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환상을 한 방에 깨주겠다.
나도 사회복지사는 어려운 사람만 진심으로 도와주면
장땡이라고 생각했었다.
08:40.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출근했고,
커피를 갈기 위해 탕비실로 향했다.
이미 출근한 직원들이 여럿 모여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한마디 한다.
“탕비실에 큰 종이컵이 없어. 얼른 좀 채워줘”
“우리 부서는 왜 노란 믹스커피 밖에 없어.
유자차, 율무차, 오미자차 다양하게 좀 사주세요”
나는 사회복지사였고,
동시에 직장 ‘서무’였다.
‘서무’란 다른 말로 ‘총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사회복지사의 고유 업무가 있었지만,
동시에 직장 내 여러 일들을 처리해야 한다.
사무실 돈 관리부터 작은 종이컵과 믹스커피 구입 등
운영에 필요한 온갖 일들을 도맡아 한다.
한 마디로 엄.마.
도대체 시커먼 남자가
왜 서무가 되었는지는 나도 의문이다.
사실 엄마라 읽고 잡부라 부르고 싶다.
집에서 엄마가 밥을 지어 먹이듯,
나는 직원들에게 카드를 나눠준다.
“식사는 9,000원까지만 가능해요.”
“여기 앞 식당 몇 군데만
장부 달아놨으니 거기만 가세요!”
18:40.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겨 가정방문을 다녀왔다.
내 책상 위에는 영수증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영수증은 하얀 눈송이처럼 내 가슴에 내려앉았다.
조용히 자리에 앉아 퇴근 가방 대신
풀테이프를 꺼내 들었다.
드르륵, 드르륵 한 장씩 A4용지에 붙이고 있다.
가슴에 쌓인 눈덩이를 청소하는 심정으로
테이프질을 해본다.
마지막 영수증을 붙이고는 드디어 퇴근 가방을 멨다.
문을 나서는 순간 뒤통수에 꽂히는 한마디.
"뭐야. 탕비실에 아직도 종이컵이 없어!!!"
중학생 시절,
왜 아직도 내가 아끼는 옷은 안 빨아줬냐는 투정에
멈칫하던 엄마의 뒷모습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