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 아닙니다' 시리즈의 시작

내 라면 맡겨둔 거 주세요

by 밤결





<천사 아닙니다, 월급 받습니다.> 시리즈의

시작을 함께 해주셨던 그분의 얘기를 꺼내보도록 하자.


내 직장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 Top 3 안에 드는 인물이다.


"왜 시커먼 남자가 여기 있어. 사회복지는 여자가 해야지. 내가 지금 힘들다고, 도와달라고!

사회복지사면 힘든 얘기 듣고 같이 슬퍼해야지!"


이 얘기도,


"아니 말투가 왜 그래요? 건달이야? 깡패야?

무서워서 상담을 할 수가 없네 이거!!!"


이 얘기도,


모두 한 사람의 입을 통해 탄생했다.

물론 세세한 이야기는 약간은 각색이 되었을 수는 있다. 원래 역사란 그렇게 쓰이는 것이니까.




시작은 라면이었다.


내가 담당하는 지역이 바뀐 첫날이었다.

어떤 한 남자가 찾아왔다. 생글생글 웃는 표정으로.


"저기, 새로 오셨나 봐요? 전 담당자가 제 앞으로 남겨 둔 라면이 한 박스 있어요. 들으셨어요?"


"아,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후원물품은 저희가 순서대로 드리고 있어요. 제가 확인해볼게요."


그러자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하는 손님.


"아니요. 맡겨놨다니까요. 제건데 명단을 왜 찾아요. 주시면 돼요."


"지금 담당자는 저예요. 확인 후 드릴 수 있어요."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우리의 첫 만남은 2분 남짓의 짧은 대화가 전부였다.




잠시 후 그는 중년여성과 다시 찾아왔다.


하지만 목적지는 내가 아니었다.

나를 패싱 하더니 그대로 팀장에게 직행했다.


장군님으로 불리던 우리 팀장님,

사근사근 웃는 얼굴로 헤어지는 것을 멀리서 지켜봤다.


"네가 너무 불친절하대. 직원 교육 좀 시켜달라더라. 그냥 알겠다고 하고 보냈어."


...?

2분 남짓의 시간 동안 상담 이랄게 없는 대화였는데...?





다음날이었다.


"인터넷으로 불친절 민원 접수 됐는데,

내용이 이상해요, 주무관님."


사회복지사가 건달 같은 태도로 상담을 하였습니다. 인상을 쓰며 질문에 답을 하지도 않고 윽박질렀습니다. 조치가 필요해 보입니다.


정작 화가 난 쪽은 팀장님이었다.


"어제 그렇게 나한테 와서 들어주셔 감사하다고 하고 갔는데, 2시간 뒤에 민원을 올렸어?"


오히려 내가 화를 낼 타이밍을 놓쳤다.

더 화가 나는 일은 그다음이었다.

과장님의 호출.


"자네가 그냥 전화해서 사과 한 번하면 되잖아. 일 크게 만들지 말고."


지금 사람 도와주는 사람이 졸지에 건달이 되었는데, 이것보다 커진 일이 뭐가 있는지...?


"저는 잘못이 없습니다. 일단 답변 올리겠습니다."


문을 박차고 나왔다.

분노의 키보드로 글자를 한 자 한 자 꾹 눌러썼다. 팀장이 불러 잠시 손가락을 멈췄다.


"나도 어제 다 들었는데, 잘못한 거 없잖아. 기다려보자."



그 말을 하는 중 들리는 목소리.


"주무관님, 같은 민원 하나 추가요."


오늘은 금요일. 주말이 지나는 동안 총 세 건의 인터넷 민원이 접수되었다. 같은 사람, 라면남으로부터.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기관의 태도가 원래 이런가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조현병을 앓던 사람입니다. 제 병이 더 심해지면 책임 지실 건가요? 그 직원 해고하지 않으면 민원 계속 올릴 겁니다.


민원의 답변기한은 14일.

줄다리기는 이미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