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끝을 찌르던 낯선 향기가 기다려지기까지
2017년 5월 말, 혼자 떠났던 베트남 여행의 끝자락, 나는 출국 심사대 앞에서 무심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금기된 행동이라는 걸 알면서도 왜 그랬는지 모를 일이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제복을 입은 직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향해 엄중히 경고를 날렸다.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서늘한 위압감과 '나는 여기서 철저한 외국인'이라는 자각이 뒤섞여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가까스로 통과했지만, 비행기에 오르는 내내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식은땀이 바짝 났다.
비행기가 창이공항에 착륙하고 문이 열리는 순간,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건 싱가포르 특유의 습하고 따뜻한 공기다. 예전에는 숨을 턱 막히게 하던 그 열기가, 그날만큼은 나를 안아주는 온기로 다가왔다. 브릿지를 걸어 나오며 코끝에 스치는 창이공항만의 은은한 향기, 그리고 발바닥에 닿는 폭신하고 익숙한 패턴의 카펫. 그제야 팽팽하게 당겨졌던 긴장의 끈이 툭 하고 풀렸다.
"이제 집에 왔구나"
한국에서는 '싱가포르에서 온 사람'으로, 싱가포르 시내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가지만, 이 공항의 카펫을 밟는 순간만큼은 내가 이 세계의 일원이라는 확신이 든다. 자동 심사대를 거치고, 익숙하게 그랩을 불러 향하는 발걸음. 낯선 타국에서 겪은 공포를 씻어내 준 건 당시엔 산지 1년 남짓 된 이방인으로 살고 있는 이 도시의 공항이었다.
창이공항의 독특한 향기는 처음엔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젠 나에게 안도감을 주는 향 중에 하나이다. 어쩌면 너무 강해서 어지러웠던, 처음에는 이게 뭐야 라고 생각하던 그런 생각조차 그 베트남 여행의 무서움을 씻어준 날을 계기로 내게는 너무나 친숙하고 기다려지는 향이 되었다.
지금은 더 그렇다. 싱가포르 국민, 싱가포르 영주권자와 더불어 장기 체류자는 여권이 없어도 입국과 출국 심사가 가능하다. 나는 흠흠 거리면서 고개를 살짝 치켜든 채로 관광객들 사이를 빠르게 지나 심사대를 통과한다.
특히나 한동안은 한국 집에 가있어도 나는 싱가포르의 내 방이 그리웠다. 내 침대, 내 이불, 익숙한 에어컨 바람이 그리웠다. 창이공항에 착륙하자마자 바로 향하는 그곳말이다. 물론 아이러니하게 10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푹 쉬는 건 한국 집에 있을 때인 것 같다. 싱가포르에서는 정말 일만 하는 느낌이랄까. 이건 최근에서야 느낀 감정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한국에서보다 싱가포르에서 쉬는 게 너무나 좋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착륙하는 그 순간, 브릿지로 향하는 그 순간은 너무나 마음이 놓인다. 나를 지켜줄 것만 같은 그런 공간이다. 물론 아직도 나는 싱가포르에서 일하는 장기 체류자는 외국인 노동자인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말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내 핸드폰도 이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찍은 사진들을 내 핸드폰은 자동으로 ‘여행’ 카테고리에 분류해 저장한다. 내 기기에게 싱가포르는 ‘집’이고, 한국은 ‘여행지’인 셈이다. 아마 내 핸드폰조차 창이공항에 발을 내딛는 순간, 안도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10년이라는 세월이 나에게 준 것은 거창한 성공이 아니었다. 낯선 도시의 풍경이 더 이상 나를 긴장시키지 않는다는 것, 예상치 못한 위기 속에서 본능적으로 돌아갈 곳으로 이곳을 떠올린다는 것. 창이공항은 나에게 단순한 정거장이 아니다. 이방인으로서의 불안을 안도감으로 바꿔주는, 나의 또다른 일상이 시작되는 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