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에는 무서운 것들이 많았다. 앞으로 두 달이나 여기서 평정심을 유지하려면 내적 평화를 위협하는 것들과의 화해가 절실했다. 인간과 동물의 공존전략이 그것이다. 외갓집은 흙마당을 둥그렇게 애워싸며 온갖 동물들이 포진되어 있었는데, 어느 하나도 만만한 것이 없었다.
우선 소는 너무 컸다. 동물원 구경도 몇 번 못해 보았던 당시의 나에게 황소는 그 순한 눈망울로도 타협이 불가능한 거대괴수였다. 소를 극복하기 위해 나는 큰 결단을 내린다. 한번 만져보기로 한 것이다. 초식동물의 대명사인 소가 설마 나를 잡아먹기야 하겠어? 이런 가설은, 소의 몸 어디든 쓰다듬을 수만 있다면 확실해질 것 같았다. 나는 용기를 내어 소의 옆구리로 다가갔다. 조심스레 한 손을 뻗어 넓은 등에 얹어보려 하는 순간, 소가 고개를 훽 돌렸다. 소는 하루 종일 뭔가를 질겅질겅 씹고 있었는데, 그 날의 소는 큰 눈동자를 희번덕거리며 껌 좀 씹는 불량배의 눈초리로 넌 또 뭐냐,고 묻는 듯했다. 나는 깜짝 놀라 손을 거두며, 악, 소리까지 질렀고, 그 소리에 소와 내가 동시에 놀랐다. 실패였다.
외양간 옆에는 누렇고 얼룩덜룩한 대여섯 마리의 큰 개들이 짧은 목줄에 묶여 있었다. 소가 주는 공포심이 덩치 큰 깡패에게 알아서 눈을 내리까는 굴종의 정서라면, 개들이 유발하는 것은 어두운 골목에서 흉기를 소지하고 있는 괴한과 마주친 듯한 원색적 두려움이었다. 개는 짖었다. 그것도 너무 컹컹.
개들은 내가 나타나기만 하면 최선을 다해 목청을 드높였다. 저마다 네 개의 다리 중 앞쪽 두 발을 허공에 버둥대며 송곳니까지 드러내 보이곤 했다. 열개도 넘는 개발이 동시에 잽을 날리는 것을 보고 있자면, 그들의 목줄이 얼마나 튼튼한지 확신할 수 없어서 불안감이 엄습했다. 한편으로는 도대체 내가 지들한테 뭘 어쨌다고 저렇게까지 지랄을 하는지 억울함에 환장할 지경이었다.
그럴 때면 산에서 돌아오시던 할아버지가 개욕을 하시며 부지깽이로 그들을 후려쳤다. 할아버지가 개 우리 옆의 긴 막대기에 손을 뻗는 시늉만 해도, 개들은 일사불란하게 다리 사이로 꼬리를 감추며 한구석으로 찌그러졌다. 그들은 전형적 약강강약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통쾌함도 잠시, 할아버지가 풀냄새 짙은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고 또 어딘가로 나가시기만 하면, 휴식을 끝내고 링 위로 다시 올라온 파이터처럼 그들은 더욱 투지 넘치게 포효했다. 할아버지의 나무 막대기를 휘둘러보아도 별 소용이 없었다. 개는 내가 극복하기에 견적이 안 나오는 상대였다. 깨끗이 포기.
좀 만만한 상대도 있었다. 마당 측면에는 토끼장, 닭장, 오리장이 있었는데, 하지만 그들도 덩치나 공격성에서 레벨이 조금 떨어질 뿐 이빨이나 부리와 같은 살상 아이템을 장착하고 있다는 차원에서 두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긴 무청을 토끼장 안에 넣어주다가 손을 떼는 타이밍을 놓쳐 토끼한테 물릴 뻔 한 뒤로는 토끼도 야수로 보였다. 닭과 오리는, 그냥 깃털 그 자체가 낯설고 징그러웠다. 역시 실패.
마루에서 마당으로 내려오는 순간, 나를 포위하며 학익진으로 도열된 그들, 소와 개와 토끼와 닭과 오리와 나는 동시에 기싸움을 벌여야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기세에 밀려 뭐라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혼자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지만...
그러나,
고학년이 되어 덩치도 깡도 딱히 아쉬울 것 없다는 허세가 스멀스멀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나는 오히려 그것들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특별한 트라우마가 없는 사람이 인간 곁을 지키는 생명체에게 느끼는 본능적 친밀감 비슷한 것.
두려운 것들과 두려워하는 나의 지난한 투쟁 끝에, 결국 나는 '사랑'이라는 정반합의 감정에 도달한 것이다. 역시 시간이 필요한 일들이었다.
그리고 그해 겨울 나는 문득, 나의 유년을 위협하던 그 존재들이 결국에는 아무런 위협도 없이, 각자에게 허락된 시간이 만료되면 모두 한 가지 이유로 사라져 갔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큰 슬픔에 휩싸였다.
경제적 가치로 환산될 수 없는 사육이 사치였던 80년대의 빈농.
내가 그토록 가까이 지내고 싶어 했지만, 온통 나를 두렵게 했던 토끼와 닭과 개는, 내가 머무는 겨울 동안 장터에서 운동화나 돼지고기나 앙고라 장갑 같은 것으로 교환되어 결국 나에게 돌아왔다. 할아버지는 제일 시끄럽던 얼룩개를 제일 먼저 장으로 데려가셨다. 남은 개들은 여전히 내 그림자만 봐도 신이 나서 짖어댔지만, 어쩐지 나는 더 이상 그들이 두렵지 않았다.
사랑이나 두려움이나 슬픔처럼 또렷하게 이름 붙일 수는 없지만, 감정과 감정이 부딪치며 부서진 미세한 마음의 파편들이 겨울 밤하늘에 부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