히 다루며 지켜나갈 수 있을까. 사랑 앞에서 나는 어린아이가 된다. 그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고 나도 모르게 이미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얼굴을 보고 싶은데, 눈을 마주치고 싶은데 막상 마주칠까 봐, 마주쳤을 때 내가 나답지 않을까 봐, 예쁘지 않을까 봐 자꾸 시선을 엇갈린다. 나는 답답한 바보다. 그러면서도 그 사람도 나와 같은 마음이길 자꾸만 바라게 된다. 내가 먼저 좋아했어도 상관없고, 내가 더 좋아해도 괜찮다. 그도 나를 바라봤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 지독한 짝사랑이 시작되었다
하루에도 쉴 새 없이 그 사람 생각이 나는 걸 보면 아마 나는 지금 짝사랑 중일 거다. 아니 이미,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내게 건넨 사탕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한참을 바라본다. 서로 다른 이에게 받은 같은 사탕 두 개를 올려놓고 어떤 게 그가 준 것인지 몰라 아무것도 까먹을 수가 없다. 두 개 다 내겐 소중해져 버린 것이다. 종일 그 생각에 일이 힘든 줄도 모르고 생이 버거운 줄도 모르고 두 발이 이 땅에서 저 하늘로 살짝 쿵 둥실 뜬 채로 내내 걸어 다니다 문득 내가 날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유 없이 몰려드는 불안과 허무와 욕심과 실패를 상상하다 이내 지쳐 버린다. 포기되지 않는 마음과 포기할 수 없는 마음이 지금 내 마음에 있다. 그 사람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점에 가서 책 한 권을 사고 펼치자마자 그 사람 생각으로 가득 차 이내 책을 덮어버리고 그 사람을 보러 달려가 고백해 버린 이슬아의 문장을 이틀이 지나지 않아 이해해 버렸다. 나는 그 사람 생각에 내내 들뜨다 이내 고백해 버리는 상상을 한다. 책을 그 사람과 함께 읽는다. 이슬아처럼, 그와 함께 읽을 수도 없이 나에게서 그가 쏟아져 나오면 그때는 나도 그녀처럼 뒤돌아보지 않고 달려가 그에게 이 커다랗고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을 고백해 버리겠지.
사랑은 나를 이상하게 만든다. 혼자 품은 사랑에 심장이 콱 막힌 것 같다가도 새벽에 잠에서 깨어날 쯤 처음으로 떠오른 얼굴이 그라서, 처음으로 느껴지는 마음이 그를 향한 나의 사랑이라서, 순식간에 그를 좋아하고 아끼는 이상하고 애틋한 상태가 완연하게 피어나서 나는 이미 기분이 좋아져 버린다.
괜스레 마음이 착잡하여 나도 나를 어찌할 수 없이 착-하고 가라앉아 있어도 내내 그 사람 생각뿐이고, 갑자기 튀어나온 그의 얼굴에, 그 이름 세 글자에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불쑥 힘을 되찾아버린다. 그렇다, 나는 로켓이 되어 저 우주로 날아가 버리고야 마는 것이다. 아 사랑은 이토록 엄청난 추진력을 가진 물성이란 말인가! 애달프고 고달프고 그러나 계속하게 되는 이 처연한 사랑이여 너는 어쩌다 내게로 온 것인가!
오늘도 그 사람도 나와 같은 마음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랑은 아니더라도 호(好)이면 좋겠다는 작고 낮고 소중한 이 마음이 실현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