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여기까지
다시 아침, 문 앞에서
드디어 마주한 시계 초침과
밤새 대화를 나눴던 것 같다.
뜬 눈으로 기나긴 밤을 견디었는데...
언제 잠에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알람소리에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다.
잔잔했던 어제의 밤과 달리
아침의 알람은 날카롭기만 했다.
언제나 그랬듯 알람은 정확한 시간에 울렸다.
어제 밤 무슨 일이 있었냐는듯....
나와 초침의 대화는 안중에도 없는 듯 했다.
그렇지.
알람은 원래 그랬다.
나를 배려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원망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니까.
일상을 깨워 나아가야 했으니까.
어제 밤, 눈 뜨고 보낸 시간의 무게가
고스란히 어깨로, 머리로 쌓여있다.
너무도 무거웠다.
비단 어제 밤의 무게만은 아닌 듯 했다.
듣고 있지 않았을지언정
지난 날 시간은 계속해서 속삭여왔고,
초침 소리를 듣게 된 지금에서야
쌓여온 시간의 무게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된 것일까.
40년치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사나운 알람 소리도 무게를 날려보내지는 못했다.
오늘은 가족여행이 있는 날이었다.
쉬어야 하는 날인데...
몸은 이미 먼저 지쳐있었다.
졸린 눈을 부벼가며 세면대 앞에 섰다.
그러고는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알람 소리에 강제로 깨어났기 때문일까.
어젯밤이 먼 일처럼 느껴졌다.
거울 속 나는 어제와 달라보였다.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머리 속 수줍게 숨어있던 흰머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왠지 모르게 눈꼬리가 약간 내려간 듯 했다.
그러곤 이내 애써 모른 척
샤워기 물 줄기를 맞기 시작했다.
뜨거운 물을 머리 위로 틀어놓고는 한참을 서있었다.
딱히 거품을 닦아내지도,
머리카락을 털어내지도 않았다.
뜨거운 물이 어깨의 무게를 녹여내주길 바랐다.
불현듯 머리 속에 떠올라 사라지지 않는,
'어쩌다 여기까지'의 생각을 지워주길 바랐다.
잠시 시간이 지난 후
뜨거운 물은
생각의 무게를 지워주지는 못했지만
다시 오늘을 시작 할 여유를 주었다.
가볍게 몸을 털어내고는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욕실의 문을 열기 전,
문고리를 잡은 채 잠시 멈춰섰다.
이 문을 나서고 나면 나는
어제와 같은 속도로 오늘 하루를 살아낼 것이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속도로
시간이 흘러갈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나는 또 오늘의 일상을 살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