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레인지만큼은 허락하지 않은 나의 10년, 그리고 투숙객의 생활
싱가포르에 살며 가장 많이 나를 지배해 온 생각은 ‘언젠가 이곳을 떠나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예감이었다. 나에게 이 도시는 영원히 머물 정착지가 아니라, 어쩌다 보니 오게 된, 오직 일을 하기 위해 머무는 국가였다. 그랬기에 나는 최대한 짐을 늘리지 않는 방식을 고수했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 집에 밥솥조차 두지 않았던 것은, 이삿짐 박스 하나라도 줄이는 것이 언젠가 떠날 사람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가전제품은 생활의 편의이기보다, 떠날 때 버리고 가야 할 무거운 낭비였다.
그 단단했던 결심도 팬데믹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외출이 금지되자 결국 생존을 위해 밥솥을 들였고, 한참의 고민 끝에 에어프라이어를 들였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짐은 조금씩 불어났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사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전자레인지다. 이것만큼은 절대 사지 않겠다는 고집은, 내가 여전히 이곳을 언젠가 떠날 것이라는 마음의 마지막 보루다. 전자레인지는 분명 편리하겠지만, 나에게는 그 부피와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정착의 무게’로 느껴진다. 나는 여전히 습관처럼 물건을 비워낸다.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지체 없이 짐을 꾸릴 수 있도록 삶의 무게를 가볍게 유지하는 것. 그것이 이곳에서 10년을 버틴 나만의 방식이다.
짐을 비워내며 가볍게 살아가지만, 정작 내 마음의 허기는 싱가포르의 화려한 풍경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살다 보니 확실해졌다. 나는 일자로 쭉 뻗은 길과 거대한 쇼핑몰로 가득 찬 ‘계획도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디를 가도 똑같은 체인점과 브랜드가 늘어선 거리는 지나치게 차갑고 건조하다. 그런 풍경은 쇼핑몰 하나로 족하다.
내가 진짜 사랑하는 건 길을 잃어도 좋을 만큼 좁은 골목, 그 사이사이에 숨겨진 아기자기한 가게들이다. 세련된 신시가지 너머로 사람 냄새나는 옛 골목이 공존하는 풍경. 계획된 완벽함보다는 우연히 발견한 소소한 취향들이 나의 감성을 채운다. 무채색의 계획도시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나는 끊임없이 나만의 '아기자기한 구석'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어쩌면 이런 갈증 때문에 나는 아직도 이곳에 온전히 정을 붙이지 못한 채 한국만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기자기함을 찾아 나는 늘 한국과 일본 여행만을 바란다. 싱가포르에 산다고 해서 주변 동남아 국가들에 큰 관심이 생기지도 않았다. 남들은 동남아 곳곳을 섭렵하고 발리에서 서핑을 즐긴다지만, 나에게 방콕 같은 도시들은 그저 아기자기함 없이 매연 가득한 복잡한 공간일 뿐이다.
오랜만에 한국 부모님 댁에 머물 때면, 아빠는 나를 향해 툭 한마디 던지신다.
“너는 여기 투숙객이니?”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는 딸을 향한 가벼운 농담이었겠지만, 나는 그 말에 한참을 멈칫했다. 나는 누구인가. 이곳의 거주자인가, 아니면 방문한 투숙객인가. 싱가포르에서도, 한국에서도 나는 뾰족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투숙객’이라는 단어가 묘하게 더 정확하게 느껴졌다.
10년이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정착과 떠남, 그 사이의 경계 위에 서 있다. 짐을 줄이며 떠날 날을 꿈꾸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마음 덕분에 10년을 머무를 수 있었다. 완벽히 속하지 않았기에 지키고 있는 나의 취향, 그리고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감각. 나는 오늘도 그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서 투숙객처럼, 그러나 나답게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