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문득
'어쩌다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이
그날 밤 불현듯 들었다.
마흔이 되던 12월 31일 밤, 나는 잠에 들지 못했다.
나는 특별한 이유 없이 자정의 종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TV에서는 사람들이 보신각 종소리를 듣기 위해
기대에 찬 목소리로 카운트다운을 외쳐댔다.
그러나 왠지 그들의 설렘이 내게는 닿지 않은 듯했다.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서로 다른 세상에 있는 듯했다.
그러다 새해를 맞이하는 종소리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구나.
서른과 마흔 사이, 마흔이라는 숫자는 분명 새로워졌는데 나는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무언가 새로운 결심을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이미 한 시기가 끝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날 자정은 새로운 시작이라기보다는
그저 지금까지의 시간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 놓고는,
그대로 떠나버린 것 같았다.
앞으로 나아갈 설렘을 찾기 힘들었다.
마흔의 첫 날밤은 되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감각이 먼저였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다는 말은 그 밤 이후로도 자주 떠올랐다.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잠들지 못한 시간이 계속됐다.
낮과는 달리 밤의 시간들은 째깍째깍 커다란 소리를 내며 흘러갔다.
천천히 움직이는 초침의 소리가 또렷이 들렸고,
지금 이 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이 깊이 새겨졌다.
눈을 감아 이 장면을 멈춰도, 시간을 멈출 수는 없었다.
가만히 누워 있는 동안에도 초침을 계속해서 이동했고
그 소리는 나를 재촉하지도,
위로하지도 않은 채 그저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만을 상기시켰다.
새해가 되었다는 실감보다는 이미 흘러가버린 시간에 대한 회상이 먼저였다.
딱히 간절히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지난날의 어떤 시간들이 나를 마흔으로 데려다 놓았는지 궁금해졌다.
잠에 들지 못한 나는 어떤 선택의 끝에 서있는 것일까.
그날 밤 나는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지도, 다짐을 떠올리지도 않았다.
대신 머릿속에 맴도는,
어차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어쩌다 여기까지'를 곱씹어보기로 했다.
지금 여기는 어디인가.
과연 어쩌다 오게 됐을까.
천천히 확인해보고 싶어졌다.