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 외국인 마을 이야기

Can you speak English?

by 밤결




“한국말 할 줄 아세요...? Can you speak English? 하... 미치겠네”


오늘의 손님은 누가 봐도 외국인인 흑인 모녀가족이다. 거기에 불통(不通)을 곁들인...




08:40.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에 출근하고 있는데,

저 멀리 문이 닫혀 있는 사무실 앞에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한 걸음, 두 걸음 가까워졌고 그들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괜히 하늘을 바라보고는 손을 들어 햇살을 막았다.


그렇게 무사히 옆을 지나가고 있는데 들리고야 말았다


“Excuse me!”


출근 시간의 선택이 잘못되었다.


내 뒤를 따라 들어오던 동료 직원들이 하나, 둘 자연스럽게 우리를 지나쳐 사무실로 무사 입성하였다.


‘하... 5분만 늦게 올 걸...’



우리 동네는 4단지로 불렸다. 왜 4단지인지는 모르고, 그냥 원래부터 4단지였다.


신도시 택지로 개발된 지 어언 20년이 넘었고, 상가건물이 늘어선 동네.


1층에는 술집, 지하층에는 노래방이 있고, 그 위로 원룸과 투룸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전형적인 상가건물 들이다. 열 걸음 걸을 때마다 노래방과 주점을 하나씩은 볼 수 있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도시와 상권이 개발되며 과거의 영광을 잃은 지 오래되었다. 젊음과 열기가 빠져나간 동네에는 새로운 물결이 휘몰아쳤으니, 바로 지금의 외국인 마을이다.

평지에서부터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 전부가 외국어 간판으로 도배되었다. 한국이었지만 내가 읽을 수 있는 글은 제한적이었다. 영어를 제외하고는 어디 나라 말인지도 알기 힘든 글자들이 적혀있었다. 그야말로 한국인 반, 외국인 반이었다.

그.래.서. 언젠간 이런 일이 한 번쯤은 일어날 줄 알았다. 그게 오늘, 나한테 닥칠 줄은 몰랐을 뿐.


누군가에게 닥칠 줄 알고 있던 미지의 공포가

그날 나를 덮쳐왔다.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려본다.


그리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던 그들을 드디어 마주 보았다. 그들은 엄마와 아이들이었다. 흑인이었다.


한 가지 특이했던 점은 더운 여름날 히잡을 둘러쓰고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아이가 둘러 싸맨 히잡이 눈길을 끌었다.

우선은 함께 사무실로 들어갔다.


“혹시 한국말 할 줄 아세요...? Do you speak English?”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사실 나도 영어로 말하는 게 너무 두렵다.

한국식 교육을 착실히 받아온 80년대생은

영어를 읽고 쓸 줄 알지만 말은 못 한다.


오죽하면 Do you speak English?를 꺼냈을까.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대치상태가 10분 넘게 이어졌다. 여기 찾아왔다는 건 분명 도와달라는 의미는 맞을 텐데...



아이들에겐 어느새 사무실 이모들이 모여들었다.

이모들이 건넨 과자와 초콜릿을 본 아이들은 처음에는 경계하는 듯 긴장한 표정이더니, 금세 새하얀 치아가 훤히 드러났다.


꺄르르, 웃음소리에 아이들을 돌아본 후

우리는 간신히 단어 하나를 건져냈다.


도움을 뜻하는 만국 공통의 단어. 단어라기보다는 하나의 기호가 되어버린 단어.


<S.O.S.>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니 역시 맞았나 보다.



때마침 이곳은 외국인마을. 온갖 사람들이 섞여사는 곳이었다. 평소 안면이 있던 러시아 빵집 사장님이 보여 도움을 요청했다.


"저도 어디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차라리 제가 아는 센터 선생님께 부탁드려 볼까요?"


왜 찾아왔는지도 알았겠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저 좀 도와주세요! S.O.S. 말고는 하나도 모르겠어요..."


"어디 분이신데요? 제가 같은 지역에서 온 분 좀 찾아볼게요"


"히잡을 쓰고 계시긴 한데...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알고 보니 그들은 예멘에서 온 난민이었다.

내전을 피해 여기까지 왔다는 사정을 듣고는, 순간 내가 방금 전까지 속으로 했던 생각들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부끄러움만으로 세상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여전히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우리가 서로 알아들은 건 고작 S.O.S. 하나뿐이었다.


그래도 일은 해결됐다.


러시아 빵가게 사장님이 돕고, 센터 선생님이 돕고, 사무실 이모들이 과자를 건네고, 아이들이 웃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곳은 그런 곳이었다. 서로 다른 국적과 생활방식과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끼리 한 데 어우러져 어떻게든 살아가는 곳. 외국인 마을.


그날 이후 낯설었던 외국인마을이 조금은 친숙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