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콜중독자의 둑은 한 방울에 무너지더라

내가 놓아버린 첫 번째 동아줄

by 밤결




알콜중독자가 쌓아 올린 둑이 술 한 방울에 허물어졌다.


볼펜이 위아래로 움직일 때마다,

손등에 검은 점이 비치는 듯하더니

이내 붉은 방울이 되어 쏟아져 내렸다.


손이 완전히 붉게 물들어갔고,

그 아저씨는 내가 놓아 버린 첫 번째 동아줄이 되었다.




서씨아저씨는 유명인사였다.


동네 편의점에서도, 슈퍼에서도, 산책길 정자에서도 틈만 나면 술을 마셨다. 안주 없이 깡소주를... 그것도 병나발로.


얼굴은 언제나 붉게 물들어 있었고 동네를 순찰 돌 듯 돌았다. 빙글빙글 도는 발걸음으로.


아저씨 혓바닥도 빙글 돌고 있었다.

"충셩! 선댕님... 나 와써.... 딸꾹, 차 한 잔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딸꾹." 나보다 족히 15살은 많을 것 같은 아저씨가...


"아우 술 냄새. 또 술 드셨어요? 대낮부터 이러고 다니다 큰 일 나요"

"나 배고파, 라면 좀 줘"


... 항상 이런 식이었다. 때마침 후원이 들어온 라면이 있어서 챙겨주면, 혀가 꼬인 소리로 "충셩!"을 외치고 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웬일로 취하지 않은 채 똑바로 걸어 사무실에 찾아왔다.


"선생님, 저 사는 게 너무 힘듭니다. 도와주세요. 사람답게 살고 싶습니다"


꼬이지 않은 혓바닥이 제법 진중한 결심을 뱉어냈다. 술톤의 붉은 얼굴이 어울리지 않아 보이기는 했지만.


당시 천사마인드가 충만했던 사랑의 전도사, 신입직원이었던 나는 서씨아저씨가 내민 동아줄을 붙잡아 주었다.


그때는 몰랐지, 그 동아줄은 처음부터 축축했다는 것을. 이미 술에 반쯤 삭아 있었다는 것을.


어쨌든 나와 아저씨는 사례관리자와 대상자로 이어졌다. (*사례관리란 간단히 말해 복합적인 욕구를 종합적으로 관리해 주는 서비스라 할 수 있다)


아저씨는 잘 따라줬다. 나는 신이 나서 인근 알콜중독센터, 정신건강센터에 서비스를 연계해 줬고, 아저씨의 얼굴빛이 약간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상담일지를 적어가는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춤을 췄다. 화면 가득 사람을 살려가는 영웅담을 기록해 냈다. 출근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아저씨의 금주가 2주 넘게 이어졌고, 나는 승리에 도취돼 있었다. 알콜중독 치료에 있어서는 뇌의 알콜을 분해하는 6주(40일 내외)의 기간이 단주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점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사례관리라는 이름 아래 힘께 이루어가는 성취감은 남달랐다.




따르릉. 따르르릉.


"여기 정신건강센터인데요. 서써아저씨 오늘 상담일인데 안 오셨어요. 제가 전화해 보니까 혀가 약간 꼬여있는 것 같던데... 전화 한 번만 부탁드릴게요"


나는 바로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충셩! 선댕님... 오늘날이 흐려서 딱 한 잔만 했습니다"


내가 서씨아저씨를 찾아갔을 때는 이미 비어버린 초록색 빈병 셋만 나뒹굴고 있었다.

저 멀리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아저씨가 보였다.


그를 바라보며 따라서 고개를 좌우, 위아래로 흔들다 문득 동아줄을 잡은 손에서 진한 알콜의 역한 냄새가 느껴져 놓아 버렸다.






의지가 무너진 이후의 일이야 불 보듯 뻔했다. 매일 같이 술을 먹었고 얼굴빛은 다시 붉어졌다. 알콜중독센터, 정신건강센터의 선생님들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선댕님... 요즘엔 전화도 잘 안하셰여...? 제가 미워요? 불쌍하지도 않아요?"


서씨아저씨가 다시 사무실을 찾아왔을 때, 그는 에어컨은 사달라고 했다. 에어컨은 후원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품목이었다.


요즘은 잘 찾아오지도, 후원도 해주지 않는다고 투덜대더니 갑자기 책상에 붙어있는 민원용 볼펜을 집어 들었다.


볼펜이 위아래로 움직일 때마다,

손등에 검은 점이 비치는 듯하더니

이내 붉은 방울이 되어 쏟아져 내렸다.


알콜의 역한 냄새에 기어이 비릿한 피냄새까지 섞여버렸다.


이윽고 제복 입은 경찰관이 와서 아저씨의 양팔에 팔짱을 끼더니 데리고 나가버렸다.

아저씨는 빙글빙글 도는 다리처럼 이리저리 고개를 흔들며 끌려갔다.


나는 아저씨를 가만히 쳐다보다 탕비실을 돌아봤다.

그날, 그 아저씨는 내가 놓아버린 첫 번째 동아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