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보 사회복지사 이야기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가장 빛나고 때 묻지 않았던 그 시절.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사랑의 전도사였었다.
과거형은 두 번이나 사용해 보았다.
'이었다'에 '었'을 한 번 더 써서
정말 단절된 과거를 표현하고 싶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는
사랑의 전도 사였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월급 받는 직장인이지만.
사회복지사는 여러 단계를 거쳐 진화한다.
첫 번째, 내 작은 손길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란 희망에 가득 차있는 신규 시절이다.
마치 사랑의 큐피드처럼.
어느 날은 긴 통화 끝에 수화기를 내려놓았는데, 별안간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봤더니...
신규직원이었다.
그녀는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었는데,
한부모가정과 상담할 때면 여지없이 눈물을 흘렸다.
팀원들은 그녀를 부러워했고, 그녀는 부끄러워했다.
두 번째, 공감과 감정, 이성과 권한 사이에서 괴리를 느끼는 단계이다.
마치 덕질하던 학생이
먹고살기 바쁜 성인이 되었을 때처럼.
신규직원은 여느 때처럼 15분, 20분 성심을 다해 이야기를 들었고 공감을 하고 함께 울었다.
마침내 20분 뒤, 민원인은 말한다.
"... 그래서 저 너무 힘든데, 지원받을 수 있나요? 지금 받는 돈으로는 아이 키우기가 너무 어려워요"
울던 그녀는 당황하며 말한다.
"아, 지금 민원인분은 전남편에게 양육비로 어느 정도 받고 계시기 때문에 지금 급여가 최대예요. 더 이상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래요? 근데 왜 자꾸 더 줄 수 있을 것처럼 말하는 거예요! 괜히 목만 아프게... 뚜뚜......"
벙쪄있는 그녀의 두 눈이 빨갛게 충혈돼 있었지만,
이미 눈물은 말라있었다.
세 번째, 모든 것을 의심하는 단계이다.
사람을 숫자와 데이터로 치환한다.
마치 형사에 빙의된 것처럼 팩트에 집착하게 된다.
그녀는 하소연을 들을 때
공감보다 해석에 집중하게 됐다.
이 사람은 무엇이 필요해서 저런 얘기를 길게 할까.
무슨 목적이 있을까란 생각으로 상담에 임했다.
더 이상 눈물은 보이지 않았고 상담시간은 짧아졌다.
그녀를 바라보는 팀원들 입엔 씁쓸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마지막으로, 드디어 월급 받는 직장인이 된다.
일은 일이요, 노동은 노동인 단계.
표면적으로는 남들을 돕고 있지만
그것 역시 노동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내게 남은 의미는 월급명세서뿐.
직장 내 기쁨, 보람, 슬픔을 모두 한 줌 원두에 담아 갈아버린다.
그렇게 그녀도 탕비실 죽순이가 되었다.
도를 닦는 심정으로.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이 글귀에서 모두와 누구를 사용한 것은
첫사랑이 그만큼 보편적인 감정이기 때문이다.
모두의 추억 속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순수한 감정.
지금은 월급 받는 직장인이지만,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사랑의 전도사였을 것이다.
아이의 가난이 놀림받는 세상,
파운드케이크를 꽉 쥐어 먹는 세상,
가족의 재결합이 제보가 되는 세상.
첫사랑을 떠올리며 눈을 감아보지만
씁쓸한 미소만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