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장소에 따라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
외국에서 회사 생활을 하면 어떨까? 미드 속 주인공들처럼 퇴근 후 라이브 밴드가 흐르는 펍에서 맥주 잔을 기울이고, 옆자리 사람과 자연스럽게 눈을 맞추며 친구가 되는 나날들. 인플루언서들의 콘텐츠 속엔 매일 새로운 모임과 화려한 네트워킹이 넘쳐난다. 나 역시 한때는 그런 삶을 상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그 그림과는 꽤 거리가 멀었다. 일단 나는 술을 못 마시고, 스몰토크에는 영 재주가 없다. 한국을 벗어나면 술이 필요 없을 줄 알았는데, 여기서도 사람들과 가장 빠르게 가까워지는 방법은 여전히 술잔을 사이에 두는 일이었다. 모르는 주제로 영혼 없이 맞장구를 치는 스몰토크는 업무보다 더 에너지가 소모되는 노동처럼 느껴졌다.
싱가포르에 갓 왔을 무렵, 나는 용기를 내어 팬트리에서 마주친 동료들에게 “하이!”라고 먼저 말을 걸었다. 책에서 배운 대로, 미드에서 본 대로. 하지만 돌아온 것은 짧은 눈인사거나 어색한 침묵뿐이었다. 팬트리에는 커피 머신 돌아가는 소리만 울렸다. 그 순간 문득 ‘아, 여기도 결국 동양권이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상상했던 미드 같은 회사 생활은 첫 인사와 함께 조용히 막을 내렸다.
그렇다고 싱가포르가 겸손만을 미덕으로 삼는 사회는 아니다. 오히려 이곳에는 먼저 목소리를 내고, 나를 적극적으로 드러내야 하는 문화가 분명히 존재한다. 문제는 내가 소위 말하는 ‘나댐’이 체질적으로 어색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한국의 조직 문화 속에서 적당한 줄타기를 하며 사회생활을 배워온 나에게, 끊임없이 나를 증명해야 하는 이 방식은 또 다른 벽이었다. 한국에서는 ‘나댄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조심했는데, 여기서는 내 생각을 바로 말하지 않으면 성과가 없는 사람, 혹은 소극적인 사람으로 분류되기 쉬웠다. 말실수를 하지 않으려 한 번 더 생각하는 나의 신중함은 이 역동적인 환경 속에서 종종 ‘자신감 부족’이라는 오해를 샀다.
회사 밖에서는 좀 다를까 싶어 ‘Meet Up’ 어플을 켜고 낯선 사람들을 만나러 나간 적도 있다. 하지만 만날 때마다 반복되는 자기소개와 어색한 어필의 과정 속에서, 나는 여전히 ‘나댐’이 서툰 사람이었다. 스몰토크에 능하고 금세 친해지는 사교형 인간이었다면 내 싱가포르 인맥 지도는 지금보다 훨씬 넓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싱가포르에 온다고 해서 드라마틱하게 변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살 때 내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소모임에 나가지 않았듯이 말이다. 서울에 있을 때처럼 주말이면 마음 맞는 친구와 맛집을 찾아다니고, 전시회나 핫플을 기웃거리며 소소하게 에너지를 채운다. 펍에서 흥얼거리다 운명처럼 사람을 만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지만, 덕질을 통해 만난 인연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나에게는 더 중요하다.
나의 싱가포르 회사 생활은 여전히 쉽지 않고 인간관계의 폭도 넓지 않다. 그래도 나는 안다. 이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고, 조금 조용하고 느리지만 나답게 살아가는 방식임을. 싱가포르라고 해서 특별히 더 쉬운 것도, 더 화려한 것도 아니었다. 퇴근 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루프탑 바 대신 친구들과 맛집을 찾고, 익숙한 사람들과 익숙한 대화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 결국 장소가 달라져도 사람 사는 모양은 크게 다르지 않다.
싱가포르에서도 나는, 생각보다 잘,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