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고 나서야 보였던 안전장치
그때는
그게 보호막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정규직으로 일하던 시절의 나는
지금처럼 애쓰지 않았다.
더 능숙해서도,
더 단단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애쓰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정규직이라는 위치는
눈에 띄지 않게
여러 겹의 안전장치를 제공했다.
조금 실수해도
바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고,
하루의 결과가
다음 날의 자격으로
즉시 환산되지도 않았다.
나는 그 안정감을
내 성실함이나 태도의 결과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 자리를 벗어나고 나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그 시절의 여유는
개인의 역량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구조가 제공하던 여백이었다는 걸.
이미 속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증명과 설명을 덜 요구받는 상태,
그 자체가 보호였다.
정규직이라는 보호막은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장치이기보다는
뒤로 밀려나지 않게 해주는 장치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애쓰지 않아도
버틸 수 있었다.
애쓰지 않는 하루가
게으름으로 해석되지 않았고,
조용한 날이
위험 신호로 읽히지도 않았다.
그때는 몰랐다.
그 안정이
항상 나와 함께할 거라
자연스럽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그 보호막을
의식적으로 감사해 본 적도,
언젠가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지금 다시 과거를 바라보면
그 시절의 나는
특별히 더 나은 사람이어서
편안했던 게 아니다.
그저
개인이 아닌 구조가
나를 대신해
여러 가지를 막아주고 있었을 뿐이다.
그 사실을
잃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이 글은
그 시절을 그리워하기 위한 기록이 아니다.
다만
그때의 나를
조금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뒤늦은 정리다.
정규직이라는 보호막은
그 안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고,
벗어난 뒤에야
그 두께를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