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 대신 욕 한 사발 먹어봅니다.

욕먹는 사회복지사 이야기

by 밤결



나는... 가끔 욕을 먹는다.

욕을 먹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내가 좋다.


우리는 가끔 욕을 먹는다.

그게 비단 일을 잘하고 못하는 것에

기인한 것은 아니다.


먹어도 기분 나쁘지 않은 욕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우리 사무실에는 다나 말고도

급여를 맡겨 놓는 사람들이 몇 있다.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되는 손님도 있고,

몸이 불편해 생필품을 사서 줘야 할 손님도 있다.

그중 어떤 할머니에게는 특별한 이유가 하나 있었다.


그 할머니는 영구임대아파트의 보증금을

마련해야 하는 손님이었다.


300만 원의 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

월 40만 원의 기초생활수급비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거기다가 몸도 불편했는데,

늘 이상한 할아버지가 따라붙어 있었다.

너무나 신경 쓰이는 사람.



“선생님, 오늘 만 원 더 줘. 나 냉면 사 먹게. 냉면 먹고 싶어.”


할머니는 오늘도 냉면을 한 그릇 먹고 싶다고 했다. 이번 주에만 벌써 세 번째다.


사실 내 돈도 아닌데,

만 원 더 주는 게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영구임대아파트는 삶의 질이 달라지는 문제다.


“할머니, 안 돼요. 벌써 이번 주에만 생활비 6만 원에 냉면 먹는다고 2만 원 더 가져가셨잖아요. 이렇게 하면 돈 못 모아요. 우리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요.”


진짜 미안했다.

더운 여름에 냉면 한 그릇 먹는 게 무슨 사치인가.


하지만 나는 월급 받는 직장인.

마음보다는 머리로 움직이기로 했다. 오늘의 일은 철저히 숫자로만 생각하기로 했다.


“아... 나 진짜 오늘 냉면이 먹고 싶어. 남자친구가 먹고 싶대! 오늘 제발, 제발 만 원만 줘. 오늘 만 원 가져가야 해.”


입구에 기다리고 있는 할저씨(할아버지+아저씨)가 보였다. 아무리 봐도 할머니보다 15살은 어려 보였다.

게다가 이쪽을 계속 힐끔거리고 있다.


'이건 안 된다. 지금 돈을 주면 저 할저씨가 가져간다. 무조건이다.'


“진짜 죄송해요. 오늘은 그만 돌아가세요.”


아 진짜 나 오늘 가져가야 해! 만 원 줘. 부탁해.”


할머니도 포기할 줄 몰랐다. 슬쩍 바라보니 할머니보다 저쪽에서 이쪽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아저씨가 신경 쓰였다.




때 변수가 발생했다.

옆 팀 여직원이 대화에 난입했다.


“아니 할머니 너무 안 됐는데, 오늘 그냥 많이 주시면 안 돼요?”


잠시 고민이 됐다.

‘옆에서 보기에도 조금 그런가.’, ‘내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고 있나?’ 하는 생각 했다.


“할머니, 오늘 꼭 만 원 가져가셔야 하죠? 근데 이번 주에 벌써 2번 받아 가셨다면서요. 제가 얘기해 볼게요.”


그때였다. 할머니의 표정이 차게 변했다.

여직원을 한 번 노려보더니

더욱 차가운 말투로 한 마디를 뱉어냈다.



“꺼져, 이 년아. 왜 끼어들고 지랄이야 지랄이.”

이후로도 한참 이어지는 속사포 랩 같은 욕.


아... 내 예상이 맞았구나.

깜빡 속을 뻔했다.


할머니의 욕을 들은 여직원이 머쓱해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한바탕 욕을 쏟아낸 할머니가 더 머쓱해했다는 것이다.


“알았어. 다음에 올게. 다음에 냉면 먹고 싶을 때 올게 그때는 꼭 만 원 더 줘야 해.”


할머니는 순순히 돌아섰다.

입구에 기다리던 할저씨는 이미 등을 돌려 섰다.


다음에 할머니가 오면 조금 더 상담을 꼼꼼히 해야겠다고, 가정방문을 한 번 나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바탕 욕을 먹은 여직원은 이미 탕비실에 있었다.


“정말 고마워요. 덕분에 금방 가셨어요. 오늘은 돈 드려봤자 어떤 아저씨가 뺏어갈 것 같았거든요.”


오늘 욕은 먹었지만, 소중한 만 원을 지켜냈다.


머쓱해하던 할머니의 뒷모습과 탕비실 직원의 뒷모습 겹쳐 보였다.


"와, 저 진짜 무슨 죽을죄 지은 줄 알았네요..."


냉면은 못 먹었지만, 욕은 한 사발 먹은 날이었다.

그날 탕비실에서 웃음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