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1년 차의 도망과 10년 차의 체류

이직 원서와 신년 운세 사이

by 네온


싱가포르에 도착한 날부터 나의 블로그 기록은 꽤 부지런히 지속되었다. 낯선 땅에서의 매일이 소중했기에, 다이어리 한 권 끝까지 써본 적 없는 내가 열정을 다해 일상을 박제해 나갔다. 하지만 그 매일의 기록은 2016년, 온 지 141일째 되는 날을 기점으로 뚝 끊겼다. 그 뒤로 1년에 두어 번은 꼭 오랜만에 블로그라며 기록을 남겨놓긴 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공백을 확인하려 메일함을 뒤져보았다. 블로그 기록이 멈추기 직전부터 나는 이미 이직을 알아보고 있었다. 메일함에는 당시 헤드헌터들과 주고받았던 연락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처음에는 싱가포르 내에서의 이직을 꿈꿨던 모양이다. 온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아 나는 이미 당시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했고, 또 다른 '탈출구'를 찾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반년이 지났을 때, 나의 목표는 '한국으로의 회귀'로 바뀌어 있었다. 싱가포르가 ‘한국과 달라서’ 싫었고, 그 다름은 매일같이 나를 할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몇몇 면접 현장들이 있다. 그때 마주한 한국 면접관들의 눈빛은 의심스럽거나, 혹은 해외 거주자인 나를 아니꼽게 보는 듯한 시선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회사에서는 팀원 90%가 감축되는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의지하던 동료들은 모두 떠났고, 나는 섬처럼 혼자 남겨졌다. 그때부터 나는 스스로를 가두기 시작했다. 회사와 집, 두 군데만을 기계적으로 오가며 마음의 문을 닫았다. 한국에 가고 싶어 몸부림치던 시기는 지났고, 모든 것을 내려놓았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의욕이 생기지도 않는 기묘한 정체기였다.


나는 운세 보는 것을 좋아한다. 전적으로 맹신하기보다 나쁜 기운이 있다면 조심하고, 좋은 이야기가 나오면 그것을 동력 삼아 노력해 보는 편이다. 답답한 일이 있을 땐 상담사를 찾듯 사주가를 찾기도 했다. 대학 시절부터 친구들과 신년운세를 보는 것은 연례행사였다. 물론, 그 어떤 용한 곳에서도 내가 싱가포르에서 10년을 살게 될 것이라 예언한 곳은 없었다.


싱가포르 생활을 지속하면서도 설날에 한국에 들어가면 어김없이 친구들과 운세를 보러 다녔다. 당시 내가 느꼈던 갈증은 아마도 무력감이나 지루함이었던 것 같다. 나는 싱가포르에 너무 빠르게 적응해 버렸다. 처음 왔을 때 관광지를 구경하러 다닐 동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싱가포르에 오래 거주한 동료들 틈에서 나는 스르륵 일상에 녹아들었지만, 그만큼 '여행자'로서의 설렘도 빠르게 식어버렸다. 한국에서 번화가와 유행하는 상점을 구경하는 게 낙이었던 나에게 싱가포르의 일상은 금방 시시해졌고, 나는 끊임없이 탈출을 꿈꿨다.


2017년의 어느 날도 나는 운세를 봤다. 상담가는 곧 원하는 대로 이직이 되고 다 잘 풀릴 것이라 호언장담했다. 2018년을 맞이하면서도 상담사는 “곧 좋아진다”며 내 손에 희망을 쥐여주었다. 하지만 웬걸, 그해에 내 삶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희망이라는 단어 하나를 붙잡고 달렸던 막판까지, 삶은 지독하리만큼 고요했다.


2019년의 어느 날, 나는 블로그에 꽤 비장한 선언을 남기기도 했다. “이제 신년 운세는 보지 않겠다. 내 갈 길 가기로 했다.” 누군가의 예언에 기대기보다 스스로 일어서겠다는, 20대 끝자락의 꽤 멋진 다짐이었다. 그러나 그 결심이 무색하게 나는 그 뒤로도 매해 꼬박꼬박 신년 운세를 보고 있다. “올해는 진짜 한국에 가나요?” 혹은 “올해는 이직이 될까요?” 같은 질문들을 가슴에 품고서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그 ‘틀린 운세’들은 내가 가장 절망적이었던 순간에 “조금만 더 버티면 나아질 것”이라는 가느다란 희망의 끈이 되어주었다. 만약 그때 누군가가 “당신은 절대로 이직할 수 없어요. 한국으로도 영영 돌아갈 수 없을 겁니다”라고 차갑게 예언했다면, 나는 일찌감치 절망하며 짐을 쌌을지도 모른다. 틀린 예언이 주는 근거 없는 희망으로 하루를 더 버텼고,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보니 어느덧 나는 세 번째 직장을 거쳐 싱가포르 거주 10년 차를 맞이하고 있다.


이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나는 지루함과 외로움을 과자로 달래며 살이 찌기도 했고, 한국에 전화를 걸어 부모님께 짜증을 쏟아내기도 했다. 특히 코로나 시절에는 엄격한 통제 아래 말 한마디 나눌 사람 없이 좁은 보금자리에서 홀로 견뎌야 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싱가포르 생활에 영원히 만족하지도, 그렇다고 영원히 불만족하지도 않은 채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나가고 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으면서도 이곳에 차려진 삶의 터전을 무너뜨릴 용기가 없고, 이곳에 완전히 뿌리를 내리자니 여전히 한국에 두고 온 내 마음이 신경 쓰인다.


나는 여전히 그 어느 쪽도 온전히 내 땅이라 부르지 못한 채, 어느 쪽도 아닌 그 모호한 경계 위에서 나만의 일상을 꾸려 나가고 있다.


KakaoTalk_20260104_035737794_02.jpg 설렘은 식고, 일상이 되어버린 싱가포르의 어느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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