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얘기만 시작하면 무용 선생은 표정이 돌변했다. 잠깐 상상한 것만으로도 불쾌감이 치솟는 모양이었다. 화딱지가 나서 못 참겠다는 듯 말은 점점 빨라지고, 목소리도 한 옥타브 올라갔다.
- 내 참 어이가 없어서... 어제 공원에서 웬 여학생이 이러고 있더라. 이러고.
시범을 보이기 위해 무용은 의자에 앉아 다리를 쩍 벌렸다. 비주얼 쇼크가 교실을 덮쳤다.
- 어떠니? 보기에 괜찮니? 너희들 이것만은 평생 명심해야 한다. 여자는 앉은 자세 하나만 보면 어떤 사람인지 자동으로 알 수 있어.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조신하게 앉은 여성은 얼마나 아름답니? 내면도 앉은 자세처럼 단정하겠지. 반대로 무신경하게 두 다리를 쩍 벌리고 앉은 여성은? 아유, 얘들아, 난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앉은 자세에 대한 무용의 집착은 종교에 가까웠다. 갓 입학한 우리들의 몰골이 그녀에게 어떤 위기감을 조성한 모양이었다. 1학기 내내 그녀는 일단 조신하게 앉는 방법을 강조한 후에야, 비로소 본 수업을 시작했다. 17년 인생 동안 앉는 자세가 이토록 중요한 줄 추호도 몰랐던 우리들은 다들 꺼벙한 표정으로 눈만 껌뻑거렸다. 교탁 앞에 투명 방음벽이라도 있는 것처럼, 자신의 말이 허공에서 머리를 박고 추락하자 무용의 조급증은 점점 심해졌다.
- 희성아, 너는 머리 좀 길러야겠다. 너 무슨 불만 있니?
70kg가 넘는 희성은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았다. 어릴 때부터 오빠들이랑 같은 이발소를 다녔는데, 이제는 너무 익숙해서 다른 곳은 싫다는 것이다. 희성이 머리를 깎고 올 때마다 ‘군대 가냐’고 애들이 놀렸지만, 희성은 그저 히죽거리고는 그만이었다. 덩치도 큰 데다가, 오빠 옷을 물려 입을 때가 많아서 멀리서 보면 꼭 남학생 같았다. 무용이 보기에는 최악이었다.
개코원숭이처럼 까불거리는 신입생들을 우아한 여고생으로 만드는 것이 이 학교에서 무용 선생이 짊어진 사명이자 소명이었다. 짐승을 사람으로 만드는 과정인지라, 오프닝 레슨은 ‘앉기’부터 시작되었지만 개코원숭이답게 교관의 말은 다들 개코로 여기는 통에, 수업 때마다 철창을 두드리며 흥분하는 쪽은 점잖은 우리가 아니라 오히려 무용이었다. ‘우아함’은 우리가 도달해야 할 궁극의 진이고 선이고 미였다. 대관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우리를 볼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는데, 그날따라 뒷자리에서 굼실거리는 상고머리 희성이 거슬렸던 것이다.
- 여자는 어디에 앉든 두 다리가 자석처럼 착 달라붙어야 해.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는 여성을 보면,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어? 못 배워 먹었다, 칠칠맞다, 조신하지 못하다, 무례하다, 멍청하다, 이건 아닌가? 암튼 무조건 최악이야. 알겠니?
눈앞에 되바라진 표정의 쩍벌녀가 앉아있기라도 한 듯 그녀의 울화통은 터지기 직전으로 부풀어 올랐다. 그럴 때마다 우리들은 생각했다. 참 피곤한 스타일이시구나...
- 머리로 외우려 하지 말고, 몸이 기억하도록 습관이 되어야지. 그럼 다 같이 연습해 볼까?
선생은 앞에 의자 하나를 꺼내 놓고, 올바른 앉기 자세를 보여주었다. 의자에 엉덩이를 내려놓는 것과 동시에 두 개의 길고 가는 다리가 쪼개지기 전의 나무젓가락처럼 냉큼 하나로 융합되었다. 과연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모은 다리가 좀이 쑤시면, 두 다리를 붙인 채 옆으로 10cm 정도만 비스듬하게 배치해도, 그건 그것대로 예쁘다면서 실전 꿀팁까지 일러주었다.
우리는 교관의 시범을 곁눈질하며 열심히 자세를 따라 해 보았다. 그깟 다리만 모으면 인성도, 교양도, 심지어 지능과 학식까지 인증해 준다는데, 그 정도라면 투자할 가치가 충분했다. 무용의 주장에 따르면 그 혐오스러운 자세는 주로 방만함이나 반항심 같은 우리의 마음가짐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득도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내적 수련을 통해 꿈꾸는 것이 고작 내 다리 한쌍을 붙이는 것이 전부라니, 어쩐지 남는 장사를 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녀가 다리를 모으는 모습은 오른손으로 찻잔을 들어 올리는 것처럼 자연스럽던데, 내가 다리를 모으려니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었다.
며칠 고민한 끝에 나는 드디어 그 이유를 알아냈다. 여기에는 선생이 모르는 구조적 문제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첫 번째는 다리의 길이였다. 다리가 짧은 아이들은 의자에 앉았을 때, 발꿈치가 바닥에 닿지 않았다. 허벅지에서 90° 각도로 무릎을 굽히면 발이 허공에 떠서, 발꿈치를 바닥에 붙이고 싶으면 엉덩이를 앞으로 내밀면서 다리를 쭉 펴야 했다. (우아함은커녕 시비 걸러 온 빚쟁이의 자세) 등받이에 등허리를 붙인 채 각 잡고 앉으면 무릎을 기점으로 양다리가 의자 아래로 덜렁거리는데, 그 조건에서 발바닥의 지지 없이 오직 무릎의 근력만으로 발목을 붙이기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두 번째는 기하학적 모순에 해당되는 문제였다. 우리들 중에는 허벅지나 팔뚝을 중심으로 지방을 불러 모아, 미쉐린 타이어 마스코트처럼 변해가는 아이들이 많았다. 정면에서 바라본 다리의 단면도는 역사다리꼴. 그 상태에서 무릎과 발목을 떼지 말라는 것은, 역사다리꼴의 두 도형을 나란히 붙여 직사각형을 만들라는 것만큼 불가능한 요청이었다. 이것은 피타고라스도 풀어낼 수 없는 기하학적 난제에 해당했다. 방법은 한 가지, 두 허벅지의 접촉면을 완력으로 밀어서 일시적으로 다리를 직각사다리꼴로 만드는 것뿐이었다. 몇 초 이상 버티지 못하고, 종아리에 쥐가 난다는 점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나는 이 두 가지 모두에 해당했다. 두 무릎을 붙이면 허벅지 앞쪽에서 통증이 시작되었고, 연이어 바닥에 닿지 않은 짧은 다리에서 부들부들 경련이 일었다. 무용에 적합한 학다리로 평생을 살아온 그녀의 입장에서는 상상해본 적이 없는 문제였을 것이다. 그러니 몹시 억울했다. 짧고 굵은 다리도 서러운데, 마음가짐이 글러먹었다는 오해까지 받았으니 말이다. 왜 너는 그렇게 못 생겼니? 인성에 문제 있니? 뭐 이런 느낌이랄까...
어쨌거나 앉는 자세가 여고생의 자격시험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도 잔소리를 듣다 보니, 앉은 것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신경 쓰는 수준에는 도달했다. 지금도 지하철에서 좌석 두 간을 차지하고 다리를 벌린 민폐남, 민폐녀를 만나면 (이유를 불문하고) 일반적 시민들이 느끼는 평균적 혐오감을 월등히 웃도는 분노가 솟구친다. 머리보다 몸이 기억해야 한다는 그녀의 주문이 아직도 힘을 발휘하는 모양이다.
여고생은 우아해야 한다는 명제는 무용에게 진리고 정의였다. 교복을 입지 않았던 우리들은 다이너마이트를 몸에 두른 테러범처럼 간단하게 그녀를 열폭시킬 수 있었다. 어떻게든 옷으로라도 튀어보고 싶었던 나나는 무용한테 욕을 먹은 이후,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의 의미를 뼈저리게 실감했다고 했다. 날티 나는 신상을 좋아했던 종아는 '그렇게 옷에 신경 쓸 시간에 영어 단어라도 하나 더 외우라'는 핀잔을 들었고, 반대로 일 년 내내 엉덩이 반질반질한 추리닝만 입고 다니던 영실은 '넌 옷이 그거밖에 없냐'는 눈총을 받았다.
그녀가 가장 질색했던 것은 단연 밀리터리룩이었다. 깔깔이 잠바나 개구리 문양이 들어간 카고 바지 같은 것을 입고 왔다가, 하필 기분이 언짢은 날의 무용에게 잘 못 걸리기라도 하면 3년 동안 먹을 욕을 하루에 몰아서 폭식하는 기염을 토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녀가 교주로 군림하는 우아교의 성지에 불을 지른 미개인이었다.
천명도 넘는 전교생을 일일이 말로 단속하기 어려웠기에, 우아교 신도들에게도 지켜야 할 의무가 주어졌다. 애국조회 때에는 무조건 스커트를 입으라는 것이다. 매일 기도를 하다 보면 부실했던 신앙심이 저절로 차오르듯이,일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스커트를 입는 연습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어? 이런 옷이 왜 이렇게 편하지?' 하면서 내면 깊숙한 곳에 찌그러져있던 숙녀의 자아와 조우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행동의 교정을 통해서 죄 많은 마음을 다스리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태어나서 한 번도 치마 따위를 입고 학교에 가본 적 없는 나 같은 아이들에게 그것은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명령이었다. 그렇다고 교칙을 어길 수는 없었기에, 나는 집 안의 장롱을 뒤져 주인을 알 수 없는 치마 하나를 찾아냈다. 사물함에 처박아두고, 조회 때만 갈아입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나올 수 있는 잔꾀라는 것이 다 비슷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모두 월요일의 스커트를 하나씩 보유하게 되었다.
언제 유행했던 것인지 알 수 없고, 길이와 무늬도 제각각인 낡은 치마들이 어느 집 장롱을 탈출해 속속들이 강당으로 모여들었다. 월요일마다 벼룩시장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일주일간 사물함에 처박혀 있던 옷들은, 예민한 소설가가 구겨버린 원고지처럼 꼬깃꼬깃했고, 생전 빨아 입지 않은 탓에 치맛자락을 펄럭일 때마다 수백 개의 농축된 땀냄새가 밀폐된 강당을 떠돌았다. 상하의 어울림을 고려하지 않은 채 불쑥 끼어든 치마 덕분에, 월요일마다 강당은 전국 패션 테러리스트들의 정모가 개최된 만남의 광장으로 돌변했다.
폭넓은 주름치마 위에 삼성 라이언스 야구잠바를 입고 온 K가, 타이트스커트 아래 농구화를 신은 S를 보며 깔깔거렸다. P가 그 둘을 비웃으며 손가락질을 할 때마다 야상 잠바 아래로 게더 스커트의 레이스가 하늘거렸다. 진정한 믹스매치의 탄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