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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부티 Aug 03. 2024

너와 내가 산책하며 나누었던 모든 말

나도 소개팅시켜줘


 산책했을 때의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면


 그날 나는 우리의 관계가 친구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집에 도착했다고, 하루 마무리 잘하라고 보낸 연락으로 나는 밥을 먹기 전까지 우리의 연락은 더 이상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또다시 문자를 보내는 이 친구가 있었고 그렇게 하루동안 연락을 한 뒤 다음 날 나는 그 폭력적인, 자기 마음과 감정의 크기와 속도만 생각한 채 상대의 감정은 전혀 헤아리지 않고 내뱉은 감정적인 문장과 직면해야 했다.


불과 이틀 사이에 일어난 모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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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책을 할 때 나는 우리가 알아온 한 자리 숫자의 시간이 말해주듯 이 친구는 나에 대해 하나도 모른다는 생각을 계속했다. 모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앞으로도 나에 대해 모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친구는 내가 뭘 좋아하고 퇴근 후에, 주말에 어떤 걸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그런 건 하나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거의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마지막 이별의 시기와 그 이유를 물었고 나는 그때 조금 불편하다고, 무례한 것 같다고 느끼면서 그 감정을 정확히 직시하고 나를 보호하지 못한 채 그 대화의 흐름에 타야 한다는 압박에 밀려가고 있었다. 그때부터 이미 이 관계에 있어서, 대화에 있어서 그에게 상대에 대한 배려나 세심함은 없었던 것이다. 그저 본인이 나에 대해 궁금한 것, 묻고 싶은 것을 빨리 알아내고 싶고 그래서 본인의 궁금증을 해결했으면 그 이외의 화제는 노력해서 꺼내지 않는 느낌이었다.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 무의식으로 느끼던 갑갑함의 실체를 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을 때에야 비로소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우산을 씌워주며 10분 남짓 같이 처음 걷게 된 그날도 대뜸 나의 형제 관계를 물었고, 형제와의 나이차를 궁금해했고, 관계의 서열 속에서 내가 어떻게 성장했는지가 아닌 키워졌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이후에 잠깐 만났을 때도 나에게 커피를 마시는지 물었는데 그건 본인이 커피를 마시는데 그렇게 많은 돈을 정기적으로 쓰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고 카페인에 의존하는 모습이 싫어서라고 했다. 지나고 보면 보이고 느껴지는 아득한 것들. 그 친구는 나에 대해 궁금한 게 아니라 자신이 그려온 사람에 내가 부합하는지를 계속 검증하고 확인하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렇게 느낀다.


 산책을 할 때 이별의 시기와 이유를 묻는 말뿐 아니라 우리는 이런저런 다양한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결정적으로 우리가 친구임을 확신할 수 있었던 건 나에게 소개팅을 나가라는 말보다 자기도 소개팅을 시켜달라는 말 때문이었다. 정말 우리가 안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도 내게 이성적인 끌림에서 산책을 제안했다고 하더라도 말 그대로 확신이 아닌 어떤 궁금함, 알아가보고 싶은 마음이었을 테니 나에게 소개팅을 나가지 말라고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정말 나와 친구 이상의 무엇이 되고 싶었다면 본인도 소개를 시켜달라고 말해서는 안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건 더없이 비겁하고 용기 없는 말인 것이다.


 그날 대화의 분위기나 온도가 남녀사이보다는 친구로서 하게 되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고 소개팅 이야기까지 나왔으니 나는 정말 이 친구랑 친구가 되겠거니 생각했다. 그래서 집도 가까우니 종종 산책하자는 그의 말에 그러자는 대답까지 하며 편한 마음으로 헤어졌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시작된 연락에서 우리는 그전에 다음 주 주말에 밥을 먹기로 하였는데, 평일에 한 번 더 보자는 이 친구의 말이 있었고, 나는 어쩐지 내키지 않았고 동시에 뭔지 모르겠는 이 상황과 헷갈리게 하는 이 사람의 방식이 불편하고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그냥 원래 일정대로 한 번 만나자고 했고 이미 자존심이 센 이 친구는 자신이 낸 용기만큼 내가 따라오지 않아 스크래치가 났을 터였단 걸 그 어마무시한 답을 받고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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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를 알아봐 줘서 고맙다고 산책을 하자고 했고, 그냥 아무 사이도 아닌 친구, 남녀 이런 것들을 다 떠나 그냥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를 알아 가며 연락 한 지 5일밖에 안 된 나와 그가 있었다. 나도 소개팅을 나가고 본인도 소개팅을 해달라고 하고는 다시 연락을 해와 다음 주에 두 번 만나자고 하는 그와 다음날 앞으로 아는 척하지 않으려 했다는 그가 일주일 안에 모두 있다.


 아, 나중에 물어보니 본인도 소개팅 시켜달라고 하고는 끝에 '나도 거절 좀 해보게'라고 붙인 게 자기만의 표현이었단다. 그걸 알아차려달라는 것도 어린아이 같았지만 그보다 본인도 거절이란 걸 해보고 싶어서 소개팅을 시켜달라는 것도 무척이나 실망스러운 지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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