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갈아넣지 않겠습니다
주말이 지나는 동안
총 세 건의 인터넷 민원이 접수 되었다.
같은 사람, 라면남으로부터.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기관의 태도가 원래 이런가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조현병을 앓던 사람입니다. 제 병이 더 심해지면 책임 지실건가요? 그 직원 해고하지 않으면 민원 계속 올릴 겁니다.
민원의 답변기한은 14일.
줄다리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월요일 오후, 주말에 추가된 3건의 민원까지 총 5건의 민원이 쌓여있었다.
하... 아침부터 탕비실에 자리를 잡았다.
그라인더에 커피콩을 넣고 드르륵 갈아내기 시작했다.
"주무관님, 그냥 전화 한 번하고
끝내는게 깔끔하지 않아요?"
"그래요. 라면 한 박스 얼마 하지도 않는데.
스트레스 받잖아요."
... 옛말에 옆에서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했던가. 물론 다 내가 걱정되어 하는 말인 것은 나도 잘 안다.
하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어디서 소문이 났는지,
이미 안면이 있는 손님들이
아침부터 와서 한 마디씩 하던 참이었다.
라면남은 손님들 사이에서
'인터넷 청년'이라 불리고 있었다.
이미 유명인사였던 모양이다.
그들이 말하기를,
인터넷 청년이 담당자가 쫓겨나게 생겼다고 떠벌리고 다녔다고 했다. 그래서 걱정이 되어 찾아왔다고 했다.
그중 '만두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한참을 걱정을 쏟아내기도 했다.
마지막에 올라온 인터넷 민원 글의 내용도 문제였다.
담당자 교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작년부터 건달같은 태도로 일을 하였고, 우리 아파트에서만 세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아니, 나는 지금 담당을 맡은 지
주말을 포함하여 고작 4일 밖에 되지 않았는데...?
작년에 내 상담 태도 때문에
3명이 생을 달리했다는 내용이었다.
지금 전화를 하면 저기 적힌 허위사실이
내 탓이라는 것을 시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민원내용을 보고는,
은근히 먼저 사과하기를 강요하던 부서장의 마음이 돌아섰다는 것이다.
팀장은 분개하기에 이르렀다.
"저는 절대 사과 못 합니다. 민원 종결처리하겠습니다."
나는 선언하듯 뱉어냈다.
동일 민원이 2건 이상 반복될 경우에는
내부 지침에 따라 종결처리가 가능했다.
형식적인 답변을 적어 올리고는,
이후의 답변에는 이전 민원의 답변과 같다는 내용을 반복해 적어냈다.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는 순간부터
말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퇴근 무렵이 되면,
뻥 뚫려 텅 비어버린 마음에
하루치의 원망과 한숨과 설움이 고스란히 쌓여있었다.
그때부터는 사람들을 이름이 아닌
번호로 부르기 시작했다.
사무실에서 아침, 저녁으로
커피를 갈아먹는 습관이 생긴 것은 이때부터였다.
탕비실은 그나마 사무실에서
숨을 쉴 수 있는 도피처였다.
나는 사회복지사이기 보다,
월급 받는 직장인임을 자처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라면남은 어떻게 됐을까.
종결처리된 짧은 답변에 화가 난 라면남은
자필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수신처는 대통령실, 대통령 비서실, 국무총리실을 넘어 자치단체장, 감사실 등등.
결국 그 모든 자필편지는 나에게 접수된다.
나를 규탄하는 거짓된 편지에,
나는 또 종결처리된 답변 내용을
정성스레 타이핑해 출력하고는
손수 등기우편으로 발송해드렸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라면남과 그 엄마가 사무실에 찾아왔다.
인터넷 민원이 14건, 편지까지 합쳐서 총 20건이 넘는 대화를 주고 받은 후였다.
드디어 얼굴을 마주했다.
고작 한 번 본 얼굴도 가물가물 하던 찰나였다.
손님이 먼저 말을 건넸다. 사람 좋은 웃음을 띈 채.
"아이고, 저희 모르세요? 저희 ㅇㅇㅇ에요."
나는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 보고 화해하고 싶었는데,
도통 연락이 안 되어 찾아왔어요."
그 말에 무언가 툭 끊기며 말둑이 터졌다.
"그동안 20번도 넘게 답변 드렸는데.
저 때문에 작년에 세 명이 죽었다면서요.
제가 건달같이 보인다면서요.
사람 거짓말로 살인자 만들어 놓고,
와서 왜 사과 안하냐고 말씀 하시는거에요?"
"아니, 그게 아니고... 우리도 그러려고 한 게 아니고. 화가 나 두서없이 쓰다보니. 미안해요. 이해해주세요."
"제가 전화라도 한 통 했으면
그 거짓말 인정하는 꼴밖에 더 돼요?"
그리고는 그들이 직접 적어쓴 편지를 서랍에서 꺼내
책상 위로 우수수 쏟아냈다.
그 편지를 보던 여자손님은 민망했는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딴소리를 했다.
라면남은 딴 곳을 보며 말이 없었다.
"우리 아들이랑 나이가 비슷해보이는데 몇 살이에요? 나중에 결혼할 때 꼭 청첩장 주세요."
... 내가 왜 ...
잠시의 대치 후 우리 장군님,
팀장님이 일어나 중재를 했다.
"자, 아주머니도 속상해서 그러셨던 것 저희도 알았습니다. 다음부턴 와서 말로 하세요. 인터넷으로는 해결 될 것이 없습니다."
결국 그들은 어색한 웃음을 남기고 떠났다.
약간의 승리감과 더 커다란 허무함을
가슴에 남겨둔 채 말이다.
나는 결국... 그날도 탕비실에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