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함이 기회가 되는 순간에 대하여
인생의 방향은 때로 거실 소파 위에서 던져진 무심한 한마디로 결정되기도 한다.
"나는 내 딸이 해외에서 근무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
신촌에서 서대문으로 출근하며 박봉과 긴 근무시간에 지쳐가던 무렵, 아빠가 넌지시 건넨 그 말은 내 안의 기폭제가 되었다. 늘 정해진 틀 안에서 성실하게 살아오신 아빠였지만, 한편으론 딸이 넓은 세상에서 외화를 벌며 원대한 꿈을 펼치길 바라셨던 모양이다. 그 길로 나는 해외 채용 공고를 뒤지기 시작했고, 화상 면접이라는, 2016년 당시 나에겐 아직 생소한 관문을 거쳐 말레이시아에 있는 글로벌 IT 기업에 합격했다.
하지만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입사를 코앞에 두고 들려온 '채용 동결' 소식. 1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에 나의 말레이시아 드림은 부질없이 흩어졌다. 홍콩과 말레이시아를 다시 기웃거리며 취업전선을 떠돌던 어느 날, 운명처럼 싱가포르의 채용 공고를 만났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원래 입사하기로 했던 누군가가 비자 문제로 취소되면서 급하게 빈자리가 난 것이었다. 누군가의 불운이 나에게는 유일한 비상구가 되었다. 비자는 빛의 속도로 나왔고,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딱 두 가지였다. 열흘 뒤 입사할 것인가, 아니면 일주일의 시간을 더 벌 것인가.
나는 미련하게도, 혹은 용감하게도 전자를 택했다. 싱가포르에는 친구도, 먼 친척도, 그 흔한 지인 한 명 살고 있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그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사실 나는 해외여행은 꽤나 다녀봤었지만, 어학연수나 교환학생 같은 그 흔한 해외 살이 경험조차 전무한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땅으로 떠나겠다고 결심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유례없는 무모함이었다.
떠나기 전날, 역 근처 체인 카페에서 대학 친구를 만났다. 그리 대단한 단짝도 아니었기에 우리는 짧은 커피 한 잔으로 작별을 대신했다. 내 결정을 들은 친구는 덤덤하게, 그러나 뼈 있는 말을 두어 번 던졌다.
"해외에 사는 거, 네 생각만큼 그렇게 환상적이지 않아."
그때는 그 말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다를 거야'라는 치기 어린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집 앞 이마트로 향해 커다란 이민 가방 하나와 가벼운 천 트렁크 하나를 샀다. 자취방 물건들과 아끼던 구두들, 심지어 욕실 바구니까지 좁은 틈새에 욱여넣으며 사흘 만에 내 이십 대의 생생한 조각들을 트렁크 두 개에 압축해 넣었다.
아빠가 끊어준 비즈니스 티켓 덕분에 이동은 편안했지만, 도착하자마자 마주한 현실은 친구의 예언대로 전혀 환상적이지 않았다. 호커센터의 낯선 소음, "아이야!"라며 혀를 차던 아주머니의 시선, 그리고 쇼핑몰 의자에서 엄마 목소리를 듣자마자 터져 나온 눈물까지. 준비되지 않은 이방인에게 싱가포르는 그저 뜨겁고 습한, 살아내야 하는 '현장'일뿐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때 이마트에서 산 그 가벼운 천 트렁크와 이민 가방은 여전히 내 옷장 한편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이제야 나는 그때 카페에서 친구가 했던 말을 온전히 이해한다. 해외 생활은 환상이 아니라, 낯선 네온사인 아래에서 매일매일 나를 증명하며 버텨내는 일상이라는 것을.
무계획이 일상이 되기까지,
나의 10년은 그 이마트 가방의 지퍼를 채우던 그 무모한 사흘로부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