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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부티 Jun 18. 2024

두렵고 갸륵한 사랑

사랑의 시작을 망설이다


 또다시 무턱대고 사랑을 하게 될까 봐 두렵다. 또 누군가를 그렇게나 전심으로, 진심으로 좋아하게 될까 봐 벌써부터 가슴이 아프다. 내 마음에 사랑이 가득해지고 그래서 그 사랑이 무턱대고 커질까 봐, 제어할 수 없이 커지고 빨라지고 깊어지는 그 마음이 어느 순간 내가 감당할 수 없이 거대해져 나를 무참히 흔들까 봐, 내가 사랑의 한가운데에서 홀로 견디며 서 있게 될 그 모든 순간들이 아직 다가오지 않았고 겪지 않았는데도 선명해서 벌써부터 이 마음이 아프다. 이 마음을 내가 감당하기 어려워질까 봐, 자꾸만 나도 모르게 이 사랑이 커지고 거대해지고 차올라 제어할 수 없이 커져버리면 나는 또 사랑 앞에 무력 해질 테고, 사랑에 순전해질 테고, 용기를 내야 할 테고, 그 끝을 마주해야 하니까. 그 끝이 어떨지 모르니까 또 이번과 같은 끝이라면 나는 정말. 정말. 이번엔 너무 슬퍼버릴 것 같으니까.

 어떤 결말일지 모를 그 사랑을 향해 마구 돌진할 나를 어여쁘게 여기면서도 감사하면서도 그 사랑의 힘을 이미 알아버린 터라 나는 조금 두렵기도 한 것이다. 그 먹먹하고 내가 감히 다 품을 수 없는 사랑의 풍요와 충만의 감정에 물 먹은 미역처럼 부풀어올라 정신을 못 차릴까 봐, 자꾸 사랑 앞에 미끄러져 내릴까 봐 버거워진다. 그러면서 이 사랑의 환희와 사랑이 내게 선물해 주는 동력과 활기에 벅차다.

 

 왜 자꾸 사랑하고 싶어 지는지, 왜 자꾸 이토록 깊은 사랑이 내 안에 샘솟는 건지, 그래서 그 사랑이 향하는 방향이 선명해지는 건지, 그걸 자꾸 누구와 나누고 싶어지면 어쩌자는 건지 그 모든 게 감사하면서 아프고 속상하다. 그렇다. 나는 이미, 벌써 사랑에 무력해졌다. 또다시, 어쩌다, 한순간에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이번엔 정말 큰일이다.


 그전엔 사랑을 몰랐기에, 사랑을 안 해봤기에 처음 찾아온 사랑의 향후 행방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온전히 받아들이고 느끼고 감사하며 행복해할 수 있었다. 사랑으로 삶의 그 어느 때보다 내가 환해질 수 있었고 정말 온몸으로 듬뿍 사랑에 충만할 수 있었다. 그 감각이 새로웠고 어느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던 내 마음이 이렇게 회복될 수 있구나 싶어 그 자체로 또 다른 충만이 찾아왔다. 사랑을 하게 된다면, 할 수 있다면 기꺼이 하고 싶었다. 사랑 앞에 울며 엎드러질 때도 그 시리고 혹독한 차가운 감각이 온종일 나를 관통하고 지나가도 처음이었기에 견딜 수 있었다. 통과하는 모든 순간들을 묵묵히 견뎌낼 수 있었고 내 안에 온전히 담아 그 미세한 결마저 느끼며 보내줄 수 있었다.


 이제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에, 그래서 통하는 사랑을 하고 싶기에, 혼자 하는 사랑 말고 내 안에 너를 향해 흐르는 이 거대한 사랑이 내 안에서만 끝나지 않고 너에게 닿고, 내가 사랑하는 네가 나를 사랑해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 머물기를, 우리가 서로에게 소중하고 애틋하고 감사한 존재가 되기를,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더해지기를 그래서 함께 손 잡고 혼자라면 닿을 수 없을 그 어느 곳까지 함께이기에 나아가기를 바라게 되었다.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시작한 사랑은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모든 감정과 감각들을 온전하게 품게 했다. 그러니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난 후, 마주하게 될 사랑을 예감한다는 건 어쩌면 조금은 고통일지 모른다. 사랑 앞에서 내가 얼마나 무력해질지, 그러다 무참해지고 어느 순간엔 비참해질지도 모르기에, 사랑의 항해에서 어떤 파도에 휩쓸리게 될지 가늠할 수 있기에 그래서 더 상대의 마음도 나와 같기를 바라게 되기에, 그래서 나는 제대로 사랑을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마음이 아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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