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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문 밖은 폐허

by 명랑도리


외갓집에 가기 싫은 압도적이고 절대적인 이유는 물론 지독한 멀미였지만, 그것 말고도 자잘한 이유는 많았다. 그곳은 너무 심심했고, 서울보다 말도 안 되게 추운 데다가, 태생이 겁 많은 나를 질겁하게 만드는 것들이 지뢰처럼 산재해 있었다. 결정적으로 한동안 엄마와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못 견디게 슬펐다. 엄마 없는 두 달은 어린 나에게 영원처럼 긴 시간이었다. 엄마는 나를 데려다 놓고는 언제나 내가 잠에서 깨기 전에 사라졌다. 윗목에 떠 놓은 물이 얼 정도로 차가운 웃풍과 주기적으로 몸을 뒤척이지 않으면 화상을 입을 정도로 쩔쩔 끓는 아랫목의 격차처럼, 다음날 푸른 창호지에 스미는 새벽빛에 눈을 뜨면 엄마가 사라진 낯선 방은 모든 것이 까마득하게 이질적이었다.


엄마는 조반도 거른 채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 자기 몫의 노동을 감당하러 서둘러 집을 나섰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너나할 것 없이 가난했고, 엄마의 노동이 우리를 먹이고 입혔다. 시루떡처럼 층을 이루며 겹겹이 엄마의 어깨를 누르던 '밥벌이'와 '양육' 중에서, 양육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는 잠깐의 은총이 방학이었다. 늘 잠이 부족한 얼굴을 하고 있던 젊은 엄마가 그 시간만큼 조금 더 쉴 수 있었을 것이다.


나의 시골 출정이 그런 절박함 때문이라는 것을 감지할 정도로 눈치가 빤해질 무렵부터, 외갓집에 가기 싫은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귀염둥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천덕꾸러기였다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사나운 주인공처럼,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아니꼽고 치사한 기분이 느닷없이 심사를 배배 꼬이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영혼을 불시에 습격하는 그 뒤틀린 심보는 이후 서울에 돌아간 뒤에도, 그 후로 몇 년 동안이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출몰하곤 했기에, 이것은 꼭 버려진 아이 신드롬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깨닫게 된다.)


창호문만 열면 대뜸 한데로 연결되는 덧문은 앞으로 엄마 없는 아이로 60일 정도를 살아야 한다는 차가운 현실에 대한 메타포였다. 마루로 이어지는 버젓한 방문이 떡하니 버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방 윗목에 외지로 연결되는 쪽문이 있는 것이 신기해서 나는 수시로 그 문을 열어보곤 했다. 화려한 모란꽃이 그려진 밍크 담요 속에서 뜨끈뜨끈하게 달궈진 몸을 일으켜 쪽문 밖으로 나오면, 문밖에서 기다리던 누군가 양동이 가득한 얼음물을 끼얹은 듯, 찬 공기가 온몸을 덮쳤다. 할머니는 감기 걸린다고 질색을 하셨지만, 난 북쪽 산골짜기에서 내려온 그 절대적 냉기에 매료되어 하루에도 몇 번이나 벌컥벌컥 방문을 열곤 했다.


하지만 문 밖은 폐허였다. 가을걷이가 끝난 긴 밭이 은퇴한 노인처럼 시들었다. 동네에 또래는 없었고, 유일한 말벗이 되어줄 이모는 종일 바빴다. 시골에서는 해도 뜨지 않은 어둑어둑한 시간에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상을 물리자마자 읍사무소 직원이었던 삼촌은 자전거를 타고 새벽길을 나섰고, 할아버지는 논이나 밭이나 산으로 사라졌다. 할머니마저 어딘가로 일하러 나가면 이모가 집에 남아 수없이 많은 종류의 일을 쉴 새 없이 해치웠다. 집에는 먹이고 보살필 생명체가 사람 말고도 많았는데, 동식물을 키우기 위해 요구되는 수천 가지 일들을 감당하느라 모든 식구들은 저마다 분주했다. 하여 첫날의 환대와 애정공세는 다음날이면 곧 시효가 만료되었고, 나는 본격적으로 이 무료한 공간에서 홀로 견딜 방법을 궁리해야 했다.


문 밖은 그저 폐허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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