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때 버릴 물건들 사이에서, 내가 유일하게 챙길 진짜 짐
“나는 언제까지 싱가포르에 살까? 혹은 언제까지 해외에서 살 수 있을까?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일까?”
최근 2년여의 시간은 이 질문들과의 사투였다. 싱가포르에서의 삶은 때로 즐겁고 안온한 보금자리 같다가도,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그저 일을 하기 위해 머무는 차가운 공간처럼 느껴졌다. 물론 이런 경험은 인생에서 너무나 특별한 순간들이지만,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평생 타국에서 사는 것이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혹은 어디에 정착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가끔은 생각보다 더디게 풀리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도망치고 싶어 하는 내 안의 감정이 있었다는 것도 이제는 솔직히 인정해야겠다.
그러다 깨달았다. 언젠가 이 삶이 정말 추억이 되는 날, 나를 독립적으로 성장시키고 세상을 보다 넓게 보게 해준 이 치열한 ‘훈련장’에서의 시간을 기록하지 않는다면, 그건 나 자신에게 너무나 미안한 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사실 나는 매년 12월 31일과 1월 1일이면 싱가포르에서 찍어둔 사진들을 한 장씩 넘겨보며 한 해를 정리하곤 했다. 다이어리를 꾸준히 쓰지도, 블로그를 열심히 하지도 않았지만, 사진첩을 넘기는 그 시간만큼은 나만의 은밀하고 소중한 기록의 의식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은 그조차 하지 않았다. 삶이 너무 치열해서, 혹은 너무 익숙해져서 더 이상 기록할 게 없다고 느꼈던 지독한 권태기였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뒤돌아봤을 때, 기록되지 않은 나의 20대와 30대가 형체도 없이 휘발되고 있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가뜩이나 계절 감각이 희미한 이 나라에서, 뒤죽박죽 엉킨 기억들이 그대로 사라지는 것은 너무나 잔혹한 일이었다. 비록 인플루언서들처럼 화려한 성공담은 아닐지라도, 경계인으로서 흔들리며 버티고 이겨낸 그 시간 자체에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사소한 감각이 깨어나는 찰나의 순간들을 붙잡고 싶었다.
이 10년의 시간은 나를 조용히 바꾸어 놓았다. 얼마 전 인천공항 라운지에서 싱가포르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베지테리언 메뉴가 없어 곤혹스러워하는 외국인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던 일, 친구들과 모이기 전 고기 종류를 확인하는 것이 당연해진 습관, 그리고 이제는 상대에게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라는 단어 대신 ‘파트너’ 혹은 '만나는 상대'가 있는지를 먼저 묻게 된 나의 변화들까지. 멜팅팟인 싱가포르에서 스스로 부딪히며 배운 이 배려와 다원성의 감각은 한국에만 있었다면 결코 몰랐을 소중한 가치였다. 지루하다고 투덜거렸던 싱가포르의 일상이 사실은 내 삶의 지평을 이토록 넓혀놓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내가 싱가포르를 떠나게 된다면 나는 많은 것을 이곳에 두고 갈 것이다. 미루고 미루다 코로나로 겨우 장만했던 밥솥도, 끝내 허락하지 않았던 전자레인지도 모두 버려질 소모품일 뿐이다. 하지만 이 기록만큼은 다르다. 떠날 때 버리고 갈 수많은 물건들 사이에서, 이 글은 내가 유일하게 가지고 떠날 수 있는 ‘나의 진짜 짐’이 될 것이다. 혹은 이 기록들은 싱가포르에서 삶을 이어나갈 나를 단단히 지탱해주는 자양분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